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었다. 다른 말로 뜬금없다고 한다. 단 한 번 출연했을 뿐인 김선우(최시원 분)의 아버지가 20년 전부터 흑사회를 쫓아 온 국정원 요원이었다고 하니. 다만 덕분에 같은 국정원 출신으로 처음부터 흑사회와 관련이 있다고 의심해 온 특정인에 대한 주의를 돌리는데는 성공하고 있었다. 설마 했었다. 설마 반전은 없는 것 아닌가.
이미 인물 설정부터다 딱 의심하기 좋은 설정이었다. 한때 국정원에도 파견수사를 나간 적이 있는 해경의 전설. 유능하고 인망도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만년 경사다.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충분히 승진이 가능한데 그것을 누군가 인위적으로 막고 있거나, 아니면 스스로 승진하기를 거부하거나. 승진하기를 거부한다면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그렇다고 현장에 남아있기 위해 승진을 거부했다기에는 그의 평소의 모습이 무척이나 한가롭고 여유롭다. 무언가 악착같다거나 치열한 느낌을 받지 못한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
오용갑(길용우 분)이었다. 처음부터 필자는 그를 의심하고 있었다. 프로필부터가 수상쩍은데, 더구나 수사 9과의 구성원들과도 인간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수사 9과의 과장 권정률(이성재 분)에게 그는 누구보다 존경하고 신뢰하는 선배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수윤(이시영 분)과는 횟집을 하는 그녀의 어머니 엄희숙(박원숙 분)과 미묘한 관계에 있다. 수사 9과에서도 가장 중요한 브레인의 역할을 맡고 있는데, 인간적으로도 그가 배신자임이 밝혀지게 된다면 그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수사 9과 내 배신자의 존재가 밝혀지는 순간 그 반전과 충격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도 오용갑 이상은 없는 셈이다. 그리고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하기는 다른 대안도 없었다. 그나마 의심해 볼 수 있는 것이 수사 9과를 만든 해양경찰청장 권창범(이범신 분)이나 권창범으로부터 수사 9과에 대한 지휘권한을 받아낸 정보수사국장 한상군(최정우 분) 정도일 텐데, 그러나 권창범의 경우는 수사 9과의 자세한 상황을 알기에는 지휘계통으로도 상당히 떨어져 있었고, 한상군의 경우도 수사 9과내 다른 배신자가 없다면 설명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도 가장 수월하고 직관적인 인물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맞게 상황은 흘러가고 있었다. 몇 차례나 수사 9과의 정보가 흑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뿐이었다.
문제라면 기껏 그렇게 애써 준비한 반전이건만 그것을 밝히는 과정이 지나칠 정도로 서툴더라는 점일 것이다. 이제까지 아무 일 없다가 느닷없이 배경음악까지 깔아놓고 노골적으로 수상쩍은 표정을 하고 있는 오용갑이라니. 전부터도 그런 장면이 있어 왔다면 또 모르겠다. 갑자기였다. 그야말로 느닷없이였다. 느닷없이 오용갑은 이제까지 없던 배신자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연기하고 있었고, 카메라와 음악은 그것을 드러내 놓고 확인해주고 있었다. 이제부터 의심하라고. 그리고 어설프게 시작된 의심은 애매한 확신이 되어 그에 대한 모든 비밀이 밝혀진 순간에조차 그것을 아무런 충격도 반전도 없이 기정사실로써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어 버렸다. 그것은 반전도 무엇도 아니었다. <포세이돈> 15회를 위해 준비된 에피소드고 설정이었다.
차라리 아무런 예고 없이 그 사실이 밝혀졌다면 어땠을까? 흑사회의 위원장을 만나는 자리에서 전혀 예기치 않게 문득 걸려온 전화 한 통에 강주민(장동직 분)의 정체가 들통나며 위험에 빠지려는 순간, 그래서 배신자에 대한 분노와 의문이 극대화되는 그 순간에 한 순간 그의 모습이 보여지게 되었다면. 전부도 아니다. 얼굴이 아닌 다른 신체의 일부를 통해 그의 존재를 예고하고, 전혀 배신자 같지 않은 모습으로 위원장과 통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15회에서의 오용갑은 누가 보더라도 배신자, 반전도 없고, 충격도 없고, 그런 만큼 재미도 감동도 없다. 배신자에 대해 당연히 가져야 할 분노와 원망도 없다. 반전의 실패다.
하기는 그보다 먼저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내내 울고 있었다. 내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수윤이었다. 김선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충분히 억눌렀어야 했다. 시청자가 필요한 순간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도록 드라마속 인물들 자신이 그것을 누를 수 있어야 했다. 코미디언이 먼저 웃어 버리면 미리 준비한 놀라운 반전도 시들해지게 마련이다. 비극에서도 배우가 먼저 울기 시작하면 관객 역시 지레 울다가 먼저 지쳐 버린다. 누르고 누르고 또 누르다가 한계에 이르러 한 순간에 폭발시키는 것, 그것을 감동이라 부른다. 폭소라 부르고, 충격이라 부른다. 충격이란 역시 놀라움이라는 감동이다. 그런데 그렇게 내내 울고 소리지르고 안달해서야 감정을 흘릴 뿐 아니던가.
내내 갇힌 채 울고 소리지르다가 기껏 상을 부숴 부러진 상다리를 숨기고서는 감시하는 이를 공격하려는 이수윤의 모습과 같을 것이다. 잔뜩 기대하게 만든다. 아니 이미 그 무렵이면 지쳐 있다. 울고 소리지르고, 상다리를 준비하고 난 다음에도 있는대로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그래서야 설사 그 상다리로 감시원을 쓰러뜨리고 탈출해도 시들할 상황이다. 그런데 피곤할 정도로 감정이 고양된 상황에 그것도 실패하고 말다니. 채 싸워보기도 전에 제압당하고 말았다. 그러면 그 전에 그토록 울고 소리지르고 긴장한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코미디언이 준비한 반전을 보여주기도 전에 먼저 웃음을 터뜨리고, 비극의 배우가 미처 슬픈 장면이 시작되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려버린다. 정말 재미없어지는 것이다. 나름대로 훌륭한 반전이었지만 전혀 의미가 없다.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반복된 문제이기도 했다. 시청자가 충분히 그 감정을 누릴 기회를 주지 않는다. 먼저 울고 먼저 웃고 먼저 화내고 먼저 소리지른다. 충분히 감정을 고양시켜 드라마속 인물과 상황에 공감을 이루기도 전에 먼저 드라마가 터뜨려 버린다. 남는 것은 없다. 시청자는 철저히 관객으로 남을 뿐이다. 드라마에 동의하지 못하는 타자로서의 관객이다. 이만한 흥미로운 소재의 드라마가 시청률이 낮다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재미가 없다.
어쨌거나 정말 허무했다. 그래도 흑사회의 최고 우두머리와 만나는 자리다. 흑사회의 최고 우두머리 위원장과 만나는 자리였고 그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난 뒤였다. 과연 어떤 범죄조직이 그런 상황에 배신자의 정체가 탄로났는데 그것을 죽이지 않고 살려줄까? 비록 정도영이 강주민을 향해 총을 쏘기는 했지만 결국 권정률과 김선우의 대화에서도 드러나듯 강주민은 죽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이렇게 무른 조직이 있을까? 권정률의 아내도 죽이고, 김선우의 동료도 죽였는데, 그런데 감춰져 있던 흑사회 회장의 얼굴을 보고 은밀한 이야기까지 들은 강주민은 살려준다. 흑사회가 아예 사업을 접기로 작정한 것일까? 그렇게 사람 죽이기를 꺼려한다. 이원탁을 제외하고 드라마가 시작된 이래 실제 죽은 사람은 안동출과 박칠성, 그리고 이원탁이 전부다. 흑사회는 정말 사람을 죽이기를 꺼려하는 자비로운 조직이다.
모순일 것이다. 위원장은 강주민에게 말하고 있었다. 최희곤이란 2002년 월드컵이 있던 당시 동급생들에게 폭행당해 죽은 탈북자 학생의 이름이었다고. 배고픔을 못이겨, 자유와 풍요를 찾아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했던 그들이 억울하게 죽었음에도 누구 하나 돌아보지 않는 불의하고 부당한 세상을 바로잡고자 흑사회 - 아니 위원회를 만들었다고. 그런데 정작 그동안 흑사회를 추적해왔다는 국정원 요원은 벌써 20년 동안 흑사회의 실체를 쫓고 있었다 말한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위원장? 아니면 국정원 요원? 감춰진 비밀이 있을까?
아이디어는 참 좋다. 장르의 전형을 지키면서도 충분히 스릴러로서 흥미를 끌 수 있을 만한 소재이고 이야기들이다. 결국은 스토리보다는 텔링일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꾸며 들려주는가? 대본의 실패고 연출의 실패다. 그것을 새삼 깨닫는다. 준비한 반전을 보여주는데조차 드라마는 이렇게 서툴다. 시청자들에 충분히 반전의 충격을 전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드디어 마지막. 이제 바로 마지막회가 방송되려는데.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는다. 기대라는 걸 하기에는 힘이 너무 빠져 버렸다. 아까운 줄 모르고 벌써부터 다 터뜨려 버린 때문이다. 꾹꾹 눌러 채워 그것을 마지막에 제대로 터뜨렸어야 했는데 이미 남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보여질 것은 다 보여졌고, 나올 것도 다 나왔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있을까? 기대하고 볼 만한 것이 과연 있을까? 마음을 비운다. 아쉬운 것이다. 더 재미있을 수 있었는데. 아까울 따름이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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