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민태연(연정훈 분)은 취조 도중 남편 최욱(윤기원 분)을 살해한 사실을 자백하며 여전히 남편에 대한 증오를 숨기지 않는 최욱의 아내 김선화(김선화 분)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남편 최욱을 본 게 아니라 독사 최욱을 보며 살아왔네."
"뭐가 다르죠, 그게?"
"보는 걸 믿느냐? 믿고 싶은 것을 보느냐? 당신이 진심으로 믿고 싶은 게 뭐지? 독설가 최욱?"
최욱의 죽음에 대한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최욱의 죽음과 관련한 옥포환(오광록 분)의 계획과 정체마저 밝혀냈을 때 오광록도 민태연에게 그렇게 되묻고 있었다.
"민검사님, 사람들이 나같은 미친 차원을 좋아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대중이 필요로 하는 걸 내가 주니까.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훔치는 겁니다."
아마 이번 에피소드 '신드롬'의 주제가 아니었을까?
과연 사실이어서 믿는가? 믿고 있기에 사실이 되는 것인가? 사실이란 원래 선험의 영역이다. 인지 이전에 존재하는 엄밀한 실체를 두고 사실이라 부른다. 반면 믿음이란 어디까지나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사실을 판단할 이성조차 사실상 개인적 체험에 의해 성립하는 경우가 많기에 보편적인 주관을 객관이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남들이 다 그렇게 말하니까. 모두가 다 그렇게 여기니까. 아마 남편의 후배이자 친구였던 안준수(김학준 분)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김선화도 굳이 남편을 죽이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이 싫었다. 미웠다. 그러나 설사 그렇더라도 누군가 맞장구쳐주지 않았다면 그같은 감정은 단지 일시적인 감정으로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누구나 분노한다. 누구나 원망한다. 그리고 증오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감정들은 웃음이나 기쁨이나 행복과 같은 감정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게 된다. 그에 맞장구쳐주는 사람이 있어 문제다.
남편이 나쁘다고 말한다. 나쁘다고 동의해준다. 남편이 잘못했다고 말한다. 잘못한 것이 분명하다고 동의해준다. 일시적인 감정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이 타인의 확인을 통해 사실로써 확정된다. 그렇게 안준수와 남편에 대한 분노와 원망과 증오를 이야기하는 사이 그것은 기정사실로써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 진실이 되어 버린다. 더구나 독설가 최욱 아니던가 말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증오해마지 않는 독설가 최욱에 대해 증오를 하나 더한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가 될 것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정당한 것이다.
결론이 내려졌다. 남편 최욱은 나쁘다. 그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그러고 보면 아들이 소아암이다. 아들의 병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탓을 돌려야 했다. 자기에게 닥친 불행들에 대해 자기가 아닌 다른 누구에게로 그 원인을 돌려야 했다. 책임을 물어야 했다. 매일같이 걸려오는 협박전화는 그를 위한 훌륭한 근거가 되어준다.
그것은 사실이어야 했다. 자기에게 닥친 불행에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것은 반드시 사실이어야만 했다. 그래서 더욱 믿는다. 확신한다. 모든 악의 근원은 남편 최욱이다. 남편 최욱의 독설이야 말로 모든 악의 근원이며 죄의 근원이다. 그를 죽이는 것조차 따라서 정당한 심판이 된다. 과연 그러한 김선화 앞에 최욱이라는 남편은 존재했을까?
그런 점에서 옥포환을 죽이려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안준수와 유력한 용의자로 연행된 김선화에 대한 심문은 매우 상징적이라 할 수 있다. 정보를 통제한다. 정보를 통제함으로써 오해를 유도한다. 없는 말을 새로 지어낸 것은 없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억지로 꾸미고 한 것도 없다. 단지 안준수와 김선화가 하는 말 가운데 특정한 부분만 걸러 상대에게 들려준 것이다. 얼마 되지 않은 두 사람의 믿음은 그러한 걸러진 '사실'로 인해 한순간에 무너져 버리고 만다.
그런 정도에 불과했다. 안준수는 최욱이 싫었고, 김선화는 탓을 돌릴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얄팍한 두 사람의 관계는 고작 몇 마디의 말로도 쉽사리 균열을 일으키고 파탄에 이르고 만다. 하긴 그러니까 김선화는 최욱을 배신하고 죽일 수 있었던 것이지만. 오히려 그러한 거짓의 한가운데 있으면서 자신을 죽이려는 그 순간까지도 김선화를 용서하고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최욱의 모습은 어떤 역설을 보여준다. 무엇이 진실인가?
그래서 옥포환인 것이다. 과연 그것이 사실인가? 과연 옥포환이 한 예언과 최욱의 죽음은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는가? 전혀 검증된 바가 없다. 아니 실제 연관관계가 있기는 했다. PD와 옥포환과 최욱이 꾸민 계획이었다. 옥포환의 예언을 현실로 만들므로써 대중 앞에 옥본좌로써 화려하게 데뷔할 수 있도록 판을 짠다. 대중은 눈앞에 보인 이미지에 쉽게 현혹된다. 현혹되어 믿어 버린다.
아니 정확히는 믿고 싶은 것이다. 최욱의 독설을 필요로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거짓으로 가득차 있는 듯 보인다. 불순하고 불결하다. 혼탁하고 혼란스럽다. 그래서 필요로 하는 답을 들려줄 누군가를 찾는다. 아마도 최욱의 모델이었을 예능인 김구라의 인터넷방송시절의 마니아적인 인기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말도 안되는 루머가 태반이었지만 그것을 거르지 않고 들려주는 김구라의 독설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것이 사실이어서? 사실이라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당시 김구라는 들려주었고, 지금 드라마에서 옥포환 역시 대중이 바라는 바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거짓이더라도.
과연 그것이 거짓임이 밝혀졌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할까? 거짓임이 밝혀졌으니 욕하고 돌아설까? 아니면 그런 상황에조차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채 거짓임을 지적하며 비판하는 사람들과 맞서려 할까? 그동안 여러 사건들을 통해 역시 경험한 것이 있다. 사실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엇을 믿고 싶은가의 여부가 중요하다. 최욱이며 옥포환이며 모두 그러한 대중의 요구를 위해 존재한 우리 사회의 괴물들이었다. 뒤틀리고 일그러진, 추악한. 그것이 누구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최욱이 아니더라도 옥포환이 대체하면 된다.
그런 사건이었다. 사실보다는 믿음을 택하는 개인들, 사실과는 상관없이 믿음을 쫓는 대중들, 그리고 그런 가운데 그것을 이용하려 드는 군상들. 어쩌면 그런 것들을 몸으로 직접 겪어 왔기에 최욱은 그런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사람에 대한 순수한 진심을 일깨울 수 있었을런지 모른다. 누군가를 탓하고 원망하기 전에 자기를 먼저 탓하고 원망해야 했다. 자기연민에 빠져 오히려 더 독하게 다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돌릴 수도 있었으련만 그러지 않았던 자체만으로 그는 바보이거나 누구보다 진실된 사람이었을 것이다. 요즘 그런 사람은 드물다.
아무튼 최근 우리 사회의 인터넷 문화를 통해 드러난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작년 그토록 뜨거웠던 타블로사태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 몇몇 개인의 의혹제기였다. 의혹제기라기보다는 단지 집요한 악플에 불과했다. 그러나 믿고 싶은 마음이 그것을 사실로 만들어 버렸다. 타블로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와 증오와 원망이 거짓마저도 진실로 만들고 타블로를 그 함정으로 몰아가 버렸다. 다른 많은 인터넷과 관련한 사건들이 그러한 과정을 거쳤다.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몇몇 개인의 믿음만으로도 쉽게 사실은 만들어지고 진실은 확정된다.
문득 떠오르는 연예인과 프로그램이 있기에 더 흥미로웠다. 아마도 예능인 김구라와 케이블채널 tVN에서 방영중인 <화성인 바이러스>가 그 모델이 아니었을까? 옥포환이라면 확실히 <화성인 바이러스>에 출연할 법하다. 그리고 그와 관련한 대중과 언론의 반응 역시. 묘하게 옥포환이라는 허구적 이름에도 불구하고 리얼리티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죽어가는 그 순간에조차 아내와 아내가 잘못될 겨우 그 피해가 돌아갈 자신의 아이를 위해 필사적으로 아내의 행위를 감추려 한 최욱의 행동이 정말 눈물겨웠다. 남자였다. 설사 모든 원망을 홀로 듣더라도 스스로 원망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물며 아내다. 가족이다. 가족을 지키는 것은 남자가 남자로 태어나는 이유다. 설사 죽임을 당하더라도. 조금만 일찍 구급차를 불러 치료를 받았다면 살 수도 있었을 것을, 그는 삶마저 포기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그의 모든 것은 아니다. 역시 경고를 하는 듯하다.
마침내 민태연이 쫓는 7년전 연쇄살인의 범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라마의 또 한 축이다. 민태연의 여동생을 죽이고 민태연마저 흡혈귀로 만든 범인의 정체가. 유정인(이영아 분) 앞에서 민태연은 그리고 흡혈귀의 본성을 드러낼 뻔한다. 유정인은 눈치채지 못했을까?
캐릭터의 구성이 좋다. 뱀파이어의 권능을 이용해 범인을 쫓는 냉정한 이미지의 검사 민태연과 정의감과 열정에 넘치는 신임검사 유정인, 그리고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은 있지만 풋내나는 인턴직원 최동만(김주영 분), 그리고 신비한 분위기의 부장검사 장철오(장현성 분), 섹시한 부검의 소박사(김예진 분)에, 민태연의 비밀을 알고 있는 단순과격한 형사 황순범(이원종 분)까지. 가능하기만 하면 이번 시리즈가 끝나고 시즌2를 제작해 보아도 좋으련만. 캐릭터의 조화가 좋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추리물은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 처음에는 실망도 했다. 살인에 대한 예언과 이어진 실제 살인사건, 그리고 예언자는 살인사건의 범인을 자처한다. 뻔한 이야기인가 싶더니만 이렇게 다르다. 트릭도 훌륭하고 추리도 훌륭하고 주제는 더 훌륭하다. 말할 것도 없다. 단연 최고다. 감탄한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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