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심야병원 - 어째서 제목이 '심야병원'인가?

까칠부 2011. 11. 14. 08:18

지금도 역시 의문이다. 어째서 제목을 <심야병원>이라 지은 것을까? 밤에 병원을 여는 일도 드물고, 더구나 병원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도 거의 없다. 그저 병원이 있을 뿐, 극중 홍나경(류현경 분)이 매직으로 대충 써 넣은 간판처럼 그것은 단지 하나의 구색에 불과하다.

 

아마 드라마는 스릴러를 추구하고 있을 것이다. 스릴러란 공포다. 공포에서 오는 긴장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정으로부터 나온다. 시간을 한정하고, 공간을 한정하고, 사람을 한정한다. 마치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누군가 자신을 공격하려 해도 도망칠 곳도 피할 수 있는 곳도 없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가운데 불안과 공포는 커져만 간다. 이 상황에 도망치거나 숨을 곳을 찾아가는 그것이 스릴러인 것이다.

 

처음 기대가 그것이었다. 심야라고 하는 시간적 제약이 있다. 동방파의 보스 구동만(최정우 분)의 수술을 집도해야 하니 행동에도 제약이 가해진다. 아내를 죽인 원수를 잡아야 한다고 하는 동기의 제약도 있다. 구동만은 바로 그러한 허준(윤태영 분)의 아내를 죽인 범인에 대한 단서를 가지고 있다. 동방파라고 하는 거대한 폭력조직에 맞서 오로지 의술 하나로 아내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야 하는 절박함. 이것은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

 

그런데 없었다. 심야에만 병원의 문을 연다고 하는 설정은 어느새 하는 일이라고는 없이 출연분량조차 확보되지 않은 간호사 이광미(배슬기 분)의 캐릭터처럼 존재감 없는 무존재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이제 홍나경과 허준의 이야기조차 병원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료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이제는 중심 인물들의 만남이나 대화조차 병원 바깥에서 이루어진다.특히 주인공 허준의 행동은 더욱 병원을 벗어난 경우가 많다.

 

그냥 말이 의사다.

 

"이게 의사야? 깡패야?"

 

동방파의 간부 최광국(김희원 분)의 말이 그러한 부분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을 것이다. 의사면 의사답게 치료를 해야지 허구헌날 싸움이다. 의사로서 병원까지 차려줬으면 환자를 맞아 치료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폭력조직인 동방파의 조직원들보다 더 싸움을 많이 하고 잘한다. 심야병원이고 아내를 죽인 범인의 단서를 잡기 위해 구동만을 치료해야 한다는 설정조차 자기가 나서서 참고인을 찾고 해결에 나서는데는 의미가 없어진다. 설마 아무리 그래도 구동만을 만나겠다고 쳐들어가 동방파와 싸움까지 벌이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물론 답답했을 것이다. 당장 구동만이 단서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 가만히 앉아서 환자나 보고 있을까? 심야병원에서 먼저 원장으로 있던 한중섭이 범인을 치료한 정황을 잡았는데 마냥 구동만을 수술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까? 차라리 후련하게 병원문을 박차고 나가 동방파와 치고받고 싸우는 쪽이 나을 것이다. 드라마적으로도 그렇게 치고받고 싸우다 보면 박진감도 있고 재미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런 답답함이 스릴러의 전제인 것이다. 답답하다. 답답해서 미치겠다. 그런데 다른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렇게 시청자마저 답답해서 어찌 할 수 없을 때 하나씩 단서를 준다. 단서를 주고 그것을 퍼즐처럼 풀도록 한다. 같은 원수를 쫓는 스릴러이면서 <뱀파이어 검사>는 그래서 개별의 사건과 원수에 대한 추적을 이원화시켜 훌륭히 만족시키고 있었다. 의학드라마와 사회드라마와 스릴러의 조화가 반드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제작진과 배우가 억제하는 만큼 시청자는 더 안달하며 드라마를 찾아보게 된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

 

그게 문제다. 누르고 또 누르다 한계에 이르러 한꺼번에 터뜨린다. 억울할 정도로 답답한 가운데 한 순간 청량음료와도 같은 짜릿한 절정이 찾아온다. 그런데 지레 다 터뜨려버리고 만다. 먼저 화내고 미리 뛰어들고 알아서 부딪히고. 궁금한 것이 있기는 한데 자기들이 먼저 달려들어 날뛰고 있으니까. 더구나 제목은 어째서 <심야병원>인지 알지 못하겠다. 홍나경이 병원을 뛰쳐나가고 난 뒤 병원이 화면에 비추는 일조차 거의 없어졌다.

 

실망이 크다. 이제는 더 이상 이 드라마를 보고 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스릴러로서 완성도가 높지도 못하다. 기대했던 의학드라마로서의 요소도 이제는 포기해야 한다. 남는 것은 그저 시청자보다 앞서 날뛸 뿐인 의사를 가장한 깡패 허준 뿐이다. 동방파의 조직원보다 손과 발이 더 빠르다. 논리도 이성도 정의도 없다. 나는 무엇을 보고 있었는가.

 

너무 소리를 지른다. 과연 허준이 그렇게 내내 눈을 부릎뜨고 소리만 질러대는 캐릭터였는가. 아내를 잃은 한과 슬픔을, 그것도 범인을 눈앞에서 놓치고 누명까지 쓴 채 7년을 곱씹어 온 그 절박함이 그렇게 단편적으로만 표현되고 말 것인가? 목소리 크다고 연기 잘하는 것이 아니다. 싸움만 많이 한다고 스릴러가 피가 튀는 것은 아니다.

 

안타까운 드라마다. 처음 설정은 좋았다. 시작도 좋았다. 충분히 흥미를 끌 만했다. 그러나 한국 드라마의 문제점. 시간이 지나면 모든 드라마가 고만고만해진다. 일주일에 한 편임에도 어느새 시간히 흐르면 드라마와 드라마의 차이가 거의 사라져 버린다. 녹아버린다.

 

기대가 없다. 긴장은 당연히 없다. 그냥 지켜본다. 비밀이 있다니까. 음모가 있다니까. 다른 사정이 있다고 하니까. 굳이 알아보고 짐작하고 할 것도 없다. 알아서 먼저 다 밝혀낼 것이다. 흥미도 호기심도 없다. 아쉽다. 제목은 멋있었다. 그 제목에 이끌렸다.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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