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이 말했을 것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그래서 필자의 경우 코미디를 잘 보지 못한다. 때로 코미디는 그 어떤 비극보다도 비극적이다. 사람들이 감동적이라 하는 이야기에도 누구도 알지 못하는 처절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이다.
"좋을 때만 사랑은 사랑이 아닌 거 알아. 평생 아픈 남편, 아내 지극정성으로 사랑으로 함께 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세상에 많아. 그런 거 보면서 난 늘 감탄하면서 감동해. 그런데 내 아들 일이 되니까 그럴 수가 없어. 너 그토록 그 아이가 소중한 만큼 나도 그래. 어떻게 너더러 그 길을 가라고 할 수 있어? 난 못해! 안 돼! 절대로 안 돼! 안된다니까, 이 녀석아!"
누가 강수정(김해숙 분)의 이기심을 비난할 수 있을까?
"엄마가 널 낳았어! 내 뱃속에서 네가 만들어졌어. 너 대신 유일하게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엄마인데 너 어떻게 날 모른다 그러는 거야?"
차라리 자기 일이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내 일이었다면, 그래서 나 혼자 감당하고 말 일이었다면. 그녀는 충분히 그만한 양식과 선량함을 갖춘 이였다. 출신과 상관없이 이서연(수애 분)이라는 한 인간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인정할 줄도 알았고, 아들을 위해 남편 박창주(임채무 분)의 반대를 무릎쓰고라도 박지형과 그녀를 이어줄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아들을 위해 그녀를 저버리라 말하면서도 그것이 못내 안타까워 눈물도 흘려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들의 일이다.
그 눈물까지 자기가 안고 간다. 그 모든 동정과 연민, 후회, 죄책감마저 자기가 다 끌어안고 간다. 아들만 행복해질 수 있다면. 오로지 배아파 낳은 아들 박지형(김래원 분)만 행복할 수 있다면.
때로는 무서울 정도로 맹목적인 것이 어머니의 사랑이기도 하다. 아들을 위해 노향기(정유미 분)와의 결혼을 파토내고 모두를 곤란케 만든 원인인 이서연마저 관용하며 받아들이려 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이 힘들고 괴로울 것을 알기에 이서연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냉정해질 수 없음에도 냉정해져야 하고, 잔인해질 수 없음에도 잔인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어머니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식이 힘들 것이 뻔한데 그것을 좋아라 반길 어머니는 없다. 강수정은 한 인간이기 이전에 박지형이라는 아들을 둔 어머니다. 아들에 대한 사랑이 모든 것을 우선한다.
물론 그것을 이서연도 안다. 모르는 것은 박지형 뿐이다. 이서연이 강수정 앞에서 그토록 인정하기를 거부하며 버티던 자신의 병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자신으로 인해 그가 불행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그 불행으로 인해 자신이 그에게 짐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서연의 이기 또한 박지형을 원하지만, 그러나 박지형과의 시간이 결국 서로에게 고통이 되고 상처가 될 것임을 안다. 박지형이 괜찮다고 말하지만 정작 이서연 자신이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마지막까지 아름답고 당당하고 싶다.
그 또한 치열한 투쟁이었을 것이다. 애써 사촌오빠인 장재민(이상우 분) 앞에서 자신의 병을 가지고 농담도 하고 여유도 부리는 이유다. 전혀 여유따위는 없다. 그래서 동생 이문권(박유환 분) 앞에서는 곧잘 짜증도 부리고 한다. 이문권이 자기에게 존댓말을 쓰는 자체로도 그녀는 예민하게 반응하고 만다. 걱정하는 말 한 마디, 배려하는 행동 하나가 그렇게 거슬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촌오빠인 장재민 앞에서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아야 한다. 박지형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을 박지형은 모른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감정 뿐이다. 어떻게 하면 이서연을 성득해 그것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가 전혀 아무런 생각도 고민도 하지 않는다. 우격다짐으로, 친구인 장재민까지 동원해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있을 뿐이다. 어머니인 강수정에게도, 사랑한다 여기는 이서연에게도. 그래서 어머니 강수정에게도, 연인 이서연에게도 눈물을 흘리도록 만들고 만다. 자신이 이서연을 사랑하는 만큼 이서연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과연 어떠할까?
하기는 그렇기 때문에 박지형은 그토록 무모할 수 있는 것일 게다. 강수정에게 이서연의 알츠하이머는 자기 아들의 일이며, 아들을 대신해 죽을 수 있는 어머니 자신의 일이다. 이서연에게 있어서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당면한 문제다. 그러나 박지형에게 그들은 모두 타인이다. 남의 일이다. 박지형이 굳이 감동드라마를 찍고 싶어하는 이유다.
강수정의 말에 답이 있다. 단지 구경꾼의 입장에서 남편의, 혹은 아내의 오랜 병을 옆에서 함께 하고 있는 배우자의 모습이란 감동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의 입장은 어떠할까? 단 한 번도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을까? 단 한 순간도 다 놓아버리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을까? 심지어 몇 번이고 죽이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을 것이다. 아닌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더라도 그 고통을 함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막연한 동정심과 책임감에 결정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각오가 필요하다. 다짐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묻고 들어야 한다. 묻고 또 묻고, 듣고 또 들어야 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묻고 또 물은 결과 어떤 결론이 나오더라도 그것이 진실일 가능성은 그리 높지 못하다. 생각과 행동은 다르다. 막연이 상상하는 것과 실제 경험하는 현실은 다르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박지형에게는 생략되어 있다.
남의 일인 때문이다. 자기 일이 아니다. 이서연의 일이며 어머니 강수정의 감정이다. 노향기에 대해서도 그토록 잔인하게 파혼까지 해 놓고서는 태연히 그녀를 만나 동생 대하듯 대할 수 있는 것이 그래서다. 박지형의 지독한 에고는 자기 이외의 다른 존재를 보는 눈을, 듣는 귀를 영영 닫아버리고 말았다. 이해해달라. 용서해달라. 편리한 말이다. 이해든 용서든 구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이다. 남의 일이기에 그래서 그는 감동을 쫓고 희극을 쫓는다. 강수정과 이서연은 비극 속을 살아가는데 오로지 그 혼자 감동드라마를 찍고 있다.
이서연이 환멸을 느낄 만도 하다. 역설적으로 이서연이 얼마나 박지형을 사랑하는가를 알 수 있다. 박지형의 감정 안에 이서연의 감정은 없다. 박지형의 입장 안에 이서연의 입장은 없다. 도대체 어떤 결혼이 당사자의 감정은 깡그리 무시한 채 우격다짐으로 강요하듯 이루어지는가? 결혼하겠다 하면서 당사자의 반대를 주위를 동원해 꺾어보려 한다. 그는 과연 이서연을 사랑해 결혼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이서연과 결혼하려는 자신에 도취된 것일까?
강수정의 이기는 이해하면서도 박지형의 이타는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강수정의 이기는 이타를 위한 이기다. 그리고 그녀의 이기는 바로 당면한 현실 안에 있다. 그에 반해 박지형의 이타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기를 위한 이타이며, 현실이 아닌 관념 속에 존재한다. 그를 위해 상처를 입어야 했던 이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창주와의 오랜 우정을 이어가고 있는 노홍길(박영규 분)과 오랜 친구이기도 한 강수정에게 감정으로 인해 치사해졌다며 선물을 건내는 오현아(이미숙 분)의 모습은 얼마나 성숙된 이성을 느끼게 하는가. 속에서 끓어오르는 것이 있다면서도 끝내 인내하고 마는 노홍길과 박지형의 모습은 분명히 비교된다.
노향기가 저토록 바보같을 정도로 순수하게 착하게 자랄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탓에 천성이 여유로운 것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너무 좋다. 노홍길은 물론 그리 독살맞게 보니는 오현아도 단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할 뿐이다. 그 숨기지 못하는 감정에서 상대에 대한 마음씀씀이가 느껴진다. 모두가 좋은데 단 한 사람 박지형만이 문제다. 과연 그는 어른이 되어 갈 수 있을까? 비극을 비극으로써,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그로부터 감동을 구하려는 오만과 만용을 스스로 깨달아갈 수 있겠는가?
이제부터가 그래서 중요하다. 과연 박지형은 노향기가 그랬던 것처럼 이서연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이서연의 병으로 인한 모든 것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감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러기에는 드라마가 너무 밋밋해진다. 그런 식의 현실을 망각한 순애보는 오래전에 유효기간이 끝났다. 이서연에게 있어 그것은 자기를 잃어가는 순간들이겠지만, 박지형에게 있어 그것은 어느새 잃어가는 이서연을 자기 안에 옮겨 놓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무런 굴곡도 역경도 없는 드라마는 그 만큼이나 싱겁고 재미없다. 박지형은 달라져야 한다. 물론 작가의 선택일 것이다.
강수정의 눈물에 필자 역시 잠시 울컥하려 했었다. 그토록 이서연을 가엾이 여기고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차라리 눈물을 흘리면 흘렸지 아들더러 그녀와 결혼하라 말할 수 없다. 아들의 선택을 반대하면서도 남편 박창주가 아들에 대해 어디 두고보자 하니 마치 그 말이 씨가 되는 듯 불길하여 예민해지고 만다. 이서연을 인정해서가 아니다. 자칫 그로 인해 불행해질 지 모르는 아들의 앞날을 남편 박창주가 예언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이다. 그래서 강수정도 독하고 이서연도 독하다. 하기는 그래서 박지형도 독하다. 독한 눈물, 그것이 어쩌면 사랑이다.
마침내 이서연을 버려두고 떠난 이서연의 생모(김부선 분)를 고모(오미연 분)이 찾아간다. 딸을 버리고 떠난 비정함과 죽음을 앞에 두고 생모를 찾는 간절함. 무엇보다 그리 싫고 미움에도 이서연의 부탁으로 생모를 찾아 나선 고모의 비장함이 와 닿는다. 그녀는 아직 이서연의 병을 모른다. 이서연은 죽음을 대비해 자신의 생모를 보려고 하는 것이다. 증오든 원망이든 그리움이든 아직 그녀가 그녀일 수 있을 때 정리하기 위해. 생모의 반응은 어떠할 것인가?
병은 점차 그녀의 주위를 포위해 온다. 어느새 말이 번지며 튀어나온 노인성 치매의 이야기, 이를 닦았다는 사실마저 잊고, 커피가 아닌 녹차를 마셨다는 사실마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나하나 잃어가고, 하나하나 뒤틀려간다. 존엄에 대한 병에 대해,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이서연의 절박함이 치열한 가운데 다가온다. 달관한 듯 체념한, 그러면서도 격정이 느껴지는 이서연의 담담함이 그래서 더욱 애절하게 느껴진다. 수애는 과연 훌륭한 배우다.
드라마란 드라마틱이다. 어쩐지 현실과 유리된 듯한 문어적인 대사들이 어쩐지 드라마의 비장미를 더한다. 한결 과장되고 한결 미학적으로 다듬어져 있다. 이것은 드라마다. 드라마이기에 아름다운 것이 있고, 드라마이기에 더 간절하고 절박한 것이 있다. 그래서 드라마는 재미있다.
독한 드라마가 먹히는 요즘 악역이 없는 드라마 한 편 정도 있어도 좋을 것이다. 오현아조차 악역이 아니다. 악역이 있다면 그나마 박지형 정도가 가까울 것이다. 장명희(문정희 분)조차 단지 억척스럽고 샘이 많을 뿐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낙천적을 정도로 긍정적으로 그려진다. 작가의 힘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이대로 계속 이어지기를. 사람 냄새가 좋다.
이서연을 연민한다. 노향기를 동정한다. 강수정과 오현아, 박창주, 노홍길에 공감한다. 하기는 조금만 더 손을 내밀어 보면 박지형 역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굵은 줄기 가운데 뻗은 가지와 잎들이 무척이나 섬세하고 다정하다. 좋은 향기를 풍기는 드라마다. 좋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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