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브레인 - 김순임의 죽음과 김상철의 변신, 이강훈의 비극이 바닥을 찍다!

까칠부 2011. 12. 27. 09:02

역시 예상했던대로 시놉시스가 바뀌었다. 최초의 기획에서 김상철(정진영 분)의 역할은 이강훈(신하균 분)의 멘토였다. 이강훈을 가르치고 이끌어 제대로 된 의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이강훈이 너무 불쌍해진다.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다. 온갖 불행이라는 불행은 혼자서 다 맞았다. 조교수에서 미끌어지고, 혜성대학병원 조교수자리도 김상철로 인해 불발되고, 갈수록 고립되어가는 상황에 자의반타의반으로 천하대학병원을 그만두고 났더니 어머니 김순임(송옥숙 분) 글쎄 악성 교모세포종이라 한다. 어머니에 대한 그동안의 잘못된 오해는 어머니에 대해 억눌러 왔던 애정과 어우러지며 그로 하여금 굴욕을 감수해가며 김상철 교수의 개인연구원으로 들어가도록 만든다. 그런데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연구마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IRB의 감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하필 그때 연구중인 CH-PKC의 부작용이 결정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정말 불운하다 불운하다 해도 이렇게까지 불행을 타고날 수 있을까? 그런데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김상철에게 이강훈의 인격이 바뀌게 된다? 너무 불쌍해진다. 그래도 이강훈은 주인공이다.

 

이강훈이 나타나고 나서 반복적으로 보이던 김상철의 두통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그의 지병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심리적인 문제이기도 했을까? 한때 누구보다 장래가 기대되던 유망한 젊은 의사에서 단 한 번의 실수는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인해 죽지 않아도 되는 환자가 죽었다. 더구나 그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기도 전에 병원과 교수가 그의 재능과 가능성을 고려해 아예 없었던 일로 그 흔적을 지워 버렸다. 그것은 김상철에게 있어 의사로서의 한 점 부끄럼 없이 빛나는 이력 가운데 유일한 오점으로 남아 버렸다. 그 자신도 잊어버리고 싶었다.

 

자신마저 속이려 든 것이었다. 자기가 아니었다고. 그때 수술을 집도한 것은 자신이 아닌 다른 의사였다고. 심지어 의신대 병원에서 근무하던 기억마저 지워버렸다. 의신대와 김신우(전무송 분) 교수가 이미 그의 근무기록 또한 삭제해 버렸을 것이다. 편리하게 그는 망각속으로 도망쳐 자신의 죄를 그 망각 너머에 던져버리고자 한다. 그렇게 믿고 그렇게 의심없이 여기며 지나온 시간들이었다. 그 사건은 그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버렸다.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강훈이 나타난 것이었다. 이강훈의 존재는 그에게 절대 열어서는 안되는 비밀의 문을 여는 키워드와도 같은 것이었다. 항상 그의 의식 속에 있었다. 이강훈이 하는 행동, 이강훈이 하는 말, 아니 이강훈의 존재 자체가. 그리고 더구나 이강훈은 그가 그동안 철저히 망각 저편에 묻어두고 있던 진실을 들추어내어 그에게 따져묻고 있었다. 그가 잊고 있던 그 일의 당사자가 그가 철저히 잊고 있던 그 자신이 아니었느냐는 확신을 가지고. 분리되었던 자신이 합쳐진다.

 

그의 두통은 그러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물론 알지 못하는 병이 있을수도 있다. 뇌에 생긴 어떤 이상에 의해 인격이 바뀌는 예는 그다지 드물지 않다. 공교로운 우연일 수도 있다. 하필 그 시점에 이강훈이 나타남으로써 병의 발전과 더불어 그가 그토록 잊고 싶었던 기억이 일깨워진다. 병이 그의 인격을 바꾸려는 찰나 이강훈이 나타났고, 이강훈에 의해 일깨워진 기억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변신을 정당화하는 이유로서 쓰이게 된다.

 

아니다.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김상철의 본질이었을 것이다. 그는 당대 대한민국 최고의 뇌외과 전문의다. 과거에는 촉망받던 젊은 의사였다. 그의 인생에 좌절이란 없었다. 항상 순탄한 길만을 걸어왔고, 선택된 자리에만 있어왔다. 그런 그에게 좌절이지 절망이니 하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굴욕이나 수모도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동안 서준석(조동혁 분)이 좋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사람들을 대해왔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고 애정이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좋은 사람으로서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었다. 사람들의 애정과 존경을, 진심어린 지지를 받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한 믿음에 균열이 생겼다. 최초는 자신이 저지른 의료사고였다. 자신이 넘쳤다. 당연히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실패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그가 순조롭게 진행중이던 CH-PKC연구에 대해 외부의 고발이 들어오고 IRB의 감사를 받게 생겼다. 더 이상 사람 좋은 모습으로 연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거기에는 이강훈의 존재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강훈의 의심과 확신은 더 이상 김상철로 하여금 자신을 감추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압박해 온다.

 

수염을 깎는 것은 그를 위한 의식이었을 것이다. 수염이란 그의 사고의 여유다. 그의 인격에서의 나머지 여유로운 부분이다. 수염을 깎고 나면 한결 단정해 보인다. 단정하다는 것은 빈틈없이 다듬어져 있다는 것이다. 다시 갑옷을 두른다. 이제까지의 자신감과 여유가 만든 느슨한 갑옷이 아닌 이강훈과 마찬가지는 쫓기는 절박함이 만든 두텁고 단단한 갑옷이다. 그는 자신에게 마치 병원균과도 같이 거슬리는 이강훈을 배제하기로 마음먹는다. 이강훈의 어머니가 돌아간 그 순간에.

 

이것은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어머니의 죽음이 그에게 준 선물이었다고나 할까? 그것은 어머니로부터의 해방이면서 김상철로부터의 해방이기도 했다. 여전히 김상철은 인간적으로나 의사로서나 이강훈의 한참 앞에 존재하는 훌륭한 의사다. 이강훈이 김상철에게 배울 일은 있어도 이강훈이 김상철과 맞설 일은 없다. 그런데 그러한 김상철의 우위 가운데 하나가 무너져 내렸다. 김상철의 인간적인 우위가 무너지며 이강훈은 비로소 김상철과 의사로서 당당히 대결할 수 있게 되었다. 김상철의 인격이 바뀌며 이강훈에게 위협적으로 돌아선 것은 비극이지만, 어차피 이강훈과 김상철은 과거 이강훈의 아버지가 죽던 순간 서로 맞설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김상철이 수염을 깎는 순간 김상철에 대한 이강훈의 열등감도 함께 깎여나간다. 그들은 대등하게 장차 의사로서 맞서게 된다. 물론 김상철의 변신이 병으로 인한 것이었다면 그 또한 두 사람이 화해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결국은 이강훈, 아니 배우 신하균이 일구어낸 변화일 것이다. 누구나 이강훈을 주목한다. 모든 이들이 이강훈만을 보려 한다. 작가마저도 예외는 아니다. 때로 글을 쓰다 보면 글속의 인물이 작가마저 뛰어넘어 작가를 휘두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실제 어떤 작가는 자기 작품 가운데 최고의 히트를 기록한 작품의 주인공임에도 아예 언급을 피하는 경우마저 있다. 작품속의 인물이 작가마저 뛰어넘어 혼자 날뛰고 있었다는 이유였다. 이강훈을 중심으로 드라마가 재편되는 사이 결국에 인물의 관계마저 뒤틀리고 마는 것이랄까? 그런데 또한 그것이 이강훈을 위한 것이기에 전혀 어색하지 않고 반갑기까지 하다. 개연성에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튼 참으로 안타까운 장면이었을 것이다. 김상철의 환자로 김상철의 지시에 의해 이강훈이 봐주고 있는 할머니(김영옥 분)이 다가와 전처럼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으려 하는데 이강훈이 먼저 할머니 앞아 조금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기억을 떠들고 있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 아버지는 술도 마시지 않고 자신들도 때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초라했지만 수줍게 웃고 있었다. 자기는 아버지가 어머니에 뽀뽀하는 모습에 놀라 민망하여 포크를 떨어뜨리고 줍고 있었다. 그것을 타박하는 아버지와 이제와 그런 아버지를 타박하는 자신. 할머니가 듣고 있다.

 

사람의 의식이란 그런 것이다. 김상철이 애써 자신의 치부를 기억 속에서 지운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할머니가 자꾸 자신의 젊었을 적 잘 나가던 이야기를 주위에 떠들려 하는 이유와도 같은 것일 게다.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의 당연한 욕망과 본능이 현실을 피해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도망가도록 만든다. 당장의 불행이나 절망은 잊고, 지금 당장의 좌절이나 고통은 잠시 잊어 버리고, 먼 기억 속에 행복했던 한 지점을 찾아 그것을 되뇌이며 그 순간에도 행복하고자 한다. 외로운 할머니가 젊었을 적 화려하던 꿈들을 늘어놓는 것이나, 김상철이 애써 불편한 기억을 지우고 사람 좋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나, 그리고 이강훈이 어머니의 죽음을 맞아 그저 좋았을 적 행복하던 시절의 기억만을 떠들고 있는 것이나. 슬픔과 절망이 크기에 그래도 웃으려 한다. 슬픔과 절망이 너무 깊으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웃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아이처럼. 아이의 말투라서 슬픔은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어린아이와 같은 말투가 되어 시청자의 마음 또한 그토록 잔인하게 헤집고 있었을 것이다. 집요하게도 저미고 있는 것이다. 어느새 슬픔에 동화된다. 이강훈과 함께 웃으며 가슴으로는 눈물을 흘린다. 눈으로 눈물을 흘리기에도 너무 깊은 슬픔이고 절망이다. 그가 어머니 김순임을 살리기 위해 선택했던 많은 희생들을 생각한다면 더 그렇다. 그는 미쳐 있었다. 그가 만난 여느 환자의 가족처럼. 의사가 아닌 단지 환자의 가족이었다. 차라리 의사이기에 더 슬픈 한 인간이었다.

 

"내일은 날이 흐리다고 합니다."

 

인간의 운명을 이야기하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당장 내일을 기약하기도 어렵다. 과연 내일을 볼 수나 있으려는지. 오늘의 맑은 하늘을 보지 못하면 언제 다시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으려는지. 비단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든 김순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전날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나누다 다음날 부음을 듣는다.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어이없이 세상을 떠난 이도 있었다. 행복에 들떠 결혼식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웃고 하던 일들이 생각난다. 바로 전날 싸우고 났더니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 어찌할 것인가? 오늘 같은 태양을 본 누군가는 내일의 태양을 보지 못할 지 모른다.

 

내일이란 없다. 내일이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죽은 이야 잊더라도 산 사람은 어찌하라는 것일까? 그러나 사람이란 후회를 남기며 살아가는 동물이라. 그래도 죽기 전에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한다. 이제 곧 다른 세상에 살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이 세상에 남을 사람을 위해서. 그 한 마디가 그토록 완고하던 수간호사를 설득한다. 원칙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오늘'이다. '오늘'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의 단 한 번 뿐인 '오늘'일 것이다.

 

전반적으로 깔리는 잔잔한 비극의 여운이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못하도록 만든다. 거의 바닥이었을 것이다. 한없이 심연으로 빠져든는 가운데 불현듯 느끼게 된다. 이곳이 바로 가장 밑바닥, 가장 낮은 곳이다. 그래서 이강훈의 표정은 오히려 담담하다. 드라마의 분위기도 오히려 잔잔하다. 그동안 이강훈과 함께 격정을 느끼고 하던 드라마가 오히려 평화롭기까지 하다.

 

서준석의 캐릭터가 보다 분명해지고 있다. 그는 인간이다. 사랑하고, 분노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며, 그러면서도 부끄러운 것을 아는 인간이다. 아직은 순수하다. 모든 감정을 묻어버린 채 오로지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고재학(이성민 분)과는 아직 다른 사람이다. 이강훈의 비극에 진심으로 슬퍼하고, 고재학이 저질렀을 것이 분명한 불의한 고발에 대해 진심으로 분노한다. 이강훈의 오해나 윤지혜의 오해에 대해 거꾸로 화를 내지 않는 것은 그의 인격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자란 탓에 그의 말과 행동에는 여유가 있다. 품위가 있다. 그런 한 편으로 그의 인간적인 음습한 감정들은 그에게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차라리 서준석을 주인공으로 드라마를 만들었어도 상당히 재미있었을 흥미로운 캐릭터일 것이다.

 

비극의 바닥과 김상철의 변신, 그리고 서준석의 또다른 긍정적인 얼굴, 이강훈은 다시 한 번 비극과 마주하지만 이번의 비극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차라리 슬픔이 너무 깊어 홀가분하기까지 하다. 실컷 울고 낫더니 하늘이 너무 맑아 서럽던 기억이 있지 않던가. 단지 지금이 슬플 뿐이다.

 

이런 것이 바로 드라마다. 그것을 깨닫는다. 극적이다. 어째서 그것을 극적이라 말하는가?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원망하는 모든 인간의 감정이 그 안에 녹아든다. 들끓는 인간의 감정이 더욱 첨예하게 선명하게 느껴진다. 살아있다는 감각을 일깨운다. 최고다. 지금 드라마를 보고 있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