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브레인 - 이강훈과 김상철이 서로 마주보고 웃은 이유...

까칠부 2012. 1. 3. 09:27

마침내 이강훈(신하균 분)이 웃었다. 그 앞에서 어느새 천하대학병원의 의사들을 배경처럼 함께 데리고 다니던 김상철(정진영 분)이 웃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유쾌한 웃음이었다. 이강훈은 비로소 솔직해질 수 있었다. 자신이 기회주의적이라는 것을 안다. 이기적이고 계산적이라는 것도 안다. 오로지 그를 위해서만 살아갈 수 있다. 어머니도 핑계다. 아버지도 단지 변명처럼 주워삼키는 이유일 뿐이다. 그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다.

 

윤지혜(최정원 분)의 거부가 이강훈의 자존심에 상처를 남기고 더불어 그가 억지로 뒤집어쓰고 있던 너덜거리던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 주었다. 그래, 그것이 이강훈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기보다 누군가를 증오하는 것이 어울린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를 아껴주기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짓부수고 밟고 올라서는 것이 어울린다.

 

그것은 타협이었을까? 아니면 납득이었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깨달음이었을까? 그것은 진정 이강훈 자신의 본질이었을까? 아니면 주위로 인해, 자기 자신으로 인해, 자신을 위해 그리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사실 아닌 진실이었을까? 그러나 어찌되었거나 이강훈은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전혀 아무런 거리낌이 사라져 버렸다.

 

위악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악을 치장한다. 위악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선에 대한 경멸이다. 다른 하나는 선에 대한 두려움이다. 선이란 무거운 것이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자기의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쓰이고 부담이 된다. 과연 자신은 옳은가? 이렇게 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닌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맞다고 여기면서도 그에 대한 도덕적 판단에 거리낌을 갖는다. 그래서 벗어던진다. 나는 그런 것들과는 상관없다고. 나는 차라리 원래부터 나쁜 놈이라고.

 

맹자가 말한 자포자기와도 통하는 부분이다. 그것은 도덕적인 자신에 대한 회피다. 도망이다. 그러면서도 도덕적이지 못한 자신에 대한 포기이며 방기이기도 하다. 자신은 원래 그런 인간이기에 그에 거리낌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다만 이강훈은 워낙 올곧은 성격이라 그렇다고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자신을 내던지는 하찮은 짓은 하지 못한다.

 

천하대학병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천하대학병원으로 돌아가서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자신을 지금의 처지로 내몰아 던져버린 김상철을 거꾸러뜨려야 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 마음껏 수술을 집도하고 싶은 자신이 있다. 천하대학병원이 아닌 아무곳에서라도 직접 환자를 마주하고 수술로써 환자를 치료하고 싶은 의사로서의 자신이 있다. 드라마는 그러한 혼란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라마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보여준다.

 

천하대학병원으로 돌아가는 이유란 과연 김상철에 대한 복수 때문인가? 그렇지 않으면 집도의로서의 그의 솜씨를 필요로 하는 더 많은 어려운 환자들이 그곳에 있을 것이기 때문인가? 김상철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인간으로서의 감정인가?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의 곁에 있고 싶다는 의사로서의 본능적인 욕구 때문인가? 아니 이강훈 자신도 그것을 잘 알지 못한다. 그것은 말 그대로 감정의 영역이고 본능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단지 연어가 알을 낳기 위해 강을 거스르듯 지금의 이강훈에게 있어 천하대학병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돌아왔다. 그토록 원망하던 고재학(이성민 분)의 허점을 이용해서. 일부러 고재학에 대한 이야기를 흘려 그를 위기로 내몰고 그 위기를 이용해 고재학의 힘을 빌어 다시 천하대학병원에 조교수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부는 치밀한 계산이었고 일부는 우연이었다.

 

화송그룹의 차훈경 회장(황범식 분)을 독단으로 동의없이 수술한 것은 그야말로 도박이었다. 자칫 차훈경 회장의 반감을 사서 오히려 상황이 더 안좋아질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실력을 믿고 도박을 한다. 차훈경 회장을 살려낼 수만 있다면, 아니 살려내는 정도가 아니라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다시 돌려줄 수만 있다면 화송그룹 회장이라는 막강한 힘을 등에 업고 그가 하고자 하는 일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판사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자기가 해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다. 그렇게 믿는다.

 

천하대학병원의 원장 황영선(반효정 분)을 언니라 부르는 환자를 태양병원에서 만난 것은 우연이었을 것이다. 하필 그녀의 남편이 고재학과 친분이 깊고, 천하대학병원과 화송그룹이 추진하고 있던 MOU와도 관계가 깊다. 그러나 그러한 우연한 만남을 이용해서 고재학을 곤란에 빠뜨린 것은 그의 집요함과 치밀함이 가져다 준 필연이었다. 어떻게 하면 고재학을 곤란에 빠뜨리고 그것을 이용해서 고재학의 힘을 빌 수 있는가? 그의 의지가 우연을 기회로 만들었다. 기회를 필연으로 만들었다. 그를 천하대학병원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사실 김상철의 존재 따위 더 이상 이강훈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 김상철이 있으나 없으나 그는 천하대학병원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천하대학병원으로 돌아와서 모두의 인정을 받으며 마음껏 자신의 실력을 펼치며 자신의 의사로서의 가치와 존재를 증명했을 것이다. 단지 이유가 필요했다. 더 필연적이고 더 절박한 이유가 필요했다. 지금은 그것이 그를 지키는 또 하나의 껍질이 되어 버린다. 자신은 김상철을 증오한다. 그를 이기고자 한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자신을 계속해서 채찍질할 수밖에 없는 이강훈이라고 하는 인간이야 말로 더없이 어리석고 가련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렇게밖에는 살아갈 수 없다. 끊임없이 자신을 떠밀고 몰아세우지 않고서는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모른다. 솔직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솔직해진 것이 아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더 절박한 자신을 선택했을 뿐이다. 차라리 위악해지려 한다. 위악해짐으로써 더 자신을 궁지로 내몰고 더 절박한 의지를 벼려내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바보다. 필자가 그의 위악을 무척 마음에 들어하는 이유다. 위악을 그리 싫어하면서도.

 

그러면 김상철의 웃음은 어떤 의미였을까? 김상철에게 이강훈이란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그가 자신의 먼 과거에 놓아두고 온 감추고 싶은 치부였을 것이다. 전적으로 그의 잘못이었고 그의 수치였다. 혹시라도 알려질 경우 지금까지의 그의 완전무결한 커리어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길 수 있다. 마땅히 지금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강훈을 멀리 내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그의 양심이 걸린다. 어찌되었거나 이강훈의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다. 그것은 그의 실수이고 잘못이었다. 더구나 그것을 그는 의도적으로 은폐하려 했었다. 사실을 은폐하고 자신으로 인해 죽은 환자의 가족들을 외면한 채, 아니 아예 깡그리 잊은 채 오로지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내달려왔다. 지금에 와서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고 판단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이강훈은 자신을 진심으로 원망하고 증오하고 있으며 그에 대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 주어야 하는지 모른다.

 

김상철이 이강훈에게 보이는 모순적인 태도가 그것을 말해준다. 이강훈이 싫다. 불편하다. 마치 쫓기는 것 같다. 그런 한 편으로 이강훈이 계속 마음이 쓰이고 그를 위해 무언가 배려해주고 싶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이강훈을 생각한다. 그러나 보이는 곳에서는 이강훈을 자꾸 배척하려 든다. 이강훈이라는 존재가 의미하는 자신의 잊고자 했던 기억에 대한 그의 이중적 감정을 보여준다. 거부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지만 그러나 어떻게든 보상하고 싶다.

 

김상철의 이강훈의 멘토로서의 역할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김상철에게 자기 나름의 속죄다. 그러면서도 김상철은 이강훈이 보여주는 자신의 죄에 대한 솔직한 거부와 반발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이강훈을 괴롭히는 적으로써, 악역으로써, 그러나 이강훈을 단련시키는 모루로써, 망치로써, 그래서 이강훈은 김상철과 함께 있지 않으면 안된다. 김상철 역시 이강훈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김상철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반가움이며 기꺼움이었을 것이다. 돌아온 이강훈의 웃음에 마주 웃음을 지어줄 수 있는 것은. 그의 죄가, 그가 속죄해야 할 대상이, 그가 싸워야 할 적이 비로소 가까이에 왔다.

 

과연 김상철은 이후로도 계속해서 이제까지의 신경질적이고 난폭한 모습들을 보이게 될 것인가?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러한 모습들은 이강훈 한 사람에게만 향하게 되지 않을까? 오로지 이강훈만이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정만으로 반발하며 부딪혀 올 것이다. 이강훈에게만은 솔직해질 수 있다. 이강훈에게만은 악한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있다. 그 또한 짜릿한 쾌감이다. 그저 좋기만 한 대한민국 뇌외과의 최고의 권위자라고 하는 명예로부터 벗어난. 다시 사람 좋은 김상철로 돌아와 나쁜 남자로 돌아온 이강훈과 대립하는 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어쩌면 너무 닮아 있는 두 사람이 마치 부자관계처럼도 보인다.

 

드디어 윤지혜의 드라마가 만들어지려 한다. 지금까지는 윤지혜의 액션이 없었다. 오로지 이강훈에 대한 리액션 뿐이었다. 물론 윤지혜가 이강훈을 거부하게 된 것도 이강훈의 제멋대로인 행동에 대한 리액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윤지혜가 이강훈을 거부하고 어쩌면 이강훈의 적일 김상철의 뒤에 섬으로써 윤지혜는 비로소 이강훈과 독립된 별개의 존재로써 스스로 액션을 취할 수 있게 된다. 이제는 이강훈이 윤지혜에게 리액션을 보여야 할 상황이다. 연애의 생명은 밀고당기기다. 이제까지의 순정적인 윤지혜에 비해 보다 흥미가 강하게 끌리지 않을까?

 

장유진(김수현 분)도 너무 일편단심으로 한결같으니 슬슬 매력이 떨어진다. 인간으로서는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드라마로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 사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 중심에 장유진이 있어야 한다. 원래 그런 정도의 비중이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그래도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듯하더니만 이제는 그저 이강훈의 옆에 말없이 서있다. 연인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고 마치 드러낼 수 없는 부정한 관계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장유진의 원래의 도발적인 매력을 조금 더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강훈이 하려는 일에 있어 장유진에게 브레인으로서의 역할을 맡겨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장유진의 캐릭터를 버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튼 확실히 올곧은 사람보다는 기회주의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이 대하기 편하다. 올곧은 사람은 굳이 다른 것을 보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판단과 다른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계산적인 사람은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보다 무엇이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가가 중요하다. 자기에게 필요하다면 그것이 옳은 것이다. 자기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선이고 정의인 것이다. 그렇게 안 좋게 헤어졌어도 자존심마저 내팽개치며 고재학이 이강훈에게 매달릴 수 있는 이유다. 이강훈이라면 지금의 고재학의 불리한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다.

 

고재학이 밉지 않은 이유다. 그의 악은 올곧은 악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선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악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그 모든 것이 순리라 생각하다. 그가 살아가는 세계에 있어서의 법칙이다. 이익이 되면 선하다. 도움이 된다면 정의롭다. 그렇지 못하다면 악하다. 잘못된 것이다. 그런 가운데 유일하게 예외적인 존재가 있다면 이강훈이다. 그는 진심으로 이강훈을 인정하며 아낀다. 다만 그가 생각하는 방식으로밖에는 그것을 표현할 수 없다. 이강훈 만큼이나 고재학 또한 참으로 올곧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강훈의 고난의 시간은 끝났다. 김상철과의 대결은 아무리 그가 몰리더라도 단지 그의 실력과 경험이 김상철에 미치지 못하는 탓이니 고난이라 할 수 없다. 고난이란 자기에게서 비롯되지 않은 어려움이다. 도저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절박함이며 절망이다. 그에 비하면 이제 김상철과의 대결은 오로지 실력과 실력의 싸움이다. 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지만 그마저도 감수하며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으면 안된다. 아니 그조차 이강훈에게는 쾌감일까?

 

이강훈은 아무리 보아도 S보다는 M에 가깝다. 아무리 가시를 세워 보아도 그것은 다른 사람을 찌르기 위한 가시가 아니라 자기를 찌르기 위한 가시다. 어떤 모략도 책략도 결국은 자기를 궁지로 내던짐으로써 비로소 성립한다. 가엾기도 하고, 참으로 안쓰럽기도 하고, 어쨌든 동정하고 연민하게 된다. 남자인 이강훈에 남자인 내가 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참 매력적인 캐릭터다.

 

비로소 드라마가 새로운 전환점에 들어섰다. 과연 천하대학병원을 무대로 한 김상철과 이강훈의 대립과 대결은 어떻게 그려질 것인가?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주기 시작한 서준석(조동혁 분)의 존재도 신경쓰인다. 역시나 도련님이라 쉽게 세상에 물들기도 하지만 그러나 혜택받은 환경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얻어진 느긋한 낙천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을 곤란케 하는 죽은 환자의 가족을 비난하는 아버지 앞에서 그 환자의 가족을 좋은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선량함은 아직 크게 드러나지 않은 서준석의 매력일 것이다. 그러한 서준석의 매력을 윤지혜는 알아줄까?

 

서준석이 더 분발할 필요가 있다. 그런 필요를 작가 자신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이강훈과는 다른 정의를 보인다. 다른 방식으로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물론 서준석을 연기하는 조동혁의 매력이나 존재감이 신하균의 그것에 비해 한참 모자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서준석이 더 살아남으로써 이강훈과 김상철의 짐이 덜어진다. 윤지혜 역시 살아나게 된다. 밀고당기기는 중간에 중요하게 끼어드는 또다른 라이벌이 있을 때 빛을 발하는 법이다. 연애의 공식이다.

 

재미있어지려 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재미가 이강훈의 동선을 쫓으며 그의 불행에 함께 안타까워하는 비극적인 재미였다면, 이제부터의 재미는 정면으로 김상철과 맞서며 승리를 쟁취해가는 투쟁과 성취감의 재미일 것이다. 어떠할 것인가? 비극은 끝난 것인가? 기대가 크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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