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내 과거니까!"
문득 김상철(정진영 분)이 어째서 자신의 잘못을 대신 뒤집어 썼느냐고 따져묻는 이강훈(신하균 분)에게 이와 같이 말하는 장면에서 필자는 그동안 숱하게 패러디되어 왔던 영화 <스타워즈>의 한 장면을 떠올리고 말았다.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가 마침내 마주한 다스베이더로부터 듣게 되는 충격적인 한 마디,
"I'm your father"
아이는 부모를 증오한다. 그러면서도 동경한다. 부모가 갖는 절대권력을 증오하며 또한 그 권력을 닮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들을 통해 아이는 부모를 이기고 마침내 어른이 된다. <스타워즈>에서도 베스핀의 구름도시에서 루크 스카이워커가 다스베이더를 만나는 장면은 그러한 인간의 무의식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강훈에게 다스베이더란 김상철이었다. 그의 아버지이며 그의 적이었다.
김상철에게는 이강훈이 갖지 못한 것들이 있다. 그리고 이강훈이 갖고자 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이강훈이 가지고 있지 못하기에 질시하며 증오하는 것들이 있다. 김상철이란 이강훈의 모든 것이다. 이강훈의 현재이며, 미래이며, 그리고 과거다. 아니 김상철이야 말로 지금의 이강훈이 태어나게 한 아버지일 것이다. 김상철이 있었기에 이강훈은 의사가 되려 했고 의사가 될 수 있었다. 김상철은 이강훈의 아버지를 죽였으며 또한 이강훈의 아버지가 되었다.
김상철도 그것을 안다. 아니 알았다. 이강훈은 그가 만들어낸 괴물이다. 그리고 그의 과거와 너무나 닮아 있는 가련한 아이다. 그것이 너무나 밉고 또한 너무나 사랑스럽다. 아버지가 자식을 보는 심정일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보며 증오와 연민을 갖듯 부모 역시 자식에게 같은 감정을 갖는다. 그를 증오하여 내치려고도 해 보지만 끝내 자신과 닮은 그를 완전히 저버리지 못한다. 마침내 자신과 닮은 이강훈에게 자신을 맡기며 그의 칼 아래 피를 흘리고 만다. 이강훈 역시 자신을 닮은 아버지 김상철을 벤다.
말하자면 그것은 다스베이더라고 하는 증오스러운 가면을 쓴 아버지와의 대면이었을 것이다. 과거의 순수하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아들 루크 스카이워커와의 만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식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과거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현실과 타협하고 은폐하라고. 스스로 김신우 교수가 되어 그때 자신이 바랐던 그 모든 것을 이강훈에게 베풀려 한다. 이미 자신이 실수를 저지른 사실을 알고 그것을 고백하러 온 이강훈에게. 같은 길을 가기를 바란다.
사실은 이기다. 그렇게 바랬다. 자신의 경력에 단 하나의 흠집도 없기를. 자신의 커리어에 있어 작은 오점조차 없기를. 그래서 자신의 죄를 외면했다.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자신의 책임으로부터 눈을 감았다. 그러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떠했던가? 기억을 잃기까지, 그리고 기억을 잃고 난 뒤 그는 어떤 지옥 속에 살고 있었는가? 그래서 김상철은 더욱 이강훈으로 하여금 자신과 같은 길을 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김상철 자신이 김신우 교수의 역할을, 그리고 이강훈은 또다른 자신이 될 뿐이었다. 과연 자신의 실수가 명백한데 김상철이 알아서 그 책임을 뒤집어쓴다고 이강훈은 김상철과 다른 길을 갈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이강훈도 김상철과 같은 길을 가게 될 뿐이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이란 그렇다. 자기와 같이 살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결국 부모조차도 이미 자기가 걸어온 길 밖에는 알지 못한다. 어리석은 모정으로 이강훈으로 하여금 내내 오해하도록 만들고, 그래서 자신에 죄를 짓도록 만들고, 진실을 알게 된 후 더욱 후회하게 만들었던 이강훈의 어머니 김순임처럼. 멋대로 집을 나가고, 더구나 밖에서 아이까지 임신해 온 어머니를 원망하고 증오했었는데 그러나 그것이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잠시 도망쳤던 것이고 밖에서 임신해 들어온 아이라 여겼던 여동생은 아버지까지 같은 친동생이었다. 그러면 또 여동생의 상처는 무엇인가? 하지만 그것이 김순임이 살아온 방식이니까. 그래서 자식은 부모를 닮아간다.
다만 그렇다면 과연 이강훈의 말처럼 그는 송민우 환자의 수술 도중 실수를 저질렀는가? 그렇다기에는 너무 태연하다. 태연하다 못해 당당하기까지 하다. 양심이라고는 없는 것 같다. 그토록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서도 김상철이 그 잘못을 모두 뒤집어써주었는데 감히 그것을 가지고 거래를 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강훈은 자기애가 강한 타입이다. 자기애란 자기의 무오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 차라리 인지의 부조화로 자신의 오류를 부정할지언정 그것을 저리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타입이 아니다. 김상철 역시 그러한 충격과 혼란으로 인해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했다.
그는 단지 거래를 하고 있을 뿐이다. 김상철을 수술하고 싶다. 김상철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수술하여 낫도록 하고 싶다. 그것은 김상철에 대한 최고의 복수인 동시에 김상철에 대한 화해이고 용서다. 그리고 증명이기도 하다. 김상철은 수술에서 실수하여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도록 했지만 자신은 수술로써 김상철을 살릴 것이다. 오로지 자신만이 지금의 김상철을 살릴 수 있다. 이보다 의사로서 더 훌륭한 복수가 어디 있겠는가? 김상철은 하지 못한 일을 이강훈은 해낸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아들로써 아버지를 극복하고 독립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송민우 환자를 수술할 당시 혼란스런 이강훈의 뇌리로 스치고 지나간 김상철의 한 마디, 그리고 황영선(반효정 분) 병원장으로부터 들은 김상철의 교통사고와 해리성 장애,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일부러 부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로 하여금 그 부분의 기억만을 지워버리게 만든 것은 그 자신의 죄책감이었을 테지만, 그러나 그 순간 그는 그 사실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양심의 가책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시간들과 기억마저도 잊고 지내던 시간들, 연민하게 된다. 의사로서 비로소 이강훈은 김상철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용서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별개다.
중요한 수술이다. 이강훈은 과연 김상철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김상철에게 있어서도 자신의 과거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물론 죄의식은 끝까지 가지고 간다. 후회도 마지막 순간까지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올바로 죄를 마주하고 후회하는 것과 죄를 피하면서 후회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자신의 뇌를 보고 싶다. 자신의 죄를 보고 싶다. 자신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고 죄의식에 괴롭게 만든 그 뇌를 보고 싶다.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다.
서준석의 참여는 그런 점에서 상징적이다. 윤지혜는 어떻게 해도 딸의 느낌이다. 딸은 굳이 아버지를 극복하려 들지 않는다. 굳이 그럴 필요를 찾지 못한다. 그러나 아들은 아니다. 그리고 서준석은 김상철의 또다른 아들이다. 김상철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실수로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김상철과 마찬가지로 김상철이 기억을 잠시 지워버렸듯 자신의 손에 붕대를 감아 버렸다. 김상철은 자신의 죄를 잊었고 서준석은 죄를 지은 자신의 손을 가렸다. 서준석에게 있어서도 어른으로서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딛고 이기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장 닮은 아들은 이강훈이지만 또한 가장 닮은 아들은 서준석이다. 그래서 서준석도 이강훈과 함께 한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참 짓궂은 한 마디였다. 그리고 가장 다정한 한 마디였을 것이다. 비로소 깨달았을 것이다. 자기가 얼마나 바보같았는가를. 이강훈이 수술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리고 내내 마음졸이며 안타까워하며 마침내 수술이 성공하자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그는 의사다. 어떻게 해도 의사다. 자신의 잘못으로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어도 의사인 이상에는 그조차 짊어지고 환자와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아직 의사이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그가 손에 붕대를 푸는 계기로 김상철의 수술을 선택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할 것이다. 라이벌이라더니 결국 형제였다. 형제란 그렇게 형제에게 짓궂고 다정하다. 질시하고 원망하고 증오하며 그럼에도 형제일 수밖에 없다.
물론 맞는가는 모른다. 작가에게는 작가 나름의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득 그 장면에서 비상하게 <스타워즈>의 한 장면이 떠오르고, 프로이트가 떠오른 것은 단순한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러한 의도가 분명 그 근저에 깔려 있다. 부모와 자식의 근친증오와 증오하면서도 연민할 수밖에 없는 양가감정, 그리고 부모를 극복하고 홀로서기를 하기까지. 드라마는 결국 이강훈이라고 하는 자식이 김상철이라고 하는 아버지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 성장드라마였을 것이다. 때로 반항도 하고, 가출도 하며, 원망도 하고, 증오도 하고, 그리고 마침내 이해하고 화해한다. 비로소 아버지를 이기게 되었을 때 자식은 온전히 아버지를 연민할 수 있게 된다. 아버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윤지혜가 김상철의 수술을 거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흥미롭다.
아무튼 결론은,
"나는 아버지가 아니다!"
이강훈의 표정에서 승자의 우월감마저 느끼게 된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따져묻는 이강훈을 외면하고 돌아서는 김상철을 쫓아 걸음을 잰다. 네 걸음. 바로 김상철과 이강훈의 거리다.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마음껏 그를 희롱한다. 그는 실수하지 않았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김상철은 지금껏, 아니 앞으로도 계속 후회하며 살게 될 테지만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김상철을 수술한다. 그리고 그를 완치시킨다. 두고두고 그를 회상하며 통쾌해할 것이다. 김상철을 살린 것은 나다. 김상철이 말한 것처럼 그는 김상철과 같이 살지 않을 것이다.
묘한 긴장감과 더불어 은밀한 통쾌함마저 느끼게 된다. 비장하면서도 후련하다. 이제까지의 헤실거리던 가벼운 분위기는 그렇게 유쾌하게 조여진다. 슬프거나 안타까운 느낌이 없다. 이대로 김상철이 죽어도 그 뿐, 단지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김상철이 수술대에 누워 있고 이강훈과 서준석이 그를 치료하려 한다. 자식이 어느새 자라 아버지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인생에 있어 이보다 멋진 마무리가 어디 있겠는가? 모든 이들이 그같은 행운을 누리지는 못한다.
김상철에게는 가족이 없다. 원래 없는지 드라마상에 나오지 않는다. 이강훈의 아버지는 김상철에 의해 죽었다. 그를 낳아준 아버지와 그를 태어나게 한 아버지가 그 순간 교차한다. 어머니도 죽고 없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를 대신할 누군가가 필요하기는 할 것이다. 어머니와 교감하던 윤지혜와 이미 한 아이의 어머니인 장유진(김수현 분), 역시 장유진이 이미 한 아이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강훈이 부쩍 친절해진 이유일 것이다. 과연 누구일까?
의외로 상당히 산뜻한 마무리로 가게 될 것 같다. 비장하다거나 무거운 마무리가 아닌 자궁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해방감과도 같은 후련함일 것이다. 그곳에서도 루크 스카이워커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리고 자신을 보았다. 이강훈은 김상철에게서 자신을 본다. 그를 베려 한다. 그를 베고 살리려 한다. 그리고 그는 다시 태어난다. 어떤 모습일까? 벌써 궁금하다. 다시 태어난 이강훈이란.
기대하게 된다. 기다리게 된다. 산고의 고통처럼. 아이가 태어나려는데 밖에서 서성이며 기다리는 심정이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어 태어나려 하고 있다. 작품은 자라나는 게 아니다. 비로소 완성됨으로써 태어나는 것이다. 그 과정이다. 과연... 수미일관하는 완성도를 기대한다. 흥분된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028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를 품은 달 - 영상으로 써가는 로맨스판타지, 원작을 살리다! (0) | 2012.01.12 |
---|---|
난폭한 로맨스 - 비극과 희극의 아이러니, 다만 유은재가 부족하다! (0) | 2012.01.12 |
샐러리맨 초한지 - 제목과 기획의도와의 괴리, 어디가 샐러리맨인가? (0) | 2012.01.11 |
브레인 - 동승만의 복종과 불신, 이강훈이 분노하는 이유... (0) | 2012.01.10 |
브레인 - 위악의 반역자, 나쁜 남자 이강훈의 성공에 열광하는 이유! (0) | 2012.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