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에서도 서사보다는 묘사의 비중이 강했는데 드라마에서는 거기에서도 더 묘사에 할애하려는 모양이다. 원작에서 미궁으로 감춰두고 하나씩 풀어가던 비밀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예 처음부터 모두 펼쳐진 채 시작되려 하고 있다. 어지간히 연출에 자신이 있지 않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다. 당연히 아직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실을 하나씩 밝혀가는 쪽이 이미 모든 것을 아는 상태에서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보다 훨씬 긴장감도 있고 재미도 있다.
어떻게 그 디테일을 채워나갈 것인가? 이미 안다. 어떻게 허연우(아역 김유정)는 죽은 사람이 되어 지난 세월을 이루지 못할 그리움 속에 보내야 했는지. 어째서 이훤(아역 여진구)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여전히 상실감에 외로워하는지. 허염(아역 시완)의 날개가 꺾인 이유도, 민화공주(아역 진지희)가 감추고 있는 비밀도, 도무녀 장씨(전미선 분)의 후회와 고통도, 그들이 장차 밝혀내야 할 진실들을 그들 자신만 모를 뿐 지켜보는 모두가 안다. 그것을 어떻게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이미 아는 사실인데도 흥미를 가지고 집중하여 지켜볼 수 있도록 할 것인가? 결국은 얼마나 디테일하게 설득력 있게 몰입감 있게 그 과정들을 그려나갈 것인가?
아역들에 의한 과거의 이야기가 끝나고 성인연기자들에 의한 현재의 이야기가 시작되려 할 때 가장 먼저 머리를 스치는 불안요인이었을 것이다. 이미 모든 비밀을 시청자가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드라마속 인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진실에 다가가야 한다. 자칫 그 과정에서 설득력이 떨어지거나 하면 드라마에 김이 빠져버릴 수 있다. 충분히 극적 긴장감을 견지하지 못한다면 힘이 빠져버린 나머지 실망하는 시청자가 나올 수 있다. 오히려 지금의 높은 시청률은 앞으로의 전개에 있어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은 그만한 자신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기는 어차피 이미 원작이 있는데 진실을 감춰둔다고 그것이 여전히 비밀로 남아 있을 리 없다.
더구나 또 하나, 아니 어쩌면 더 클 수 있는 중대한 불안요인이 과연 아역연기자들이 보여준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성인연기자들이 어떻게 이어받을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아역연기자가 연기하는 사랑과 성인연기자가 연기하는 사랑은 전혀 다르다. 같은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두고서도 어려서보다 지금 더 진하게 느끼는 이유와 같다. 과연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나 할까 싶은 나이지만 그래서 그네들의 사랑에는 계산하지 않는 순수함이 있다. 지난 세월 어딘가 두고 온 듯한 아직 순수하던 시절의 자신의 모습이 그곳에 있다. 그에 비하면 어른의 사랑이란 현실의 사랑이다. 노스텔지어이고 판타지다. 그리고 리얼한 현실이다.
드라마가 초반 화제를 불러모으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알기나 할까 싶은 젖내도 가시지 않은 한참 어린 아이들이었다. 세자는 기껏 연서라고 써서 보냈는데 연우는 그것을 설이에게 묻고는 결투장이라 착각하여 세자가 심부름보낸 상선에게 거짓말을 하고 만다. 사랑이 무언지조차 모른 채 운명처럼 이끌림부터 느끼게 된다. 사랑이란 단지 그 뒤에 따라붙는 수식어일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리도 순수하고 이타적이고 더구나 비극적이기까지 하다. 순수한 만큼 아이들의 눈물에는 어느새 잊고 있는 자신의 순수를 일깨우는 힘이 있다. 울컥 눈물을 흘리고 만다.
저들의 사랑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당연한 바람이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이들이 밉다.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려드는 대비 윤씨(김영애 분)과 종친 윤대형(김응수 분)은 더욱 악 그 자체로서 형상화된다.
순수의 반댓말은 욕망이다. 순수의 대척점에는 탐욕이 있다. 자신들의 탐욕을 가로막는 연우에 대해 그들은 서슴없이 죽음을 말하고, 순수한 사랑을 지키려는 이훤을 현실로써 협박한다. 아직 어리기만 한 그네들의 사랑은 그러한 어른들의 사정에 비하면 한없이 무력하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더 슬프다.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 꺾이고 마는 그들의 순수가. 어른들의 탐욕에 더럽혀지고 마는 그네들의 진심이. 비극은 안타까움이 되고, 아쉬움은 간절함이 된다. 더구나 아이들이 연기까지 너무 잘했다. 징그러울 정도다.
그래서 문제인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책임이 없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기에 짊어져야 할 현실의 짐이라는 것도 없다. 그에 비하면 어른들에게는 많은 것들이 뒤따르게 된다. 단지 이훤이고 허연우이면 좋을 것을, 어른이 되고 나면 왕이라는, 혹은 남자라는, 여자라는, 무수한 수식이 뒤따르게 된다. 그 수식에 맞는 모습과 책임이 그들에게 지워진다. 그리고 시청자의 입장에서 현재의 자신과 가까운 성인연기자들의 그것은 자기 자신의 대신일 수 있다. 마냥 몰입할 수 없다. 아마 성인연기자가 세자의 행동을 연기했다면 그 무대책과 무책임에 대해 비판이 나왔을 테지만 아직 아역이기에 그들에게는 그러한 책임조차 면제된다. 그런데 성인연기자라면.
연기력의 문제가 아니다. 배우 자신의 매력이 갖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저 아름답게만 채색된 순수에 대한 향수와 추억과 그리고 지금도 치열하게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괴리다. 아역이란 성인 시청자들에게 있어 돌아갈 수 없는 그 무엇일 수 있지만, 성인연기자는 지금 당장의 자신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어떻게 아역 연기자들이 보여준 노스텔지어와 판타지를 해치지 않으면서 시청자의 현실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 그를 위한 준비는 갖춰졌다. 대비 윤씨와 김응수라고 하는 현실의 힘과 그 힘과의 대립은 현실의 첨예함을 보여줄 것이다. 드라마는 이중구조로 이루어진다. 이훤과 허연우의 로맨스판타지와 왕 이훤과 윤대형과의 치열한 궁중암투다. 그 조화에 드라마의 성패가 달려있을 것이다.
바로 다음회다. 바로 오늘 6회에서 그것이 결정된다. 어떻게 성인연기자들의 매력이 아역들의 매력을 대신하며, 아역들이 보여준 순수하면서도 애절한 사랑을 훌륭히 이어받아 로맨스판타지로서 형상화해갈 것인가. 아역들 그 이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더라도 어느 정도는 시청률의 손실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려운 고비다. 아역들이 너무 훌륭히 잘해냈다. 이런 때 고민하게 된다. 성인연기자들의 부담이 크다.
아무튼 이런 것이 바로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이로서의 의무라는 것일 게다. 사랑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사적으로는 단지 자신의 아내이고 아들일 뿐이지만 나라 전체로 보자면 그는 나라의 국모가 될 것이고 장차 나라를 물려받을 왕자가 될 것이다. 평범한 여염의 아낙이라면 조금 사치스럽고 어리석은데가 있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테지만 한 나라의 국모라면 문제가 전혀 달라진다. 남의 집 아들이 버릇없고 어딘가 모자른데다 건강까지 나쁘다면 그저 잠시의 걱정과 동정의 대상이 될 뿐이지만 장차 왕위를 물려받아 나라를 다스려야 할 입장이면 문제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왕비의 친정이 워낙 별볼일 없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어쩌면 왕위를 물려받게 된 뒤로도 어려운 지경에 놓일 수 있다. 왕의 아내나 왕의 모친이 정치적 실세와 대립관계에 있어도 이는 곧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사실 말이 안되는 것이다. 한 나라의 세자가 되어 단지 자기가 좋다는 이유로 세자빈이라는 중요한 자리에 앉히려 하다니. 세자빈이란 장차 나라의 국모가 될 자리이기에 보다 치열하고 엄격한 정치적 논리에 따른 논의가 필요하다. 정치적 다툼과 협상의 자리다. 누구에게 그 자리를 허락할 것인가? 누가 그 자리에 적합할 것인가? 정히 마음에 둔 이가 있어 그와 함께 하고 싶다면 일단 세자빈을 정한 다음에 후궁의 자리에 앉히면 된다. 그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판타지이기에 그 모든 것이 무시된다. 세자가 사랑에 빠지고 사랑하는 이를 빈에 앉힌다. 왕이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비의 자리에 앉힌다. 그것부터가 판타지다.
조선이 600년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였다. 왕이란 개인이 아니었다. 왕이란 사직을 위한 수단이었다. 왕이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드라마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은 왕을 옆에 낀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다. 사대부의 공론을 따르는 왕도정치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전자는 왕과의 거리를 명분으로 삼고, 후자는 대의를 그 명분으로 삼는다. 전자는 왕을 전제로 그 왕과의 거리에서 그 힘을 얻고, 후자는 대의를 통해 사대부 사이의 공론을 등에 업음으로써 그 힘으로 삼는다. 왕을 능멸하되 철저히 왕을 이용하고 왕을 앞세운다. 윤대형이 과연 왕의 외척이 아니고서도 그와 같은 권세를 누릴 수 있었을까?
세부적으로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양명군이 찾아들어간 격투장과 같은 경우다. 조선시대 각 마을에는 장정들이 모여 힘을 겨루며 놀 수 있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에서 주로 겨루던 것이 씨름과 택견, 굳이 고증에도 맞지 않은 이종격투기보다야 그쪽이 훨씬 그림도 멋지고 예쁘게 나오지 않았을까? 택견의 굼실거리는 몸짓은 살벌함과는 거리가 있으면서도 확실하게 타격기가 주는 호쾌함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기왕에 조선이 배셩인데 아까웠다. 반면 아예 드러내 놓고 같은 방송사의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을 통해 발표한 노래 '순정마초'를 가져다 쓴 부분은 통쾌하기까지 했다. 고증을 무시해서 아쉬웠다면 고증을 무시해서 후련했다. 역설이지만 조금 더 역사를 가볍게 유쾌하게 즐길 수 있으면 좋다.
아역들의 역할이 끝났다. 성인연기자에게로 바통이 넘어가려 한다. 성인연기자와는 다른 아역들의 눈물이 가슴을 헤집는다. 그것이 어른들의 탓이라는 것이 더욱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을 짓누른다. 행복할 수 있기를. 그런데 그 행복은 어른이 된 이후의 몫이다. 이미 대충의 줄거리를 알면서도 내내 설레인다. 귀엽기만 한 아이들의 애닲은 비극이 행복한 웃음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불안도 있다. 과연 성인연기자들이 맡은 그들의 역할은 어떠할까? 지켜본다.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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