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재작년, 특히 KBS의 연예대상 시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던 것이 다름아닌 개그맨 김병만의 수상여부였다. 과연 이번에는 김병만이 대상을 받을 수 있겠는가? 최소한 인터넷상의 반응만 보자면 김병만은 이미 유재석, 강호동 다음의 자리에 있었다. 어째서?
최근 KBS2TV에서 방영중인 예능프로그램 <자유선언 토요일>의 코너 <가족의 탄생>을 보면서 바로 그 이유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울컥하는 감동과 마지막 순간의 짜릿한 희열, 그는 어쩌면 좌절과 절망에 익숙한 오늘날의 희망의 아이콘일 수도 있겠다.
삶이란 그렇다. 삶이란 실패를 쌓아가는 것이다. 실패를 쌓아가며 좌절과 절망도 쌓아간다. 어떤 삶을 살았는가는 어떤 실패를 겪어왔는가와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어떻게 좌절과 절망을 겪으며 살아왔는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어느샌가 익숙해진다.
"난 안 돼!"
자꾸 움츠러들고 물러서게 된다. 지레 체념하고 합리화하려 한다. 그것을 현명하다고 말한다. 그것을 인생의 지혜라고 말한다. 무모하지 않아도 되니까. 괜히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있다가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좋을 테니까. 여우의 지혜다. 결국 자기가 부족해 포도를 먹지 못했어도 물러서는 동안에는 폼은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김병만은 아니다.
"나는 이건 안 될 것 같아. 그런 생각 꼭 한 번씩은 있거든요, 적어도. 이제 포기하면 영원히 나는 그거 안돼, 해봤는데 죽어도 안 되더라, 이렇게 평생 그 기억으로만 남는 거죠. 어떻게든 해보고는 싶은데..."
그러고 보면 김병만의 지금을 있게 한 <개그콘서트 - 달인>을 통해서도 김병만은 항상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도전을 반복해 왔었다. 과연 그게 될까? 과연 그런 것을 해낼 수 있을까? 일주일이라는 짧은 연습기간동안 김병만은 어김없이 새로운 자신을 보여주고 있었다. 새롭게 도전하고 그것을 이루어낸 자신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김병만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신체적으로 우월한가? 키가 작다. 더구나 평발이다. 슬라럼을 타면서도 너무 압박과 고통이 심해 연습하는 내내 계속해서 스케이트를 벗고 발을 쉬어주어야 했다. 과거에 다친 부상도 발목을 잡는다. 말 그대로 발목이 돌아가는 큰 부상을 입었던 터라 발목에 무리가 가는 슬라럼은 더 부담스럽다. 그런데 한다. 부끄러움과 희열을 느낀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당장 스스로 무언가에 도전할 용기는 나지 않는다. 다시 몸으로 직접 부딪혀 보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용기란 것이 그렇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남다른 용기를 보여주는 이들을 부러워하면서 동경하는 것이다.
단지 부끄러울 뿐이다. 어째서 나는 김병만과 같이 용기를 내지 않는가. 김병만과 같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려 하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어느새 김병만에 자신을 이입하게 된다. 자기는 도저히 힘들 것 같은 도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내려 하는 김병만의 모습에서 부끄러움과 더불어 부러움과 동경을 느끼며 그로써 자신을 대체하려 한다. 투사다. 자신의 대신이다.
김병만이 보이는 일거수일투족이 바로 나 자신의 것만 같다. 실패에 좌절하고, 그럴 때마다 위축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초조해하고, 그러면서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도전하여 마침내 성공을 이루어낸다. 소리를 지르게 된다. 이제껏 억눌려 있던 자신을 환호와 함께 쏟아내게 된다. 이제까지 답답하게만 보이던 세상이 넓어진다. 불가능이라고 하는 스스로 쌓아 올린 벽들이 한 순간에 모두 허물어져 버리는 것만 같다. 단지 순간의 착각일지라도 그 순간은 그렇다.
바로 이것이 김병만의 매력이로구나. 오히려 김병만이 실패하는 모습들을 고스란히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김병만의 매력이 극대화되는 것 같다. 잘해서가 아니다. 잘 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잘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잘하고자 하는 이유가 가여운 유기동물들 때문이다. 유기동물을 위한 사료를 기부하고자 그는 그러한 힘든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선한 동기마저, 포기하지 않는 용기와 끝까지 도전하려는 의지, 무엇보다 성공하는 희열이 있다. 그는 영웅이다. 실패와 좌절과 절망을 쌓아가는 현대인에게 있어 그는 누구보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영웅이다.
김병만의 롤은 유재석이나 강호동과는 다르다. 이경규나 신동엽, 김구라와도 다르다. 그의 예능은 말로써 들려주는 예능이 아니다. 몸으로 보여주는 예능도 아니다. 행동으로 느끼게 하는 예능이다. 넉살과 더불어 그의 몸짓에는 진정성이 있다. 그는 타고난 광대다. 영웅인 광대다.
<가족의 탄생>을 보면서 김병만의 매력을 다시 확인한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김병만이라고 하는 가치와 존재를 다시금 느끼게 된다. 김병만을 사랑하게 된다. 필자 역시 지나온 시간만큼 쌓아두고 있는 실패와 좌절이 있다. 포기와 절망이 있다. 지금도 생각한다. 그때 그렇게 포기하는 것이 옳았다. 그러면서도 가끔 미련을 갖는다. 그때 단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내딛을 수 있었으면. 솔직히 조금은 아프기도 하다. 그래서 김병만은 부럽고 소중하다.
유기동물과 가족이 되어가고 있는 에이핑크와 인피니트의 모습도 다른 의미로 무척 사랑스럽다. 필자 역시 거리를 떠돌던 녀석과 벌써 6년 가까이 동거하고 있다. 여전히 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집주인이라고 예우는 해준다. 가여운 녀석들이기에 그 마음씀씀이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의외로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의미도 있었다. 크게 터지는 것은 없지만 잔잔하게 가족이 함께 보기에 적당하다.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어른들은 어느새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낄 것이다. 한 주의 마음의 피로를 풀어준다. 보물을 발견한 것 같다. 좋다. 기쁘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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