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이란 원래 비극에서 비롯된다. 희극에서의 웃음이란 비극의 절망과 좌절을 이겨내는 긍정과 낙천의 웃음이다. 그다지 대단할 것 없다. 그다지 심각해하거나 고민할 필요 없다.
"남 앞에 서고 이런 것이, 저는 설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요. 내가 왜 떨 필요 없다. 밑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사실 특별한 게 아니에요. 내가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것. 저는 특별하지 않게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대단한 일이다 엄청난 일이다 자꾸 생각하다 보면 본인이 괴롭잖아요."
그래서 비장해진다. 그래서 비감해진다. 무거워지고 버거워진다. 불안해지고 두려워진다. 불안은 좌절이 되고 두려움은 절망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별 것 아니게 되었을 때는 역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비극이 희극이 되고, 절망이 희망으로 바뀐다.
거의 대부분의 영웅이야기의 구조일 것이다. 어디 가서 강연을 들을 때 가장 집중해 듣게 되는 유형이다. 실패하고 좌절하는 것은 지금 내가 느끼는 불안이고 두려움일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모든 것을 이기고 성공을 이루어내는 것은 내가 믿고 싶은 자신의 앞날일 것이다. 낙관을 배운다. 긍정을 배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용기를 얻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항상 하는 말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사람이 있다. 그 한 걸음을 마저 뗄 수 있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 당장의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가, 아니면 현실의 불안과 두려움에 져서 그 자리에 머물고 마는가. 역사는 항상 전자에 의해 움직여 왔다. 성공이란 열매 또한 항상 전자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그럴 수 있는 것, 바로 용기다. 자신감. 낙천과 긍정이다.
앞으로 이겨낼 수 있을 것을 믿는다.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원하는 바를 이루어낼 수 있기를 믿는다. 무엇보다 그럴 수 있는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갖는다. 과연 아무런 기대도 믿음도 없이 무작정 달려드는 것을 용기라, 자신감이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경규도 말하고 있다.
"꿈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앞서 윤형빈과 전현무가 강연한 내용과 얼핏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계약금 100만원조차 아깝다 했었고, 연관검색어로는 '안웃겨'가 뜨고 있었다 했었다. 졸업성적도 그다지 썩 좋은 편이 아니었고 공중파 아나운서 시험을 봐서 MBC와 KBS에서 각각 두번씩 낙방한 끝에 KBS에서 세번째에야 겨우 합격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자비로 소극장을 지어 무대에 섰고, 아나운서실에서 춤금지령을 내렸는데도 그것을 어기고 예능프로그램에서 춤을 췄다. 꿈을 위해서. 꿈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데도.
하지만 이경규 자신도 말하고 있었다. 이룰 수 있는 꿈을 가지라고. 꼭 이루려 하기보다는 간직한 채 그대로 앞으로 달려가라고. 이 말은 그가 말한 5계명 가운데 첫번째 '내가 잘 되어야 한다'는 말과도 통한다. 꿈을 가지고 꿈을 향해 이루려는 것 또한 '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꿈을 꾸는 것이지 꿈을 위해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결론은 자기애다. 내가 중심이다.
어떻게 벼랑끝에 자신을 내몰 수 있는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낙천하고 긍정하는 마음이 없다면 벼랑끝이란 막다른 절망이고 공포일 뿐이다. 이제 곧 떨어질 일밖에 없다. 하지만 낙천하는 마음이 있고 긍정하는 마음이 있기에 벼랑끝애서 살아나갈 길을 찾게 된다. 이룰 수 있는 꿈을 찾는 것도, 굳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꿈을 간직한 채 앞으로 달려가는 것도 그런 지독스런 자기애로부터 비롯된 낙천과 긍정이 있어 가능한 것 아니었을까?
혼자만 잘되려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믿으면 다른 사람도 믿을 수 있게 된다. 결국 모든 믿음의 시작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자기 자신에 대해 낙관하고 긍정할 수 있을 때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낙관하고 긍정할 수 있다. 세상에 가장 무서운 사람은 남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그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막연히 이룰 수 없는 꿈을 이루고자 달려드는 맹목과는 다르다. 사랑한다면 먼저 대상을 알아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이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지. 성실이 이어진다. 방향이 정해졌으니 이제 뚜벅뚜벅 나아가는 것만이 남아 있다.
전현무가 하고자 하는 말의 맥락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사람들에 보이는 첫인상에 신경쓰라는 것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달라야 산다'는 말도 자신의 강점을 돌아보라는 말이다. 남다른 장점을 찾고 그것을 자기만의 무기로 내세운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넘치는 당당함은 시각적으로 볼 때도 꽤 호감으로 비추기 쉽다. 아집이 아니다. 아집은 집착일 뿐이다.
어째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피곤할 뿐인가? 아무런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목적없이 일찍 일어나봐야 하는 일 없이 잠만 부족해질 뿐이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즐기는 것이지 피할 수 있는 고통까지 즐기라는 것이 아니다. 시작이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것은 시작이라고 하는 기만에 속지 말하는 뜻이다. 모두가 인생의 경험에서 우러난 고언일 것이다. 청소년은 단지 건강하면 된다. 무리하게 휩쓸려 자기 것이 아닌 꿈을 갖고 자기 것이 아닌 삶에 휘둘려 기만당하느니 오로지 자기 자신에 충실하라. 꿈 또한 그러한 자기 자신에게 있다. 꿈을 이루고, 혹은 쫓는 것 또한 그러한 자기 자신에게 있다. 그처럼 오로하게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것 또한 낙천이고 긍정일 것이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은 결코 불안하고 초조해서 자기를 보지 못한다.
아무튼 모두가 실패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좌절한 경험이 있다. 어려움이 있었고 그것을 극복해낸 경험이 있다. 실패는 비극이 되고 성공은 신화가 된다. 실패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것이다. 좌절이란 모두가 피하고 싶은 바일 것이다. 현실의 공포다.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가 어쩌면 공유하고 있는 공포일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것을 어렵지만 이겨내고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이야기로 전하고 있다. 가끔 유머를 섞어가며 타자화할 수 있는 여유가 자신으로부터 그 공포를 유리시킨다. 어쩌면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어쩌면 지금의 공포란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윤형빈은 여전히 <남자의 자격>에서도 웃기지 않는 막내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통해서, 전현무는 언론고시 그랜드슬램이라고 하는 취업대란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시대의 아이콘으로서, 그리고 이경규는 그들보다도 20년을 더 산 인생의 선배로서 농익은 연륜을 전한다. 한 사람은 좌절하고, 한 사람은 성공했으며, 다른 한 사람은 관조한다. 그리고 모두는 청춘들에게 한참 선배가 된다. 그들이 걸어온 길이 앞으로 청춘들이 걸어갈 길일 것이다. 그들이 겪은 시련에 공감하며 그들이 들려주는 성공의 이야기에 자신을 찾는다. 나는 할 수 있다. 그렇게 믿으며.
솔직히 조금은 지루했다. 이미 2년 전에 한 번 했던 내용이었다. 사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란 그다지 많지 않다. 윤형빈이나 이경규나 어느 정도 지난 2010년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그나마 전현무 정도가 2010년 그 자리에 없었기에 실전적이면서도 새로웠다. 20대 초반 취업준비생이라면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을까? 그러나 역시 어차피 이런 종류의 강연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도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어떻게 풀어가는가 하는 것이다. 더구나 벌써 2년 전이니 그때와는 다르게 새삼스레 듣게 될 이들도 있을 것이다. 모두들 편집의 영향도 있지만 하나같이 달변들이라 지루한 가운데서도 어느새 귀를 기울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경규는 정말 대단하다. 앞의 윤형빈과 전현무가 말한 내용을 이경규가 모두 정리해 버리고 있었다. 그것이 핵심이었다. 웃을 수 있다는 것. 웃음이야 말로 모두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일 게다. 비극이 아닌 희극으로 끝나는 것. 희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 마지막까지 웃고 싶다. 연륜이 주는 여유와 그 여유에 묻어나는 낙천과 긍정이 질투의 감정마저 느끼게 만든다.
부디 그저 예능이라 흘려듣고 넘어가지 말기를. 하기는 필자 역시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을 터였다. 지나고 나면 항상 간절하게 떠올리게 된다. 부럽기도 했다. 즐거웠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14
'남자의 자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자의 자격 - 이윤석의 기적, 게으른 김태원에게서 위로받다. (0) | 2012.03.19 |
---|---|
남자의 자격 - 또 한 번의 명강의, 꽃피는 시기가 다 다릅니다. (0) | 2012.03.12 |
남자의 자격 - 남자와 야만, 근육은 동경이며 본능이다! (0) | 2012.02.19 |
남자의 자격 - 식스팩의 위대함, 먹는 것이 곧 즐거움인데... (0) | 2012.02.13 |
남자의 자격 - 김태원, 몸은 12살인데 행동은 2살인 것이 너무 예쁜 거야! (0) | 2012.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