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 - 유방의 모순, 그게 다 직원과 국민에게 가는 겁니다.

까칠부 2012. 3. 13. 09:06

"그 피해가 누구에게 가겠어요? 다 직원들과 국민들에게 가는 겁니다. 아니 그게 회장이 할 짓이에요, 그게?"

 

그나마 모가비(김서형 분)의 변호사가 한 마디 제대로 했다. 안타깝게도 모가비 자신이 저지른 죄 때문에 장량(김일우 분)을 재판정에까지 세우지는 못할 모양이다. 모가비에게서 회장자리를 되찾자고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공금유용과 손실을 강요하다니. 그것은 사기이고 명백한 범죄다.

 

물론 모가비가 멍청한 것은 맞다. 천하그룹 내에서도 선물투자와 관련한 전문가가 적지 않을 것이다. 장량 또한 천하그룹에서 근무하던 임원 출신이었다. 그런데 굳이 장량이 하는 말만을 믿고 그같은 무모한 투자를 결정한다는 것이 제정신일까? 하지만 아무리 피해자가 멍청했다고 그를 의도적으로 속이고 손실을 입힌 행위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사기죄란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유방(이범수 분)에게 저 말을 돌려주고 싶어진다. 회장이 할 짓이 아니면 회장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그래도 되는 것인가? 어째서 모가비의 분식회계와 배임횡령에 대한 검찰수사가 중단되는 상황에 놓였는가? 그러면 전임 진시황 회장 때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을까? 모가비는 누구에게서 그와 같은 일들을 배웠을까? 회장으로 취임한지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

 

유방은 바로 그 진시황 회장의 외손녀를 회장으로 세우기 위해 이와 같은 일들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외할아버지의 회사를 외손녀인 백여치(정려원 분)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모순의 극치일 것이다. 정작 모가비에게는 회사가 개인의 소유물이냐고 따져 물으면서 결국 하고자 하는 바는 진시황 전회장의 사유물이던 천하그룹을 외손녀인 백여치에게 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차라리 모가비가 회장의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진시황을 죽이고 그의 유언장까지 조작한 정황을 밝히려 한다면 이해는 할 수 있겠다. 그것은 명백한 범죄니까. 마땅히 법에 의해 처벌을 받아야 하고 불의한 수단으로 회장의 자리에 앉았으니 쫓아낼 명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같은 이미 있는 진실을 밝혀내기보다 오히려 사기라는 범죄를 통해 잘못을 유도하고 그것으로 그녀를 공격하려 한다. 수단이 정당하지 못한데 재판이라고 유리하게 진행될 수 있을까? 그런데 분노한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어쩌면 작가는 바로 유방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한국의 무모하고도 무도한 대중적 정서를 비판하려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적법인지도 모른다. 얼마나 타당하고 합리적인가도 모른다. 그저 자기 감정에만 충실한다. 반드시 악을 응징해야겠다는 사명감에 도취되어 불법도 서슴지 않는다. 개인의 신상을 캐고, 잘못된 정보를 유포하고, 온갖 모욕과 비난을 퍼부어댄다. 심지어 그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마저 있다. 그런데도 정의롭다. 차라리 내가 불법을 저지르더라도 사회정의를 실천하고야 말겠다.

 

골드만 브라더스는 합법적 절차에 의해 국내에 지사를 설립한 공인된 법인이다. 설사 국가라 하더라도 골드만 브라더스라고 하는 사기업에 대해 내무정보를 내놓으라고 임의로 요구할 수는 없다.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적법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만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하물며 개인이 검찰을 사칭해 그 내부의 기밀자료를 훔쳐내려 한다. 오히려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 아니 도덕적으로도 타인을 속이고 그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무도한 행위를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너무나 당연하고 당당하다.

 

사명감 때문이다. 모가비를 반드시 법정에 세우고 처벌받게 해야 한다는 개인의 정의감과 확신 때문이다. 하기는 그렇게 때문에 이미 유방은 장량과 짜고 모가비로 하여금 공금에 손을 대고 손실을 입도록 유도하는 사기를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모가비가 먼저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 과정에서의 모든 행동은 정당화된다. 최소한 유방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그것이 정의라고.

 

사실은 권력이 하는 짓이다. 아마 유방은 답답했을 것이다. 과거 군사독재시절이라면 그런 정도야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전임 법무부장관을 아버지로 두고 있으니 인맥을 통한다면 권력의 힘을 등에 업고 법이나 절차를 무시해가며 임의로 골드만 브라더스를 조사하고 모가비가 처벌받도록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불법이 저질러지든 어떤 탈법들이 동원되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결과가 옳은데.

 

불의한 권력일수록 원래 과정보다는 결과를 앞세운다. 얼마나 올바른 타당한 절차를 밟았는가보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결론에 이르렀는가를 내세운다. 대중이 바라는 바도 그것이다. 번거롭고 힘들지만 올바른 단계를 밟아 해결해가기보다는 쉽고 빠른 결과만을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유방이 사칭을 하고 약취를 자행하는 이유다. 그는 옳다.

 

유방이란 결국 소시민이라는 것일 게다. 아마 그는 여전히 재벌을 비난하고 정치와 정치인을 욕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이 옳은데 왜 현실은 그와는 다른가? 그러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탓을 돌리고 자신의 도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뻔뻔해진다. 염치가 없어진다. 내 탓이 아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저들의 책임이다. 저들 때문에 이리 된 것이다. 그래서 처음 천하그룹에 들어갈 때도 태연스레 편법적인 수단에 편승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같은 소시민적인 모습이 그가 정의라 여기는 백여치에게 원래의 기득권을 돌려주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그다지 좋게만은 보이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그는 이미 기득권의 맛을 봤다. 억단위가 아무렇지도 않게 오고가는 현장에서 그 중심에 있어 보았다. 굴지의 재벌기업의 경영권이 오가는 한복판에 있는데 과거 취직도 못해 전전긍긍하던 기억이 남아 있을까? 그래서 더 비루하고 비겁해 보인다. 파렴치하고 뻔뻔해 보인다. 동종혐오일 것이다. 필자 또한 소시민이다. 자신의 가창 추한 모습을 보게 될 때 사람은 혐오감과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

 

박범증(이기영 분)의 모가비에 대한 사랑이 애잔하다. 여전히 박범증은 그녀를 사랑한다. 차라리 사랑하지 않았다면 박범증은 모가비와 거래를 하려 했을 것이다. 그녀와 타협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범증이 바라는 것은 모가비의 진심, 오로지 진실로써만 그녀를 대하고자 한다. 오로지 진실로써만 자신을 대하기를 바란다. 박범증이 모가비와 거리를 두려는 것은 모가비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욱 간절히 사랑을 바라기 때문인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결국 모가비를 살리는 것은 박범증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신이 한 일을 모가비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사랑이란 그렇게 바보같다. 차라리 최항량이 살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토록 자신의 뒤를 봐주고 더구나 자신의 복수를 위해 돕다가 살인자가 되어 끝내 비참하게 자살로써 최후를 맞고 있었다. 마음의 빚이 앙금이 된다. 모가비가 최항우(정겨운 분) 자신을 속였든 아니든 상관없다. 어쩌면 최항우 자신도 모가비가 자기를 속였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외면하게 된다. 이제라도 형을 위해서 무어라도 해 줄 수 있다. 무어라도 자신을 위해 희생한 형을 위해 해 줄 수 있다. 거짓이더라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바람이다.

 

그래서 결국 차우희(홍수현 분)도 최항우를 위해 그를 말리려다 마지막에는 모가비에게 위험한 선언을 하고 만다. 그것은 협박이었고 모가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고 말핬다. 그조차도 계산할 줄 모른다는 것이 차우희가 역시 소시민이라는 것일 게다. 평범한 보통 사람은 설사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리라고는 감히 생각조차 못한다.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다. 다만 과연 차우희는 죽은 것일까?

 

모가비의 명령을 받은 비서 장칠복이 마지막 망설이던 모습에서 작은 기대를 가져본다. 모가비를 파멸시키기 위해서는 차우희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아직은 정황이다. 하지만 차우희가 모습을 나타낸다면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 된다. 어정쩡하게 단지 정황과 감정만으로 끝맺는 것은 드라마로서 그다지 아름답지 못하다. 그것은 조금 더 분량이 남아 있을 때 취할 선택이다.

 

모가비의 파멸은 이제 예정된 사실이나 다름없다.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나오는데 어쩌겠는가? 법도 윤리도 다 무시하고 모가비 한 사람을 파멸시키려 달려드는데 무력하게 모가비에게 죽임을 당한 진시황처럼 모가비라고 어쩔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나마 그녀에게는 박범증과 최항우가 있다. 하필 최항우에게는 차우희가 있다. 차근히 절차를 밟아 그 자리에 올랐다면 그녀에게도 그만한 사람들이 준비되어 있었을 텐데 어쩔 수 없는 한계일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이토록 오랜 시간과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은 그녀가 탐낸 그 자리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일 것이다. 유방조차 진시황이 죽고 나자 그 자리를 외손녀인 백여치가 물려받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것은 유효하다. 차라리 봉건시대 영주와도 같다. 작은 왕이다.

 

여전히 백여치에게는 동정이 가지 않는다. 더 이상 유방에게도 공감은 가지 않는다. 차라리 최항우를 동정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순수에게 속는 가장 가엾은 캐릭터일 것이다. 그래서 차우희는 그의 옆에 있는다. 그를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 그 사랑이 어찌 끝날지는. 기대한다. 한 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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