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런 맛일 터다. 2차예선 첫라운드에서부터 슈퍼키드와 트랜스픽션이 맞붙었다. 구텐버즈는 차라리 안쓰러울 정도다. 실력이 없는 팀이 아닌데 상대가 너무 안좋았다. 실력이면 실력, 연륜이면 연륜, 심지어 화제성에서까지. 다름아닌 슈퍼키드와 더구나 트랜스픽션인 것이다.
시즌1에서의 톡식과 브로큰발렌타인의 대전을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전이면서 대참사였다. 어떻게 하필 생방송 첫무대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 두 팀이 서로 맞붙는가? 물론 엄밀히 첫무대는 아니었다. 생방송이 치러진 두번째주에 두 팀은 맞붙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팀이 이기든 결과에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승부였다. 어느 팀이 져서 떨어지든 그 후유증은 결코 작지 않을 터였다.
다만 차이는 있었다. 일단 아직 프로그램 초반이라 충분한 서사가 축적되어 있지 않다. 아무리 트랜스픽션이 한국을 대표하는 밴드 가운데 하나라 할지라도 그 인지도와 인기라는 것이 공중파프로그램의 시청자와 비교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화제성이란 다름아닌 이들 불특정다수의 시청자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무명이던 톡식과 브로큰발렌타인을 일약 화제의 중심에 서게 만든 바로 그들이었다. 원래 그런 불특정다수의 대중에게 자신들의 음악을 들려주려 굳이 서바이벌프로그램에 출연하기를 결심했던 것일 터였다. 차라리 서로 맞붙은 것이 3차예선만 되었어도.
더구나 당시 톡식과 브로큰발렌타인은 강력한 우승후보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반드시 우승팀이 나올 것이다. 실제 이 가운데 톡식이 결승에서 POE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고 있기도 했었다. 반면 시즌2에서 슈퍼키드와 트랜스픽션은 이제 겨우 예선을 치르고 있는 수많은 참가자 가운데 한 팀들일 뿐이다. 대단한 명성과 실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만한 명성과 실력을 지닌 밴드들이 이외에도 적지 않다. 이 가운데 과연 누가 우승을 - 아니 그 전에 예선을 통과해 생방송까지 진출할 수 있을 것인가? 우승후보끼리의 겨룸을 걱정하기에 앞서 생방송까지 살아남을 것을 걱정해야 한다.
그래도 놀랐다. 록페스티벌에 가면 항상 중간에서 가장 크게 분위기를 띄워주는 것이 다름아닌 슈퍼키드였다. 때로는 헤드라이너로, 혹은 그 앞순서에서 많은 이들을 기다리게 만들고, 그 기다림에 대한 보답으로 열광하게 만드는 밴드 또한 트랜스픽션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구텐버즈는 운이 너무 안좋았다. 다른 팀과 겨루었다면 어느 정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었으련만.
하기는 어디 슈퍼키드와 트랜스픽션 뿐일까? 그 다음 순서에도 조금 무게감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학동역8번출구와 데이브레이크라는 실력있는 밴드들이 함께 무대에 오르고 있었다. 학동역 8번출구가 가장 의식하는 팀이 데이브레이크였고, 더구나 커버곡으로 선곡한 노래가 데이브레이크가 리메이크한 바 있는 '인디언 인형처럼'이었다. 투인디언 역시 상당히 흥미로운 음악을 하는 팀이었지만 상대적으로 많이 아쉬웠던 팀이었다. 무언가 아직은 약간 혼란스러운 느낌이었다.
결국 데이브레이크가 올라가고 학동역 8번출구는 시즌1의 2차예선에서 자신들에 혹평을 했던 심사위원 유영석에 의해 'TOP초이스'의 사용으로 구제되어 함께 3차예선까지 나가게 되었다. 그만큼 신선한 편곡이었고, 데이브레이크는 안정적인 파퓰러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었다. 두 팀 다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팀들이었다. 역시나 투인디언은 잊혀지고 말았다. 언제고 한 번 제대로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음악을 들어보고 싶다.
아마 단지 예고편에 불과했을 것이다. <TOP밴드> 시즌2에 출전을 천명한 이름있는 밴드들만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운이 좋아 강한 상대를 피해 안전하게 다음 3차예선으로 진출하는 팀도 나오겠지만, 슈퍼키드와 트랜스픽션 이상의 피비린내나는 혈투를 치러야 하는 팀들도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강호의 고수가 모두 출전한 진검승부의 대회에서 채 예선도 치르기 전에 대진운이 따라주지 않아 강적을 만난 강자들이 우수수 떨어져나간다. 조금 더 그런 것들이 화제가 되어야 하건만. 역시 한국에서의 밴드음악의 저변은 이렇게 취약하다.
역시나 기다렸던 만큼 흥분되는 시간이었다. 아직도 목뒤가 뻣뻣하다. 그토록 신명나는 음악을 들으며 얌전하게 정자세로 단지 귀로만 감상하는 고상한 취미란 필자에게는 없다. 흔들어주어야 한다. 머리를 흔들고, 목을 흔들고, 어깨를 흔들고, 심지어 TV를 보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웃집에 폐가 될 수 있으니 소리는 죽인다. 라이브 보러 가고 싶다. 마음껏 소리를 지르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고 무대가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것은 음악을 듣는 사람의 예의다.
떨어졌지만 밴딩머신의 보컬이 필자의 스타일이었다. 그런 스타일의 음악을 좋아한다. 그런 타입의 보컬을 좋아한다. 역시 이번에도 상대가 안좋았다. 시즌1이었다면 무난했을 테지만 4번출구의 화음이나 마그마폴의 묵직한 돌직구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록이란 역시 백인의 음악이었을 것이다. 오래전 귀로만 들었던 음악을 무대 위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생김의 사람들이 스트레이트로 들려준다. 바로 이것이 필자가 반했던 록 그 자체였을 것이다.
4번출구 역시 시각장애인이어서가 아니라 음악 자체가 너무 아름다웠다. 실망을 주었던 커버곡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진다. 눈이 조금 불편하다고 듣거나 노래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는데는 별다른 큰 지장이 없다. 곡을 쓰는 것 역시 물론이다. 밴딩머신의 보컬에 가졌던 호감만큼이나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훌륭한 무대였다. 상대가 너무 강하다. 자기가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경쟁자가 너무 강하기에 어쩔 수 없이 상대적으로 약해 보인다.
그런가 하면 가장 흥미를 끌었던 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장미여관이었다. 70년대의 사이키델릭과 뽕끼를 연상시킨다. 70년대 어느 클럽의 무대를 떠올리게 하고 만다. 최근 방영중인 MBC의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 삽입되어도 좋을 것이다. 옛스러우면서도 세련되다. 가벼운 듯 그러나 안정되다. 불혹이라는 말처럼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다. 뿌리가 깊다. 음악을 즐길 줄 안다. 잘한다. 나비맛이나 시계태엽오렌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3차예선에 진출한 경우가 아니었을까?
시베리안허스키가 예리밴드에게 진 것은 정말 의외였다. 물론 예리밴드의 '들리는 노래'의 편곡은 너무 훌륭했다. 순간 어디서 들었던 음악이구나 싶었다. 친근한데 다르게 흘러간다. 리더 한승오씨의 기타가 촘촘하게 노래를 채우고 이끈다. 드럼이 바뀐 탓인지 한결 단단하고 야무지다. 보컬 예리의 신명은 타고났다고 봐야 한다. 그래도 시베리안허스키가 아닌가?
시베리안허스키도 대단하지만 그를 꺾고 먼저 3차예선에 진출한 예리밴드가 의외의 복병이었다. 단순히 이슈만을 몰고다니는 트러블메이커는 아니라는 뜻일 게다. 신대철의 'TOP초이스'가 아니었다면 예상외의 이변이 2차예선 초반이 일어날 뻔했다. 트랜스픽션이 슈퍼키드를 꺾은 것은 어느정도 예상된 결과였지만 예리밴드와 시베리안허스키는 정말 예상밖이었다. 심지어 포스트록을 추구하는 프렌지마저 꺾고 올라갔다. 프렌지가 일찌감치 2차예선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상대적으로 주목도는 떨어지지만 가장 의외의 결과가 많았던 조가 아니었을까?
역시나 시즌1의 경험이 축적된 탓인지 연출이 상당히 예능스러워졌다. 적당한 곳에서 첫라운드를 끊어내고 모두가 흥미를 가질만한 슈퍼키드와 트랜스픽션의 결과발표를 마지막으로 미뤄둔다. 심지어 그에 앞서 다음주에 방영될 내용에 대한 예고까지 나가고 만다. 적절히 사전에 흘려주고 중요한 순간에 멈추고 조이면서 흥미와 긴장을 고조시킨다.
시즌1에서는 분명 이와는 달랐다. 우직할 정도로 단촐했다. 성실하고 정직했다. 아마추어들이 다수 출연하고 있었으니까. 분명 시즌1에서 주인공은 아직 자기무대에 서보지도 못한 아마추어들이었을 것이다. 치어리더들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경찰, 택시운전기사, 고등학생에 초등학생까지. 프로들도 참가하기는 했지만 주는 바로 그들이었다. 하지만 시즌2는 다르다. 그 대부분이 프로들이다. 직업으로서 음악을 한다. 그들의 인지도와 인기란 그에 따른 보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자신들이 출연했는데 시청률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프로그램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어렵게 참가를 결심한 팀들을 위해서도 보다 대중들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첨예하게 기울일 필요가 있다. 최소한 이런 이름의 팀들이 나왔기에 시청률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보였다. 자존심이다. 긍지다. 그들이 프로인 이유다. 시즌1에서의 담백한 순수함과는 다른 어느새 세상을 알아버린 서툰 영악함이 반가운 이유다. 딱 인디밴드에 어울리는 정도의 영리함이다. 그래도 밴드라고 하는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
악마의 연출에까지는 당연히 미치지 못한다. 굳이 미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흥미를 높여준다. 음악프로그램이 아니다. 예능프로그램이다. 대중에 재미와 감동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밴드가 곧 이 프로그램이 대중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재미이고 감동이다.
기다린 보람이 있다. 차고도 넘친다. 모르는 팀들도 많다. 어떤 팀들은 이름만 알고 지나간 팀들이다. 어떤 팀들은 이런 팀들도 나오는가 놀라고, 어떤 팀들인 실제 무대를 보면서 이런 팀들도 있었구나 다시 감탄하고. 무엇보다 밴드가 있다. 음악이 있다. 백인백색의 무대가 있다. 재미있다. 다시 한 동안 주말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토요일에는 어찌되었거나 다른 무엇보다 <TOP밴드>!
아직 보지 못한 팀들이 많다. 반드시 보아야 하는 팀들도 많다. 반드시 보게 될 팀들도 더 많다. 이런 팀들도 있었구나. 이런 음악도 있었구나. 매순간 놀라고 감탄한다. 이 맛에 <TP밴드>를 본다. 성찬일 것이다. 너무 배부르다. 감동이 부르다. 목이 뻣뻣하다. 즐겁다. 행복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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