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적도의 남자 - 이장일의 타락, 무죄가 되면 죄가 없는 것인가?

까칠부 2012. 5. 10. 08:58

"회장님의 가장 소중한 것을 제가 빼앗겠습니다."


모든 진실을 안 김선우(엄태웅 분)의 이같은 선전포고에 대해 진노식(김영철 분)은 잠시의 침묵 비명같은 웃음을 흘리고 만다. 과연 그에게는 소중한 것이 남아 있을까? 사랑도, 우정도, 더구나 자신의 자식일지도 모르는 이와 지금 원수가 되어 마주하고 있다. 그의 법적 아내인 마희정(차화연 분)은 그런 그를 의심하고 질투하며 뒤를 밟고 있다.


골리앗이 끝내 다윗의 돌팔매에 쓰러진 것은 그에게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약점은 인간이기에 갖는 것이다. 더 이상 소중한 것도 아까운 것도 있다. 물론 그동안 일구어 놓은 기업이 있다. 그동안 쌓아 올린 사회적 지위와 명성이 있다. 하지만 정작 그가 그런 것들에 집착을 보이는 것은 그 과정에서 그가 포기해야 했던 더 소중한 어떤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미련이며 고집이다. 오기이고 아쉬움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진정 자신의 소중한 것이 되지는 못한다. 인간을 저버린 악마에게는 인간이 상대할 방법 따위는 없다.


이장일(이준혁 분)도 자신의 소중한 일부를 버린다. 직설적으로 물어오는 김선우의 물음에 그는 자기가 지켜야 하는 것을 떠올린다. 가장 소중했던 자신의 일부를 포기해가며 지켜야 했던 바로 그것. 아버지를 지키려 했지만 아버지 이용배(이원종 분)조차 그에게는 수단이 되어 버린다. 악마가 인간을 유혹하는 순간이며 인간이 악마의 손을 잡는 순간이다. 영혼의 타락이란 순간의 선택이다. 이준혁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다. 그는 진정 진노식과 닮아 있다. 진노식이 낳은 아들이 김선우라면 진노식이 기른 아들은 이장일일 것이다. 김선우와 이장일은 형제다.


"진회장이 무죄로 처리되면 죄가 없는 건가?"


하필 이장일이 검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였다. 검사란 법이 갖는 의지다. 법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이며 이성이다. 개인에게 그것을 흔히 양심이라 부른다. 범법행위를 수사해서 밝히고 그것을 재판부에 기소하여 재판을 통해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한다. 판결은 재판부가 내리지만 재판부가 재판을 여는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검사가 수사한 결론을 통해서다. 재판을 통해서도 검사는 이미 확보한 증거와 증언, 그리고 재판정에서의 심문과 공방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 법의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김선우를 배신한 이장일이 검사가 되어 김선우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한 진실을 수사하려 한다. 이런 역설이 어디 있을까?


그는 신이 되어 있다. 옳고 그름이 그의 손에 쥐어져 있다. 그것이 죄가 되고 안되고를 그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양심을 저버리는 순간 그는 양심을 속이는 방법을 배웠다. 단순히 양심으로부터 도망치는 것만이 아니다. 양심을 외면하며 자기를 속이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양심을 속인다. 양심을 속이고 오히려 이용한다. 법을 이용한다. 법의 정의를 실천해야 할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한다. 얼마든지 죄가 아닌 것도 죄로 만들 수 있고, 죄인 것도 죄가 아니도록 만들 수 있다. 그래야 한다. 그렇다고 믿는다. 때로 악마는 신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전지하고 전능하다. 하지 못할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김선우는 솔직한 것이다. 여타의 복수물에서 주인공은 뒤틀린 것을 바로잡고 악을 응징하는 사도로서 나타나고 있었다. 어째서 김선우는 한지원(이보영 분)을 두고 헤밍이라 부르는가? 아직 김선우가 앞을 보지 못하던 시절 김선우와 한지원을 이어준 것이 바로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노인과 바다'였던 탓이다. 한지원이 녹음한 '노인과 바다'를 김선우가 들었고, 이후 자취방에서 한지원에게 다시 읽어달라 부탁하지만 너무 어두워 끝내 읽어주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그 또한 복선이 아니었을까? '노인과 바다'란 인간의 의지에 대한 이야기였을 것이니.


거친 바다와 사나운 폭풍, 그리고 늙고 지친 몸과 자그마한 고깃배로는 너무 버거운 거대한 물고기, 더구나 겨우 사투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길에는 상어떼까지 나타나 애써 잡은 물고기를 모두 뜯어먹고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너덕너덕 기운 돛과 지쳐 쓰러져 누운 몸은 마치 패잔병의 그것과 같다. 그러나 과연 노인은 패배자였는가?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돌아왔으니 그는 실패한 것인가? 하지만 바다에서 그 모든 것과 싸워 이기는 순간 그는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의지가 그곳에서 그 모든 것들과 싸우며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존엄이었다. 인간으로서 존엄하고자 하는 의지였다. 인간은 투쟁하기 위해 존재한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될 수는 없다. 투쟁하는 순간 인간은 파괴될 뿐 패배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심판하려 한다. 아니 물으려 한다. 무엇이 진실인가? 무엇이 죄이고 누구의 잘못인가? 너희 가운데 누가 진정 죄인인가? 그가 사업가로서 성공해서 돌아온 것은 그 물음을 던지기 위해서다. 같은 눈높이에서 당당히 그들에게 묻기 위해서다. 복수를 원해서가 아니다. 원한을 갚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일차원적인 목적이 아니다. 한지원이 그래서 그의 곁에 있다. 그의 눈이 되어주고 그가 미처 듣지 못하는 양심의 목소리가 되어준다. 문태주(정호빈 분)과 더불어 그가 정도를 벗어나지 않도록 붙잡아준다. 반면 이장일은 그나마 자신을 연민하는 최수미(임정은 분)마저 밀어내려 한다. 그토록 지키고 싶어하던 아버지마저 자신을 위한 수단이 되어 있다. 타락한 이장일이 법을 대표하여 그에게 대답해 온다. 무엇이 진실이고, 누구의 죄이며, 어떤 댓가를 치러야 하는가? 하지만 과연 타락한 양심을 양심이라 부를 수 있는가?


인간은 항상 하늘에 묻는다. 신께 묻는다. 그리고 양심에 묻는다. 이대로 좋은가? 이대로 문제는 없는가? 이것이 과연 옳은가? 이것은 과연 잘못된 것은 아닌가? 그 물음에 대해 귀를 닫을 때 인간은 타락한다. 물음으로부터 귀를 닫고 그 답으로부터 마음을 닫을 때 인간은 타락하고 만다. 선이란 의지이며 노력이다. 용기이며 투쟁이다. 거친 바다에서 사나운 폭풍과 싸우며 거대한 물고기와 싸우듯 세상의 모든 유혹과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그때 항상 가장 귀기울여 들어야 하는 것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다.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그는 옳다. 그래서 그는 솔직하다. 거짓됨도 한 점의 부정함도 없다. 항상 거짓에 둘러싸여 자기마저 속이며 살아가야 하는 이장일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말했듯 그들은 형제다. 진노식이라는 아버지를 둔 형제다.


진노식이 그것을 증명한다. 과연 진노식에게 지금 남은 것이 무엇인가?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해봐야 이제 무엇이 남아 있을까? 문득 지나치는 말처럼 김선우에게 묻는다. 혹시 문태주의 친아들이 아니냐고. 확인하고 싶다. 문태주의 아들이 맞다고 김선우를 통해 대답을 듣고 싶다. 자기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자기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어이없는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사랑과 우정을 모두 저버린 것이 아니었노라고. 눈앞에 자신에 대한 증오를 드러내고 있는 저 젊은이가 자신의 피를 물려받은 아들이 절대 아니라고.


문태주를 의식해 무리하게 광산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다. 그를 부추긴 것은 문태주가 광산업계에서 전설로 불리운다던 김선우의 말이었을 것이다. 문태주를 배신한 자신보다 더 성공해 있었다. 더 큰 돈을 벌었고 더 큰 명성을 얻었다. 그를 배신하기까지 했는데, 배신해서 그를 절망으로 내몰았었는데, 더구나 어쩌면 그에게 자신의 사랑을 빼앗겼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거짓이다. 그가 자신에게 들려주는 거짓된 대답이다. 그렇게 믿고 싶기에 그렇게 고집한다. 미련을 가지고 집착한다. 아마 그를 파멸로 이르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진노식 자신일 것이다.


법은 무죄를 선고할 지 모르지만 진노식 자신은 자기에게 이미 유죄를 선고하고 있다. 이장일 역시 그 순간 자기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있었을 것이다. 죄인이 되었고 유형을 산다. 양심을 저버리고 자신의 삶을 저버려가며. 최수미를 떠나보내는 것이 과연 최수미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두려워서일까? 하기는 이장일 자신도 자신의 속마음을 모를 것이다. 뒤엉킨 거짓과 진실 가운데 무엇이 거짓이고 진실인가를 그가 알 게 무엇인가. 매 순간순간이 쫓기는 초조함과 불안 뿐이다. 그는 진실로 죄가 없는가?


진실보다는 부정이 우선한다. 이용배가 김선우의 아버지 김경필을 죽이던 그 순간처럼, 그리고 이장일이 이용배를 위해 김선우를 배신하던 그 순간처럼. 최광춘(이재용 분)은 딸 최수미를 위해 자신이 본 진실을 감추었고, 다시 딸 최수미를 위해 그 진실을 김선우에게 고백한다. 최수미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김선우에 대한 미안함을 감수할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죄의 당사자인 이장일과 어울리는 것 만큼은 용납하지 못한다. 자기는 죄를 지을 수 있어도 딸이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 딸이 마주한 죄 앞에 그는 진실로 김선우 앞에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만다. 인과응보랄까? 자신이 감추고 있던 죄로 인해 딸이 더 큰 죄와 만나게 된다.


이장일의 표정이 사라진 연기가 차라리 전율스러울 정도다. 표정이 아닌 영혼이 사라진 것만 같은 모습이다. 모든 것을 잃었다. 자신이 가진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진실을 덮이며 자기를 지키려 하지만 그러나 정작 이미 그가 지킬 것이란 남아 있지 않다. 아버지에게까지 거짓을 증언하게 시키는 자신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는 텅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준혁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된다. 그는 완전한 이장일이었다. 죄와 마주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다.


김선우가 과거 한지원에 했던 말을 떠올린다. 내가 다리가 되어 줄 테니 한지원은 자신의 눈이 되어 달라. 한지원은 그의 양심이 된다. 양심의 소리가 되어 준다. 그가 폭주하지 못하도록 곁에서 지켜준다. 최소한 한지원을 보기에 부끄러운 일이라면 김선우로서는 최대한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신 한지원을 대신해서 진노식의 차유리를 마저 부숴주던 예전처럼 이번에도 김선우는 한지원이 진노식에 대해 품은 한을 대신해서 풀어줄 것이다. 아버지는 원망하지 말라 했지만 그것이 그리 쉬울까? 딸이 다칠까 걱정해 한 말이지만 아버지의 죽음 만큼이나 맺힌 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지원 자신이 김선우의 곁을 지켜준다. 신이 하필 남자와 여자를 함께 창조한 이유일 것이다. 그들은 영혼의 반쪽이다. 원래 하나였다. 정통멜로라더니만 그렇게 서로 사랑하는 장면이 많지 않아도 그 사랑은 운명적인 것일 수 있다. 감탄한다.


마침내 최광춘이 자신이 목격한 진실을 증언하려 나선다. 김선우는 진노식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이장일은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린 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김선우와 맞서려 한다. 진노식에게는 그의 아내조차 그의 등뒤를 노리고 있다. 진노식과 문태주는 서로 만나게 될 것인가? 김선우와 진노식이 무덤 앞에서 한 번 쯤 만날 듯하다. 항상 긴장된다. 기분좋은 긴장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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