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추적자 - 그는 내 몸이라도 즐겁게 해 주잖아?

까칠부 2012. 5. 30. 07:34

"그게 뭐 어때서?"

 

말하는 백홍석(손현주 분)의 눈가가 젖어 있다. 그것은 울분이었을 것이다.

 

"자랑스러운 경찰? 그게 뭔데?"

 

자신이 경찰이다. 자기 자신이 경찰에 몸담고 있다. 20년을 단 한 번도 부정한 뒷돈이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오히려 불법도박장을 운영하는 조직폭력배로부터 뒷돈을 받아챙긴 황반장(강신일 분)을 변호하며 모멸적으로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해 말한다.

 

역설이다. 자랑스럽고 싶다. 명예롭고 싶다. 하지만 누가 알아주는가? 현실은 고단하고 인심은 각박하다. 박봉에 생활고는 해결될 기미조차 없고, 곤궁한 가운데 명예를 챙기기 전에 좌절만 쌓여가게 된다. 명예란 스스로 자랑스러워서도 명예일 테지만 또한 주위에서 알아주고 인정해 주기에 명예이기도 한 것이다. 그들이 보는 세상이란 돈과 권력과 지위가 모든 것을 말하는 세상이다. 아무리 열심히 최선을 다해 명예를 지켰어도 만년반장에 가난하고 힘이 없으면 하잘 것 없다.

 

"그 남자는 내 몸이라도 즐겁게 해 주잖아?"

 

남편인 강동윤(김상중 분)을 향한 서지수(김성령 분)의 저 말이 어째서 그리 서러운가? 차마 울지조차 못하기에 차라리 스산하기까지 하다. 그녀가 등돌려 떠나는 뒤에서 강동윤은 비서인 신혜라(장신영 분)과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신의 남편이지만 그의 곁에는 그녀의 자리란 없다. 그의 아내이지만 자신 또한 그녀의 곁에 없다. 그녀는 단지 서회장의 딸이었고, 그는 단지 서회장의 사위였을 뿐이다. 그렇게 시작된 사이였다.

 

영혼이 비어 버린 자리를 육체가 대신한다. 영혼을 채워주어야 할 그것을 육체의 쾌락이 대신한다. 섹스와 화려한 옷, 호화스런 집, 아무나 함부로 탈 수 없는 고급외제승용차, 무엇보다 그것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해주는 부와 권력이 있다. 사회적 지위가 있다. 사회적인 명성이 명예를 대신한다. 백홍석과 같은 이가 아닌 강동윤과 같은 널리 알려진 사람에게 명예가 있다. 그리고 때로 그 모든 것을 더한 것보다 더 큰 쾌락이 있다. 말 한 마디 손짓 하나로도 수많은 사람을 울고 웃게 만들 수 있는 한오그룹의 서회장(박근형 분)과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강동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쾌락이다. 차라리 그를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은 희생할 수 있다.

 

첫회에서 서회장이 강동윤을 불러 추어탕을 먹이는 장면이 그를 상징한다. 배는 채워주겠다. 입은 만족시켜주겠다. 그러니 떠나라. 하지만 강동윤은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서회장은 강동윤의 배가 부르기를 바라고, 그럼에도 강동윤은 그것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강한 허기를 느낀다. 그는 반드시 모두의 위에 서야 한다.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어떻게 어떻게 여기까지 기어서 올라왔는데!"

 

확실히 강동윤과 PK준(이용우 분)과는 서로 닮아 있다.

 

"뒤로 물러설 아이가 아니야!"

 

아니 황반장과 최정우(류승수 분) 역시 서로 닮아 있었다.

 

"내가 목이 말라서 구정물 좀 먹었다."
"우리 어머니가 시골에서 고구마 캐서 나 학교 보냈거든."

 

모두는 욕망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 욕망한다. 더 욕망하고 또 욕망한다. 자신을 잊을 때까지. 서지수의 저 말도 결국은 같은 맥락이다.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은 자신에게 그나마 몸으로라도 만족시켜주는 이가 있다. 몸으로라도 채워지는 무언가가 있다. 비록 거짓일망정 그 순간만은 욕망이 간절한 만큼 진실한 실체로 다가온다. PK준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로 인해 채워지는 자신의 욕망을 사랑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갖기 위해 PK준은 필사적이었고 마침내 지금의 자리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그것을 쉽게 놓칠 수 있을까? 그같은 간절함이 절박함이 되어 강동윤이라는 거물을 상대로 독기를 드러내기에 이른다. 그와 전혀 다르지 않은 행동을 강동윤 또한 서회장 앞에서 이미 한 번 보인 바 있었다. 강동윤은 서회장을 물고, PK준은 강동윤을 문다. 그리고 그런 PK준을 그에게 딸을 잃은 백홍석이 물려 한다. 딸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백홍석의 바람이란 그렇게 허황된 것이었을까?

 

우리 사회의 근본적 모순을 보여준다. 많은 인간사회의 모순이기도 하다. 진실하지 못하면서 진실하려 한다. 욕망하지도 못하면서 욕망하려 한다. 진정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 자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지만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세상의 눈이다. 세상의 평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스스로 만족하여 이룬 행복은 부서지고, 세상이 인정하여 부여한 가식과 허위는 진실이 된다. 모두는 그래서 그 가식과 허위를 쫓는다.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 하는데 그보다는 검사와 담당판사와의 개인적인 감정이 우선한다 말한다. 판사로서의 책임이 우선이 아니다. 검사로서의 사명이 우선이 아니다. 판사나 검사로서의 명예란 그들에게 전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보다는 체면이다. 세상이 보아주는 판사다. 세상이 인정해주는 검사다. 아무리 아닌 척 애써도 최정우가 보기에 서지원(고준희 분)이란 한오그룹이라는 굴지의 대기업 오너의 딸에 불과한 것처럼 말이다.

 

어느 꿈많던 여자아이의 죽음에 관계된 어른들의 사정일 것이다. 끝내 백수정(이혜인 분)을 죽인 백홍석의 친구 윤창민(최준용 분) 역시 허상을 쫓아 사람을 죽이고 그 실체를 마주하는 고통을 겪게 된다. 그로 인해 자신을 모멸하며 오히려 죄로 빠져드는가? 아니면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하여 양심을 되찾게 될 것인가? 하지만 부끄러운 것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탐내어 스스로 흔들리고 타락하고 마는 어른들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도 황반장은 부하인 백홍석과 조형사(박효주 분) 앞에서 다시 그들의 상관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 지금의 황반장이란 백홍석과 조형사의 상관으로서의 황반장일까?

 

지독스럴 정도로 리얼한 드라마다. 현실의 더럽고 추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 내밀한 속내까지 모두 낱낱이. 한 아이가 죽고, 그로 인해 하나의 가족과 행복이 깨어지고, 그럼에도 멈추지 않은 각자의 욕망과 더럽혀지는 진실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보게 된다.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서회장인가? 강동윤인가? PK준인가? 서지수인가? 아니면 최정우이거나 황반장인가? 하지만 모두는 단지 딸 수정이 죽기 전의 백홍석을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절망케 하는가? 절망이 서로의 절망을 더욱 예리하게 갈아낸다.

 

아무튼 섬뜩하도록 사나운 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PK준의 비명과도 같은 절박함에서 아마 강동윤 또한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PK준이 서지수라는 욕망과 함께하고 있을 때 강동윤 또한 서회장에게 불려가 추어탕을 대접받고 있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도저히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그것이 강동윤을 지금까지 몰아세웠다. PK준도 같다. 신혜라도 같다. 아마 최정우와 황반장과 이들의 운명을 가르는 한 마디가 될 것이다. 허상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전부다. 그것을 실체로 만들기 위해 오늘도 그들은 자신을 잊는다.

 

비루하다는 것이다. 비루하다는 것은 가난하다는 것을 뜻한다. 몸이 가난하고 마음이 가난하다. 영혼이 가난하다. 그래서 채우려 든다. 하지만 영혼이란 미처 닿지 않는 곳이기에 몸부터 채우려 든다. 억지로 채우고 만족한다. 설득된다. 몸이 영혼을 설득한다. 진실과 거짓을 바꾼다. 어느새 자신조차 무엇이 진실인가를 알지 못한다. 강동윤은 알고 있을까?

 

사람들이 가난하다. 그래서 자꾸 밖으로 눈을 돌린다. 남의 눈치를 보게 된다. 자신을 잊게 된다. 그렇게 한 아이가 죽고 잊혀지려 하고 있다. 그 죽은 아이를 부모가 일으키려 하고 있다. 그리고 죽은 아이를 다시 주고 영영 잊혀지게 하려 한다. 세상의 눈이란. 그리고 자신은?

 

가슴이 무겁다. 아이의 죽음이 아니라, 아이의 죽음과 관련한 추악한 진실이 아니라, 그것이 어쩌면 우리네 일상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 섬뜩하기까지 하다. 자신은 어떠한가? 사랑이라는 진실과 욕망이라고 하는 허위가 만난다. 희망을 가져보게 하는 절망이다.

 

재미있다. 그보다 의미심장하다. 의도한 것이라면 죄와 악의 배치가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흥미롭다. 구체적이면서 날카롭다.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후비며 본다.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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