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 시집식구 한 고비, 진정한 전장이 차윤희를 기다리다.

까칠부 2012. 5. 28. 09:00

바로 이래서 내가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라고 하는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이다. 통쾌하다. 호쾌하다. 유쾌하다. 다만 마냥 유쾌하게만 받아들이기엔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결국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차윤희(김남주 분)가 임신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해도 되는가에 대한 시집식구들과의 조율이 끝났을 뿐이다.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바뀌거나 달라진 것 없이 단지 시집식구들의 허락을 얻어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차윤희의 앞에 놓이 가장 큰 난관은 바로 그 일 자체가 아니던가?

 

정작 항상 차윤희의 편을 들어주던 남편 방귀남(유준상 분)이 이번 만큼은 아내뜻에 반대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너무 힘들다. 뱃속의 아이는 물론 아내 차윤희에게도 차윤희가 일하는 드라마제작현장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너무 버겁다. 그래서 차라리 회사와 관계자들에게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배려와 개선을 요구해 보자. 그러나 그같은 너무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방귀남의 제안은 차윤희에 의해 바로 부정당한다. 불가능하다. 그것은 체념이고 절망이었다. 어떻게 해도 바뀌거나 달라질 리 없다. 차윤희가 앞으로 임신이라는 또다른 현실을 짊어지고 싸워나가야 하는 전장이다.

 

그래서 단순하게 처리되었다. 심각해지지도 진지해지지도 않았다. 단지 주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었다. 시할머니(강부자 분)와 시어머니 엄청애(윤여정 분)의 입장과 그녀의 딸들인 일숙(양정아 분)과 이숙(조윤희 분), 말숙(오연서 분)의 입장과, 그리고 남편된 방귀남과 시아버지 방장수(장용 분)까지. 차윤희의 입장은 물론이다. 어느새 차윤희가 제시한 조건에 넘어가 그녀의 편에 선 방정배(김상호 분)의 지지발언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말에 불과하다. 직접 차윤희가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은 현장에 있다. 그것은 차윤희가 직접 부딪히며 극복해가야할 문제일 것이다. 사소한 것은 사소하게 넘어간다.

 

물론 신뢰는 한다. 차윤희의 캐릭터를 믿고, 차윤희의 캐릭터를 만들어낸 작가를 믿는다. 이겨낼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차윤희는 멋지게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지켜낼 것이다. 자신의 삶과 방식을 관철해낼 것이다. 하지만 어쩌려는가? 저리 강고한데. 과연 차윤희가 임신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렸을 때 그나마 시집식구들처럼 그녀를 배려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역시 어쩌면 단순해져야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문의대를 나온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방귀남의 말 몇 마디에 현혹되곤 하던 현장의 사람들이었다. 조역답게 상당히 평면적이고 단순하게 묘사되고 있다. 말하지만 드라마는 시사고발프로그램도 아니고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단지 오락드라마일 뿐이다.

 

임신이란 임산부에게 많은 인내와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나의 생명을 뱃속에 품고 일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 일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상당한 소모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차라리 그만두라 말한다. 임신한 채로 일하기보다 그쪽이 당사자나 주위나 모두 편하다.

일부러 어려운 길을 간다. 차윤희 자신은 물론 주위사람들 모두 덕분에 어려운 장애를 헤쳐나가야 한다. 다름아닌 차윤희 자신을 위해서.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차윤희라고 하는 자신의 삶과 존엄을 위해서. 그렇지만 당당하다. 구김이 없다. 주눅들어 있지 않다. 그녀의 승리를 기대한다. 그녀와 같은 싸움을 각오해야 하는 모든 여성들을 대신해서.

 

의외로 차윤희의 친정엄마 한만희(김영란 분)가 재미있다. 얼핏 한만희 또한 우리 사회의 흔하디 흔한 시집살이 시키는 구식 시어머니에 불과하다. 하지만 결국은 져주지 않는가? 며느리 민지영(진경 분)과 티격태격하는데 마치 게임을 하는 것 같다. 한참 이에서 고압적으로 내리누르려 하기보다는 정면에서 직접 말로 싸운다. 때로 지고 때로 이긴다. 아무리 며느리의 대학원진학을 위해 용돈을 깎으려 한다는데 기꺼울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투덜거리면서 잘만 따라준다. 어쩌면 한만희에게 민지영이란 친구 대신이 아닐까?

 

방정배(김상호 분)의 가족을 보고 있으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계속 생각하게 된다. 돈도 없다. 이렇다 할 내세울 직업도 없다. 하다못해 아들 방장군(곽동연 분)은 공부마저 못한다. 아니 단순히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얗다 못해 투명할 정도로 머리가 해맑다. 하지만 행복하다. 어두육미이든 거두육미이든 결국 중요한 것은 생선대가리가 맛있다는 것 아닌가? 소주와 음료수를 들고 찾아가서 한 잔 하는 모습이 어찌나 부러운지. 가르치기도 잘 가르쳤고 크기도 잘 컸다. 방정배의 말처럼 형제 가운데 가장 행복한 것이 방정배가 아닐까.

 

이숙과 천재용(이희준 분)의 라인이 갈수록 점입가경을 이룬다. 참 운도 없다. 어째 방이숙을 위해 배려하는 말을 하고 하면 그것은 천재용의 선의와는 다르게 상관없이 이숙에게 전해지는가? 항상 보이는 모습이란 짓궂게 놀리고 가볍게 툭탁거리는 전혀 진지하지 못한 모습들 뿌이다. 오죽하면 무의식중에 천재용에 대해 방이숙에게서 나온 말이 '또라이'였다. 기껏 이숙과 규현(강동호 분)의 사이를 방해하기 위해 기획한 MT건만 규현의 난입으로 말미암아 고기에서까지 뒤지고 말았다. 어찌할 것인가. 이 대책없는 남자는. 더구나 방이숙의 아버지 방장수 앞에서 미움사기 좋은 모습만 보이고 말았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주인공은 항상 라이벌보다 못나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기대를 걸어본다. 방이숙에 쥐어사는 천재용을 보고도 싶다. 절대 방이숙을 쥐며는 살지 못한다.

 

일숙의 홀로서기가 시작된다. 어려서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채 사회생활을 경험하기도 전에 어린나이에 남편이라는 울타리를 만나 결혼부터 했다. 부모를 의식하고, 남편을 의지하고, 그리고 아이만을 생각하며.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혼자서 부딪히며 극복해가는 것이다. 차윤희는 필요하다면 가장 사랑하는 남편이건만 부딪히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이제 일숙도 혼자서 살아가기 위한 힘과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차윤희로부터 그것을 배운다. 가장 먼저 길거리에서 도를 물어오는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부터. 윤빈(김원준 분)의 매니저로서 무시당한 충격이 컸다. 윤빈의 매니저로서도 점차 자각해가고 있다.

 

윤빈의 신곡은 어떤 노래일까? 노래란 이야기다. 노래에 진심이 담겨 있을 때 가장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 '어느 한물간 가수의 이야기', 아마도 뻔한 한물간 스타의 극적인 재기를 그리고 있을 테지만 - 아니 어쩌면 그같은 기대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일지도 모르겠다. 윤빈이 지금 바라는 것은 팬과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신이 되는 것이다. 크게 성공을 거두기보다 소소하게 팬들의 스타로서 자기를 지켜나가는 모습이 어떨까? 스타가 되어서도 일숙의 노력을 기억해 준다면 일숙의 힘겹기만 하던 삶에도 빛이 되어 주리라.

 

마침내 방귀남과 작은어머니 장양실(나영희 분)이 마주한다. 한결같이 그녀는 말하고 있다. 자신이 방귀남을 버린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방귀남을 잃어버린 것은 자기 때문이다. 일치하는 답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에 대한 단서를 방귀남과 송수지(박수진 분)의 대화를 통해 들려준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잘못을 저질렀다. 죄는 없지만 죄가 있다. 오해였을까? 누군가 미워할 대산을 가지게 되다면 드라마도 꽤나 피곤해질 수 있다. 그녀가 갖추고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 가장 힘든 것은 잘못을 비난받는 것보다 그것을 털어놓을 수조차 없다는 것이다.

 

차윤희의 분투기를 응원한다. 일숙의 홀로서기도 응원한다. 천재용의 진심 또한 방이숙에게 닿기를. 방이숙도 자신의 마음이 이루어져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드라마니까 당연히 천재용이 방이숙과 함께 웃을 것을 기대해 본다. 윤빈이 준비하고 있는 신곡과 방정배와 방장군의 가족이 보여주는 훈훈함, 여전히 레크레이션 강사를 짝사랑하는 엄순애(양희경 분)처럼 모두는 행복하다. 행복해진다. 그래서 항상 즐겁다.

 

도발적인 유쾌함과 흔하지만 맛깔라는 로맨스와 점점 깊어가는 스릴러의 미스테리. 하지만 낙천과 긍정이 있어 어느 한 군데 거리낌 없이 즐겁기만 하다. 재미있다. 항상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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