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각시탈 - 이강토를 쫓는 기무라 슌지, 반갑다 각시탈!"

까칠부 2012. 7. 19. 07:57

모범적이다. 기무라 슌지(박기웅 분)가 이강토(주원 분)를 의심하기 시작한 순간 채홍주(한채아 분)가 키쇼카이의 요인으로 그의 앞에 나타난다. 이강토는 종로시장에서 목단(진세연 분)을 쫓다가 놓치고, 다시 기무라 슌지가 각시탈을 잡기 위해 파놓은 함정에 이강토가 걸어들어가려는 그날 채홍주는 호텔에서 목단을 제압해 사로잡는다. 서로 충돌하는 기무라 슌지와 채홍주, 그리고 어색하게 만나는 목단과 이강토, 그 이강토의 뒤를 쫓는 기무라 슌지. 만남은 단계를 거쳐 점입가경을 이루며 마지막 순간에 정점을 찍는다.

 

"역시 네놈이었어. 반갑다, 각시탈!"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한 편의 완결된 드라마가 15회 한 회에 모두 압축되어 들어가 있었다. 우연과 우연의 반복, 그 가운데 만남과 엇갈림이 이어지며 마침내 조우한다. 매 순간 기무라 슌지의 의심과 목단을 살리고자 하는 이강토의 의도가 충돌하며 긴장은 고조된다. 목단의 무모함이 차라리 민폐로 여겨질 정도다. 어째서 하필 그 순간 채홍주는 나타나 목단을 사로잡는가? 그러나 그 순간 목단과 채홍주는 한 번 쯤 부딪혀야 했다. 한 사람의 남자주인공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여성캐릭터들의 숙명이라 할 수 있다. 목단을 향한 채홍주의 감정에는 이강토를 가운데 둔 질투심도 분명 포함되어 있다.

 

재미있었다. 갈수록 자신의 악의를 갈고닦는 기무라 슌지에게서. 처음에는 그저 형의 원수를 갚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형을 잃은 아버지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자신이 일본인임을 깨닫게 되었다. 조선인에게 일본인인 자신이 어떻게 보여지는가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런 자신을 감당못하며 그는 끊임없이 주문을 되뇌이게 된다.

 

"난 틀리지 않았어!"

 

일본인이니까! 조선인이니까! 형이 죽었으니까! 형을 죽였으니까! 형을 죽인 원수니까! 아버지의 아들이니까! 그는 조금씩 미쳐가고 있을 것이다. 그토록 형과 아버지와 대립하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애정을 놓아버렸다. 애써 모은 수집품을 부수고, 사랑스럽던 어린 학생들을 뒤로 하고, 이제는 사랑하던 여인이며 유일하게 우정을 나누던 친구마저 떠나려 한다. 신뢰와 애정으로 그를 대하던 이들이 이제는 두려움과 경멸의 시선으로 그를 본다. 무엇보다 목단이 그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때 목단과 함께하고 있었던 각시탈이 어쩌면 이강토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달라진 것 같다. 과언 <각시탈> 첫회와 지금의 15회를 나란히 보고 있자면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인가 싶다. 이름만 기무라 슌지이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혀 다른 사람 같다. 순수와 광기를 넘나드는 박기웅의 연기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어쩌면 일제강점기라고 하는 극단의 역사 속에서 한국과 일본의 화해라는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려는가 싶었지만, 오히려 기무라 슌지를 통해 일제강점기라고 하는 시대의 본질을 물으려 하고 있었다. 무엇이 일본이고 무엇이 조선인가? 무엇이 일본인이게 하고 조선인이게 하는가?

 

기무라 슌지가 일본인이기를 선택한 계기가 흥미롭다. 형의 죽음이었다. 아버지의 눈물이었다. 민족주의란 상당히 가부장적인 가치와 유사한 모습을 띄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가 나를 낳아주었듯 민족이 나를 있게 한다. 당연히 가장으로써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복종하듯 민족에 대해서도 복종해야 한다. 모든 것을 버려서라도. 심지어 자기 목숨마저 아버지를 위해 내던질 수 있다. 조선과 조선인, 조선인 학생들, 지인들, 그리고 좋아하는 여인과 유일한 친구까지 그 제단에 올려야 한다. 무엇보다 기무라 슌지는 참으로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착실하게 일본인이 되어 가고 있다.

 

하여튼 모든 사람은 두려움을 알기 전에는 용감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비로소 두려움을 알고서야 사람은 용기라는 것을 말할 수 있다. 하기는 그렇기 때문에 용기란 귀한 가치인 것이다. 두려움에 맞서 자신의 의지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토록 열성적으로 독립운동을 돕던 조단장(손병호 분)이건만 단 한 번의 고문만으로 의지를 꺾고 기무라 슌지의 지시에 순종하는 착한 조선인이 되어 버린다. 담사리(전노민 분)과 함께 잠입한 요인들의 인상착의까지 모두 털어놓았다. 그런 그를 목단은 아직까지도 단장이라며 믿고 있다.

 

평소에 그토록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분노를 열정적으로 떠들던 득수(김방원 분) 또한 일본인 경찰에 의해 노인이 폭행당하는 현장을 보고 있으면서도 끝내 나서는 것을 포기한다. 그나마 보이지 않는 뒤에서라면 얼마든지 이강토의 뒤통수를 내리칠 수 있었다. 조선인들만 모여 있는 곳에서라면 자기들끼리 얼마든지 일본과 일본인을 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는 주저하고 만다. 두렵기 때문이다. 일본제국주의의 힘이. 그들이 가진 폭력이, 그를 거스를 경우 돌아올 고통과 불이익이 무섭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이강토를 증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 안의 그같은 비겁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 굴욕감과 비참함을 어디론가 발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차라리 일본인은 두렵다. 그러나 같은 조선인이라면 그는 지배자가 아닌 단지 피지배자로서 배신자일 뿐이었다. 일본과 일본인을 비난하고 있을 때는 그렇게나마 그들에 일방적으로 굴종한 것이 아님을 애써 버둥거리며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들 살았다. 조단장처럼. 혹은 득구처럼. 아니면 계순(서윤아 분)처럼. 굴복하거나, 체념하거나, 아니면 협력하거나. 오로지 그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단 사람들만이 독립운동에 투신할 수 있었다. 그조차 경험해 본 적 없는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 앞에서는 꺾이고 마는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의지를 꺾지 않고 죽임을 당했거나, 해방이 되기까지 살아남아 투쟁을 이어간 이들은 그런 점에서 얼마나 대단한가 말이다. 괜히 위인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다. 영웅이라 일컫는 것이 아니다. 영웅이란 두려움을 이겨낸 이들이다. 두려움을 모르는 이들이 아닌 두려움과 맞서 이겨낸 이들인 것이다.

 

같은 고통을 겪고도 담사리는 의지를 꺾지 않는다. 피투성이가 되어 늘어져 있으면서도 결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이렇게 되었는가를 잊지 않는다. 딸을 사랑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추구해야 할 당위를 앞세운다. 어쩌면 딸 목단이 눈앞에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담사리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으려 할지도 모른다. 이미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고문당하는 고통과 공포를 알면서도 복수와 조선의 독립을 위해 각시탈을 썼던 형 이강산이 있다.

 

그에 비하면 아직까지 이강토는 단지 죽은 형에 구애되고 있을 뿐이다. 그를 움직이는 것은 아직까지는 형과 부모, 그리고 목단에 대한 인간적 유대다. 담사리는 계기가 되어 줄 수 있다. 그는 아직 더 주인공으로서 성장해야 한다. 영웅이란 단지 폭력을 휘두르는 존재가 아니다. 그 폭력에 의지가 담겼을 때 영웅이라 부른다. 지금 각시탈의 쇠퉁소에는 어떤 의지가 담겨 있는가. 누구로부터도 듣지 못했던 그것을 담사리에게 듣는다.

아무튼 모든 것을 안다. 모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강토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기무라 슌지의 의심과 확신이 이강토를 더욱 옭죄어 들어온다. 스릴러적 긴장이 드라마 전반을 가득 짓누른다. 이강토는 자신의 정체를 들킬 것인가? 마침내 기무라 슌지의 함정에 걸려들어 정체가 탄로나고 말 것인가? 그러나 약속장소에 나타난 것은 각시탈이 아니라 이강토였다. 굳이 목단이 그리도 끔찍히 싫어하는 이강토의 모습으로 그녀를 구하기 위해 나타났다. 반전을 예고한다. 아직 정체가 밝혀지기엔 드라마가 많이 남아 있다. 채홍주도 남아 있다.

 

실제 그런 시도들이 있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도 전후처리 과정에서 일본이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이 바로 한반도였다. 다른 곳은 다 포기해도 한반도만은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식민지에 대한 정책도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의 경우들과는 상당히 달랐다. 철저히 동화시키려 했다. 일본의 영토로 삼으려 했고, 일본의 신민으로 만들려 했다.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이며, 대륙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벽으로써 조선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하필 그것을 조선인을 수양딸로 삼은 키쇼카이가 주도한다. 의미심장하다.

 

마침내 기무라 슌지와 이강토가 목단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만난다. 기무라 슌지는 이강토가 각시탈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이강토는 각시탈이 아닌 이강토 자신의 모습으로 목단을 만나러 와 있다. 각시탈과 목단을 사이에 두고 기무라 슌지와 채홍주 역시 엇갈리려 한다. 무력하게 기무라 슌지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조단장의 비통함과 눈앞에서 노인이 폭행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참아야 하는 득구의 무력함이 보인다. 담사리를 구출하려 한다. 목단을 구해내려 한다. 꾹꾹 눌러담은 이야기가 다음을 기약한다. 보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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