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연예인과 공인론 - 공인이란 공적인 대상으로서의 공인이다.

까칠부 2012. 7. 28. 09:51

인기연예인을 가리키는 말로 '스타'가 있다. 말 그대로 하늘의 별이다. 아이돌은 우상을 뜻한다. 80년대까지 특히 젊은 세대에서 인기있는 연예인을 두고 젊은이들의 우상이라 부르곤 했었다. 요즘 말로 치면 그냥 아이돌이다. 조용필이 바로 그때 10대 소녀들의 우상이었다. 영원한 오빠였다.

 

연예인은 과연 공인인가? 바로 저 말들에 그 해답이 들어있을 것이다. 하늘의 별을 이어 별자리를 만든다. 큰 곰이라 부르고 작은 곰이라 부른다. 그런데 누군가 묻는다.

 

"어째서 큰곰자리인데 곰과 전혀 닮지 않았는가?"

 

그러면 별들은 무어라 대답하겠는가?

 

공인이란 한 마디로 공적인 인간을 뜻하는 단어일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사회적으로 공적인 책임과 역할을 맡아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을 뜻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예인이 갖는 사회적인 공적 책임과 역할이란 과연 무엇인가?

 

사실 한 가지밖에 없다. 보여지는 것. 바로 그 자리에 있는 것. 별은 단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이 그 별을 보고 멋대로 형태를 부여하고 이름을 붙여 부른다. 아이유가 실제 '국민 여러분의 여동생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해서 그녀가 국민여동생이라 불리게 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설사 '국민여동생'이 되기를 의도했어도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대중 자신이다. 대중이 그녀로부터 여동생의 이미지를 찾는다.

 

단지 사진에 불과하다. 단지 모델인 여성이 너무나 아름답고 몸매가 누구보다 매혹적이다. 모델이 자신에게 어떤 유혹을 하거나 한 적은 없다. 그럴 리도 없다. 그러나 사진을 통해 만나게 된 모델을 통해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만의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행위를 상상하기도 한다. 모델이 어떻게 해서가 아니라 그 모델에게서 자기 안의 욕망을 일깨우게 된 때문이다. 정확히는 자기 안의 욕망을 투사할 대상을 찾은 것이다. 그것을 의도해서도 사진을 찍는다. 성적 욕망이라거나, 아니면 추억이라거나, 다양한 수많은 감정과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서. 그것이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이익을 불어온다.

 

대중이 스타를 우러르는 이유일 것이다. 아이돌에 열광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 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본다. 욕망이 충족되는 동안에는 그들은 스타다. 아이돌이다. 그들을 떠받들며 그들의 권위에 기꺼이 복종한다. 그러나 과연 이전과 같은 욕망과 욕구를 그들로부터 볼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느새 나이를 먹어 버린 아역스타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성적인 매력을 잃어버린 섹시스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연이은 작품의 실패로 잊혀지기도 하고, 전혀 다른 이미지의 캐릭터에 도전했다가 그대로 좌절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고도 그들은 여전히 스타인가? 아이돌인가? 그들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이전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가?

 

스타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권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타 자신이 의도한 권위가 아니다. 인기를 목적했으되 인기조차 스타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대중의 욕망과 욕구가 스타와 만난다. 스타와 만나 스타에게 동의했을 때 그에게 비로소 인기라는 것이 생기고 인기로부터 권위와 권력도 생겨난다. 스타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이라는 것도 그같은 대중의 동의를 전제하여 성립한다. 허상인 셈이다. 대중의 욕망과 욕구가 만들어낸. 그래서 대상이다. 스타 자신이 의도한 유일한 한 가지란 바로 자신이 그같은 대상이 될 수 있고자 하는 것이다. 대중의 성적 욕망에 기대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것처럼. 그를 위해 자신을 가꾸고 꾸미고 심지어 첨단과학의 힘까지 빌린다.

 

대중이 스타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인 것이다. 스타가 갖는 영향력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다. 스타에게 대중이 관심을 갖기에 스타에게 영향력이 생긴다. 그리고 대중이 스타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란 바로 말한 자신의 욕망과 욕구 때문이다. 그것을 스타에게서 찾는다. 전문용어로 투사라 말한다. 스타란 대상이다. 대중의 욕망이 집약되는 대상. 그래서 관심을 갖고 일거수일투족은 놓치지 않고 세밀히 관찰한다. 스타의 영향력에 대중이 감화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대중이 이미 가지고 있던 욕망과 욕구가 스타에 투영되어 보이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스타가 갖는 사회적 역할이다. 스타가 사회적 존재인 이유인 것이다. 스타가 공인이라 일컬어지는 이유다.

 

다시 말해 스타가 공인인 이유는 그들이 맡고 있는 공적인 역할에 있다. 그들이 갖는 공적인 책임이다. 대중이 욕망을 투사한다. 용구를 투영한다. 정확히 대중이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투영하고 투사하기 위한 대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적인 대상이다. 그래서 대중은 스타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스타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대중에 보이려 한다. 그같은 전제 위에서 스타의 사생활마저 대중의 관음적 관심 아래 소비되어 버린다. 물론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스타는 그것을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다. 그것을 판단할 권리도 대중에 있다. 스타는 바로 그같은 대중의 판단과 결정 아래 자신의 역할과 존재를 가름하게 된다.

 

공인으로서 책임을 느낀다. 공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래서 일견 옳다. 대중이 바라는 이미지가 있다. 대중이 그들에게 요구하는 역할들이 있다. 그에 충족하지 못햇다. 그들이 어떤 사회적인 공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주체적인 존재여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자신을 투영하고자 하는 대중의 욕망에 충실히 봉사하지 못했다. 그들이 느끼는 공인으로서의 책임이란 대중과의 개인적 유대에 대한 것이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에 따른 유대의 결과인 탓에 그것을 거부할 것인가의 여부도 개인에게 전적으로 귀속된다. 더 이상 대중의 관심이 싫다면 거부할 권리가 있다. 이후 대중의 판단이야 어찌되든 스스로 관심을 거부하겠다 하는데 그것을 강요할 권리란 누구에게도 없다. 그들 또한 개인이다.

 

공인이니까. 공적인 존재니까. 그러나 정확히 공적인 대상이다. 자신의 욕망을 투사한다. 욕구를 투영한다. 하기는 그렇기 때문에 공인이랍시고 더욱 강한 도덕적 의무를 그들에게 맡기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정의롭고 싶어한다. 정의의 용사이기를 바란다. 영웅이 되어 악을 응징하고 싶어한다. 경찰이 되고 판사가 되고 싶어 한다. 연예인이란 그 순간에도 대중에게 대상이 된다. 유독 연예인들에게 대중이 가혹한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사회에서 가장 도덕적으로 엄격한 책임을 강요받고 있는 집단이 바로 연예인이다. 그들을 단죄하는 놀이를 즐기기 위해. 한국사회는 - 특히 대중은 누구보다 정의롭다.

 

그래서 스타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허락된다. 사생활을 파헤치고 그의 은밀한 사적인 부분을 엿본다. 그리고 물론 개인으로서 스타 자신도 선택한다. 그것을 허락할 것인가? 말 것인가?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맡길 일이다. 미묘한 경계인 것이다. 공적 대상이라는 것은. 스스로 대상으로서 소비되어지기에 나타나는 대중적 역할과 영향력이라는 것도 역시. 여전히 스타는 개인이지만 스타 자신의 선택에 의해 공적인 역할이 나타난다. 대중과 스타의 합의에 의한 가상의 공적 영역이다. 스타가 공인이 되는 순간이다. 그 순간 스타는 전적으로 공인의 모습을 띄게 된다. 합의와 동의의 결과다.

 

즉 스타란 공인과 사인의 모습을 동시에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엄격한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공식화된 것이 아니다. 사적인 것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그 점이 연예인이 공인인가의 논란에서 가장 문제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최근 트위터가 문제가 되고 있다. 사적인 공간에서의 사적인 대화들이 공적인 사회적 문제가 된다. 역시 같은 이유다. 대상에 투사한 대중의 욕망이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여겨지게 만드는 것이다.

 

과연 연예인이란 공인인가? 그래서 별인 것이다. 그래서 우상이다. 우상이란 곧 대상이다. 인간의 욕망과 욕구가 만들어낸 신이다. 인간의 감정과 바람이 우상에 투영되어 그가 신이 되도록 한다. 미묘한 부분이다. 공인이거나 아니거나. 흥미롭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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