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쉽게 말하곤 한다. 내 가족처럼. 마치 내 가족과도 같이. 그러나 그것이 진짜 내 가족의 일이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까?
그 경계를 보여준다. 환자를 마치 자기 가족처럼 여기는 이민우(이선균 분)와 갑자기 위독해져서 응급실로 급하게 실려온 자신의 친할아버지를 마주해야 했던 강재인(황정음 분)을 통해.
마치 자신의 가족과 같으니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까지 신경을 쓰게 된다. 병원의 입장이 아닌 환자의 입장에서 환자가 부담해야 할 치료비까지 걱정하게 된다. 어떻게 해서든 환자와 환자의 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 한다. 심지어 그를 위해 인턴이라고 하는 자신의 입장마저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고 잊어버리곤 한다.
그러나 그것이 마치 가족과 같은 것을 넘어 실제 가족의 일이 되었을 때 강재인은 의사로서의 자신의 본분마저 잊은 채 그저 허둥거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할아버지인데. 아버지조차 돌아가고 없는 그녀에게 할머니와 더불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피붙이다. 그런 할아버지가 위독하다. 의사이기 이전에 그녀 또한 한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의사로서의 전문성이나 사명감 대신 손녀로서 할아버지에 대한 걱정이 먼저 앞서고 만다.
직업의 전문성에 대한 것이다. 직업윤리의 냉엄함에 대한 것이다. 양심과 이성에 대한 이야기다. 내 일처럼. 하지만 정작 내 일이 된다면? 그렇다고 철저히 타인으로서 상대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을 강요하려 한다면 그것을 두고도 냉정함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저 편하고 싶은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한 발 물러난다. 책임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환자가 진심으로 걱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로 인해 번거로워질 일이 오히려 꺼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환자의 사정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100만원이나 하는 MRI를 찍어야 한다고 의사로서 매우 냉정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자신의 일도 아니고, 환자의 일도 아니고 누구의 일도 아니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텍스트와 메뉴얼, 그리고 관행이다. 몰인격은 이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자기로부터 자신을 유리시킨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다. 전혀 타인이다. 그러나 그 타인과 접점을 찾는다. 이송도중 사망한 환자의 나이가 30살이라고 했을 때 이민우는 먼저 환자와 같은 나이인 자신의 동생을 떠올리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죽은 환자가 이민우의 동생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동생의 모습을 투영함으로써 전혀 타인인 환자와 자신과의 사이에 어떤 서로가 용납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낸다. 타인이 타인이 아니게 된다.
다만 이민우의 경우도 그것이 너무 지나쳐 자칫 의사로서의 자신의 입장과 역할마저 잊어버리는 일이 작다는 것은 문제일 것이다. 그것을 최인혁(이성민 분)도 한 편으로 우려하고 있다. 지나치게 환자에게 자신을 이입하려 한다. 그나마 강재인이 환자와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조차 이번 할아버지의 일로 인해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의사는 환자의 가족이 아니다. 친구도 지인도 아니다. 단지 의사일 뿐이다. 하지만 단지 의사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실제 병원을 찾는 환자나 그 가족에게 의사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서로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뜻과 환자가 의사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과는 전혀 의미가 다르다.
최대한 환자를 배려하면서도 단호할 때는 단호해야 한다. 최인혁이 돋보이는 이유다. 아니 드라마속 거의 모든 의사들이 그렇다. 기회주의자로 보이던 기조실장 신경외과장 김호영(김형일 분)이 모두가 꺼려하는 이사장의 집도에 단호히 나설 수 있었던 이유였다. 주위에서야 수술에 성공했을 경우 그에게 돌아갈 댓가를 따지고 들지만 환자를 앞에 둔 그는 단지 의사일 뿐이었다. 그랬기에 부담스럽게 이를 데 없는 수술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개인의 사심이 수술에 개입되었다면 더욱 어려운 상황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강재인이 스스로 흔들리며 자신의 친할아버지마저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어느 일이나 마찬가지다. 마치 내 일처럼. 그러나 내 일처럼을 넘어 내 일이 되어 버리면 그때부터는 사적인 감정이나 입장이 일에 개입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철저히 남의 일로서 일방적으로 거리를 두려 하면 그 또한 한 발 물러서려는 무책임과 비겁함만을 보일 뿐이다. 그 사이에 경계를 두어야 한다. 자기에게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버리지 않아도 되는 미묘한 경계일 것이다. 말 그대로 중용이다. 넘치지도 모자르지도 않게. 항상 냉정하면서도 배려와 열정을 잊지 않는다. 그렇게 성장해가고 있다.
벌써 서른을 넘겼는데 성장기라 말하기에는 민망하지만 그래서 드라마 <골든타임>은 인턴 이민우의 성장기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성인이지만 의사로서는 아직 아이다. 그래서 또한 최인혁이 돋보인다. 그는 완성된 어른이다. 이민우가 최인혁이 있는 그곳까지 자신의 발로 한 발씩 걸어가는 이야기가 바로 드라마 <골든타임>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의 주인공은 최인혁이 아닌 이민우 자신이다. 이민우가 최인혁에 다가가는 과정이 바로 이 드라마 <골든타임>인 것이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 사람의 이상으로 차근히 성장해간다. 저 앞에 그 모델이 되어주고 있는 최인혁이 거대한 어른의 모습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다. 하나씩 배운다. 하나씩 익힌다. 하나씩 경험한다. 그의 주위에는 강재인이라는 실력과 인격을 겸비한 훌륭한 파트너가 있다. 이번에는 그 파트너와의 입장이 서로 교차하고 있다. 주제를 드러내고 있었다.
마침내 강재인의 정체가 드러난다. 이사장 강대제(장용 분)의 손녀라는 사실이 입원해 있는 강재데로 인해 드러나고 만다. 어찌할까? 공적으로는 인턴이지만 사적으로는 병원 보스의 손녀다. 딸꾹질이 이해되는 이유다. 보다 먼저 그 사실을 깨달은 이민우와 강재인 사이에 미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제꺼지 없던 러브라인을 몰아치려 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단지 바람만 잡거나. 러브라인을 집어넣기에는 이제와서 드라마가 너무 재미없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은 직업으로 삼지 말라고들 말한다. 그 경계를 지키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가족처럼과 실제 가족과의 차이와 같을 것이다. 다만 이제 서로의 정체를 알게된 강재인과 다른 병원관계자들과의 관계는 어찌될 것인가? 이민우와의 관계는 또?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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