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전우치 - 카운터파트 마강림의 부재를 아쉬워하다.

까칠부 2012. 12. 7. 08:34

라이벌이란 대등하다는 뜻이다. 악역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영웅인 주인공은 악인을 응징하지만 라이벌인 악연은 그런 주인공에 맞서며 대칭점을 이룬다. 주인공과 같은 비중으로 때로 스스로 사건을 만들고, 주인공이 만드는 사건에 뛰어들어 드라마를 이끌어간다. 주인공이 외롭지 않도록, 그리고 드라마가 비곤해지지 않도록.

 

어차피 마숙(김갑수 분)은 배후에서 일을 꾸미는 역할이지 전면에 나서서 직접 행동에 나서는 타입이 아니다. 필연적으로 전우치(차태현 분)과 부딪히게 되는 것은 친구이며 원수이기도 한 마숙의 행동대장격인 마강림(이희준 분)이었을 터다. 드라마가 만들어져야 한다. 전우치와 만나며 긴장이 고조되고, 전우치와의 관계에서 감정이 극대화되며, 단지 전우치와 마강림이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대감이 생겨나지 않으면 안된다. 저들이 마침내 다시 만난다. 다시 부딪힌다. 그 자체가 드라마가 되어간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한 마디로 존재감이 없다. 전우치가 마강림에게 당연히 가져야 할 감정조차 흐려질 정도로 마강림은 전우치에게 아무런 존재감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전우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사복시 노비 출신의 경방자 봉구(성동일 분)이다. 거의 드라마의 재미는 전우치와 봉구 사이의 만담에서 나온다. 전우치와 마강림 사이에 있어야 할 극적 긴장은 마숙이 대신한다. 마숙이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우치의 감정조차 마강림을 통하지 않고 마숙에게 직접 가 닿는다. 심지어 홍무연(유이 분)이 대신해서 전우치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 구해주는 대상 역시 마강림이 아닌 마숙이다.

 

도술에서도 전우치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런 주제에 전우치와 일대일로 겨루어 이기고야 말겠다는 오기조차 보이지 않는다. 홍무연을 중독시킨 시점에서 이미 홍무연을 사이에 둔 경쟁에서도 그는 한참 열세에 있다. 홍무연을 지키기 위해 마숙에게 도전하려는 의지조차 없는 그는 사랑의 라이벌조차 되지 못한다. 당연히 음모의 주재자도 마강림이 아닌 마숙이다. 마숙의 반대편에 마숙이 노리고 있는 왕(안용준 분)과 상선(이재용 분), 좌의정 오용(김병세 분) 이외에도 전우치가 주인공으로서 확실한 중심을 잡고 있는 반면 마강림은 단지 마숙의 주위에서 희미하게 깜빡일 뿐이다. 새삼 마강림이 나타나 전우치와 독대한다고 해서 어떤 긴장을 갖거나 기대를 품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마강림은 전우치의 상대가 아니다.

 

물론 대본의 탓도 있다. 대본상 마강림의 비중이 딱 그 정도다. 하지만 그보다는 정작 마강림을 연기하는 이희준 자신의 책임도 적지 않다. 디테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차태현이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니 그래서 굳이 차태현을 전우치 역으로 캐스팅한 것일 터다. 캐릭터가 중요하다. 캐릭터 드라마다. 내러티브 자체는 상당히 흔한 것이다. 어디서 한 번은 본 듯한 뻔한 설정과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을 채우는 것이 바로 캐릭터다. 전우치와 그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마강림, 그리고 마숙. 어째서 조연에 불과한 봉구가 전우치와 더불어 드라마의 중심에 위치할 수 있는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뻔한 가운데 봉구의 캐릭터가 갖는 특별함이 전우치의 캐릭터와 시너지를 일으킨다. 마강림도 원래는 그런 의도로 설정한 캐릭터일 것이다. 하지만 이희준은 그것을 충분히 소화해내지 못했다.

 

보다 과장된 연기가 필요하다. 민망해 할 필요 없다. 수줍어 할 필요도 없다. 뻔뻔할 정도로 과감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 진지할 때도 과장되게, 심각할 때도 차라리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심각한 모습으로, 마숙을 따르면서도 홍무연을 걱정하는 감정을 보다 극단적으로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끔 선명하게 드러낸다. 때로는 멋있어 보일 필요도 없다. 자기에게 그만한 충분한 매력이 없다고 여긴다면 오히려 그것으로 역설적 재미를 노려볼 수도 있다. 어찌되었거나 전우치가 있으면 반대편에는 마강림이 있어야 한다. 전우치를 마숙과 잇고 홍무연과 잇는다. 운명적인 대결을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너무 소심하고 소극적이다. 마강림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는 한참을 지켜보고 나서야 그의 대사를 듣고 알아차릴 수 있다. 아마도 이와 같은 캐릭터 연기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드라마 <전우치>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천재용이라는 캐릭터로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차태현과 함께 화제의 중심에 서기를 바라고 캐스팅한 것일 텐데 결과적으로 미스캐스팅이 되고 말았다.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다. 누가 대신하더라도, 아니 아예 마강림의 캐릭터를 지워버리더라도 지금 상태대로라면 전혀 드라마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전우치와 마강림 사이의 악연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홍길동의 보물을 둘러싸고 왕과 상선, 그리고 마숙이 전우치와 직접적으로 맞물린다. 마강림은 단지 마숙의 하수인일 뿐.

 

아쉽다. 가장 아쉬운 조각 하나일 것이다. 이희준만 제 역할을 해주었다면. 마강림만 과거의 기억에서처럼 전우치와 대등한 존재로서 반대편에서 중심을 잡아주었더라면. 차태현의 코믹연기와 더불어 마강림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 드라마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봉구는 단지 양념에 불과하다. 모든 것이 흐트러져 버렸다. 홍무연조차 덕분에 그 역할이 제한되어 버렸다. 더 애절하게 더 안타깝게 그러면서도 잔혹한 운명으로 모두를 희롱했어야 했건만.

 

아직 늦지는 않았다. 아직 마숙은 전면에 나와 있지 않고, 왕과 상선도 한 걸음 뒤에 물러서 있다. 전우치는 더 물러서면 안된다. 전우치가 더 앞으로 나서야 한다. 전우치가 주인공인 까닭이다. 그리고 전우치가 주인공인 이유는 그의 반대편에 마강림이 있기 때문이다. 장르적 공식이다. 이희준은 더 멋있어져야 한다. 얄밉기도 하고, 혐오스럽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마강림이 등장하는 장면을 기대하며 기다린다. 마강림과 전우치가 만나는 순간은 설레어하며 기다리게 된다. 마숙은 그로써 더 음험한 암중의 흑막이 된다. 너무 전면에 나서 있다.

 

정작 상선을 믿지 못하여 어린 시절의 인연인 은우(주연 분)에 기대려는 왕과 선선대 왕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늙은 상선, 그리고 충신이라기보다는 충성 자체가 원칙이기에 따르려는 민완수사관 서찬휘(홍종현 분), 마침내 배신이 탄로난 둥개(신승환 분), 무엇보다 마숙마저 경계하는 속내를 알 수 없는 반정공신 오용. 전우치가 위장하고 있는 이치의 누이 이혜령(백진희 분) 어느새 이만큼 가까이 다가와 있다. 차라리 전우치가 아니었어도 좋았을 정도로 드라마는 알차다. 하지만 전우치가 주인공이다. 전우치에게는 주인공에게 걸맞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이다. 드라마는 갈수록 더욱 치열해진다.

 

미스캐스팅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동안 배우 이희준이 출연한 드라마들을 흥미롭게 보았었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다. 어쩌면 이희준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배역인지도 모른다. 마강림이 필요하다. 이희준이 필요하다. 전우치는 차고 넘친다. 전우치와 그의 주위, 그의 배경의 이야기들도 넘쳐난다. 더 재미있기를 바라는 당연한 욕심일 것이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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