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롭다. 고려말을 배경으로 한 많은 이야기에서 반야(이윤지 분)는 거의 대부분 일방적인 피해자로만 그려지고 있었다. 공민왕을 사랑했거나, 혹은 일방적으로 도구로 이용되어졌거나, 왕위에까지 오른 아들 우에 비해 그녀의 최후는 비참하기만 했다. 그런데 드라마 <대풍수>에서는 이같은 일반의 선입견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반야가 가해자가 된다.
바로 이런 것을 비루하다고 하는 것일 게다. 비천하다.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포기하며 살았다. 기생이 되더라도 최고의 손님을 모시는 최고의 기생이 되겠다. 오랜만에 만난 목지상(지성 분)이 반갑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고 만다. 아니 알게 된다. 그런 비참한 자신의 처지를 한순간에 바꿔놓을 기회가 바로 눈앞에 있음을. 겨우 체념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자신의 운명이 도저히 다시 입을 수 없는 악취나는 넝마로 바뀐다. 그동안은 충분히 때가 반들거리는 넝마로도 만족하고 살 수 있었지만 화려한 비단옷을 앞에 두고 다시 넝마를 주워입을 수는 없는 것이다. 비단옷을 손에 넣으려 한다.
절박함이다. 간절함이다. 그래서 그 이외의 아무것도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토록 보고싶어 했던 목지상도, 자신을 구원해 준 신돈(유하준 분)도, 자신을 보살펴 준 봉춘(강경헌 분)도. 심지어 자기 자신도. 목지상을 저버리고, 봉춘을 배신하고, 신돈마저 수련개(오현경 분)에게 팔아넘기고 만다. 몰라서이기도 하고, 알려 하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 자기 자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왕의 아이를 낳아 왕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당면한 목표 한 가지였으니까. 그래서 노국공주(배민희 분)마저 죽이고 만다. 아이를 위해서. 맹목이다.
인간은 어떻게 타락하는가? 인간의 악의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자신을 지킬 힘이 없다. 지켜야 할 자신마저 없다. 그렇게 그녀는 비천하고 가난했으며 또한 무력했다. 그래서 무엇이든 부여잡아야 했고, 그를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해야만 했다. 당장의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도둑질을 배우고, 채 성징이 나타나기도 전에 몸을 팔러 나서야 하는 가난한 아이들처럼. 양심이란 사치다.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것은 그저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다. 가장 가련하고 비참한 피해자에서 그녀가 가해자가 되고 마는 이유일 것이다.
수련개라고 다를까? 아니 공민왕(류태준 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직 어린 나이로 몽골에 인질로 끌려가서 약소국의 왕자라는 이유로 적잖이 수모와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오히려 대원의 조정에 충성하며 고려의 왕자를 업신여기는 권문세족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경험했을 것이다. 자신은 다르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왕이 되어 새로운 고려를 만들겠다. 그것은 공민왕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이기도 하다. 그의 열등감이 그로 하여금 고려를 일신하는 개혁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도록 만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과거 자신이 겪었던 수모와 굴욕을 되돌려주겠다. 공민왕이 끝내 좌절하고 만 이유였다. 드라마에서도 공민왕은 정작 충신이라 할 수 있는 이성계(지진희 분)에게 오히려 분노만을 심어주고 있었다.
그릇의 크기일 것이다. 공민왕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왕에 의해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죽음의 길로 떠밀려지고 있었다. 그것은 배신감이었다. 분노였다. 좌절이었으며 굴욕이었다. 하지만 이성계는 그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배움을 구하려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이성계는 무학(안길강 분)과 만나게 되고 목지상과도 만나게 된다. 고려의 백성을 위해 고려를 죽여야 한다. 고려를 배반하는 반역자가 되어야 한다. 고려와 왕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모두를 위한 대의로 바꾸려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드라마에서의 이야기다. 일개 야인과 어울려 살던 토호의 아들에서 일약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를 여는 개창자가 되기까지 이성계에 대해 나름의 설득력있는 답을 들려준다. 이래서 이성계는 왕이 되었다.
바로 그 그릇을 만드는 과정이다. 이성계는 물론 목지상 또한 그릇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단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목지상을 질투하는 정근(송창의 분)과는 달리 목지상은 세상과 세상의 사람들에게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머니의 사랑도 아버지의 복수도 그로부터 찾지 않으면 안된다. 자미원국이라고 하는 천하의 명당을 찾을 운명을 가진 이로서 그가 갖추어야 할 자격이다. 그래서 세상을 떠돌며 많은 사람을 만난다. 목지상이라는 그릇 안에 세상을 담아간다.
오만하다는 것이다. 고타마 싯달타가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친 이유다. 가난하여도 존귀하다. 비천하여도 존엄하다. 어떤 폭력과 위협도 자신의 존재 자체를 해할 수는 없다. 어떤 고통과 고난에도 자신은 오롯이 여기에 존재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기꺼이 원칙을 지켜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어떤 이는 자신의 분노를 세상을 위한 대의로서 바꾸려 하기도 한다. 고려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를 앞에 두고서도 정작 이인임(조민기 분)에 대한 집착조차 놓지 못하고 있는 수련개가 이와 대비된다. 눈앞의 기회를 잡고자 이인임은 외면했던 수련개를 다시 품으려 한다. 목지상은 과연 어느 정도의 큰 그릇이 될까.
아무튼 이인임이 공민왕의 고명을 받들어 우왕의 후견인이 되는 과정 또한 독창적이면서도 설득력있게 풀어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돈의 개혁이 실패하게 되는 개연성 역시 수련개라는 악역을 등장시키면서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정의내리고 있기도 하다. 픽션의 수월함이지만 그렇다고 역사적 맥락을 해치지 않는 그 감각은 가히 놀라울 정도다. 이인임과 이성계의 충돌은 필연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고려라고 하는 한 시대가 막내리게 되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세부적인 사실은 상당히 다르지만 개요만 놓고 보자면 상당히 정확하다.
참고로 풍수란 사람과 명당을 이어주는 것이라는 무학의 말은 전에도 설명한 동기감응론의 요체와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동기감응이란 같은 기를 갖는 부모와 자식만 서로의 기가 감응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맞는 좋은 기는 사람의 기운을 북돋워주고 운을 틔워준다. 그것이 바로 양택풍수다. 영지옹주(이승연 분)가 하는 바로 그 일이다. 사람에게 맞는 기운을 찾고, 찾지 못한다면 인위적으로 유도하여 만든다. 사람을 알아야 풍수도 한다. 그릇에 어울리지 않는 명당이 어떻게 반야를 변하게 만들어가는가를 이미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좋은 명당도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자신을 해치고 말 뿐이다.
역사와 판타지를 오간다. 사실과 픽션을 넘나든다. 대부분은 판타지다. 픽션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역사와 사실의 경계 안에 있다. 어쩌면 역사에 기록된 이면에는 이같은 이들이 남모르게 벌어지고 있지는 않았을까. 특히 공민왕의 캐릭터가 무척 인상깊다. 노국공주도 마냥 착하기만 한 여자는 아니다. 왕이다. 왕후다. 이미 역사를 알고 있음에도 그래서 그 역사에 이르기까지가 흥미롭고 궁금하기까지 하다.
중요하지 않은 신돈의 집권기는 간략하게 넘어간다. 역사드라마가 아니다. 신돈조차 단지 수련개와 이인임을 위한 수단으로서 존재한다. 수련개라고 하는 악녀와 그런 악녀에게 이끌리는 이인임이라고 하는 협력자와 그에 맞서는 목지상, 영지옹주, 그리고 이성계. 목지상과 정근의 반목도 반야와의 악연도 중요하다. 이것은 드라마다.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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