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무리수다. 이성계(지진희 분) 하나 잡자고 고려 전체를 위기로 내몰려 한다. 이성계가 고려의 정예를 이끌고 국경을 넘어 명나라와 전투를 벌이게 되면 그 책임은 비단 이성계 한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왕명을 받들어 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국경을 넘었는데 명나라가 단지 이성계를 패배시키는 정도로 만족하려 할까?
더구나 드라마에서도 묘사되고 있듯 최영(손병호 분)의 요동정벌은 북원과도 연계된 명백한 명에 대한 적대적 군사행동이었다. 명은 원의 학정을 견디다 못해 일어난 농민봉기군에 의해 세워진 나라였다. 백련교를 중심으로 일어난 홍건군 가운데 주원장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는 점차 전공을 쌓고 세력을 키워 마침내 다른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중원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런 만큼 당연히 당시 명왕조의 북원에 대한 감정은 증오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명에 의해 북쪽으로 쫓겨난 북원 또한 그런 명왕조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주원장이 요동으로 군사를 보낸 것도 당시 요동의 군벌로써 북원과 연계되어 있던 나하추를 복속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고려가 바로 그 북원과 손을 잡고 명을 적대하려 한다.
사실 명이 철령이북에 철령위를 설치하고자 시도한 것 역시 그같은 명의 고려에 대한 깊은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대대로 고려의 왕은 원왕실의 사위였다. 원의 공주가 고려로 시집왔고, 고려의 지배층 역시 원의 지배 아래에서 원의 지배층과 밀접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공민왕이 죽고 권문세족인 이인임이 국정을 장악하게 되자 가장 먼저 원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차라리 원은 원한은 있을지언정 그동안의 관계를 통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고 이해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생왕조에 불과한 명은 과연 고려에 있어 어떤 존재이고 어떤 대상일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다. 명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요동에서 나하추가 여전히 북원과 연계하고 있는데, 그 나하추와 북원과 고려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모든 것이 불안하기만 한 건국초기의 명왕조에 있어 나하추와 마찬가지로 고려 또한 만일을 위해서라도 정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명은 굳이 철령이북에 철령위를 설치한다며 고려를 자극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고려를 시험하려 한 것이었다. 어차피 명은 요동을 지배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성조 영락제 이후 요동과 바로 맞닿은 북경으로 도읍을 옮기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명왕조는 요동에 대한 지배를 요동에 거주하고 있던 만주족을 통한 간접지배로 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물며 요동을 지나 만주를 지나 다시 압록강을 건너야 하는 고려에 대해 직접적인 지배를 꾀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다. 설사 고려가 양보해서 철령위를 설치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철령위를 돌려주고 다시 산해관 너머로 돌아가야 했던 것이 당시 명의 사정이었다. 단지 이를 통해 고려와의 관계를 장차 어떻게 정립해나갈 것인가 찔러보려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같은 사정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미 지난날 원에게 당한 것이 있었기에 최영은 견디지 못하고 북원과 연계하여 명을 칠 계획을 세웠던 것이었다.
선후가 바뀌었다. 이성계를 요동으로 보내기 위해 북원과 손을 잡은 것이 아니었다. 명이 철령이북에 철령위를 설치하겠다 압력을 가해오자 도리어 북원과 손을 잡고 명을 공격할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 바로 요동정벌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성계는 고려의 충실한 무장이고 충성스런 신하였다. 독단과 아집에 빠져 있던 최영에 맞서 고려와 고려의 백성들을 구하고자 요동정벌을 저지하려 했던 고려의 충신이었다. 그나마 적극적으로 나서서 반대하고 있었음에도 이성계를 죽이지 못한 것은 당시 이미 이성계가 최영조차 함부로 어찌할 수 없는 강력한 군벌로 성장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최영 자신마저 요동정벌의 가능성을 믿지 못하고 무리수를 남발하고 있었다. 최영의 고집이 이성계를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았던 것이었다. 이후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다 보니 결국 이런 함정에 빠지고 만다. 요동정벌을 계획하기까지 복잡한 국내외적인 정세를 모두 생략하고 이성계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몰아주려 하다 보니 요동정벌이 단지 이성계 한 사람을 제거하기 위한 무모한 계획으로 바뀌고 마는 것이다. 이성계가 만일 모두가 의도한 대로 명과의 전쟁에서 패했을 때 고려은 어떤 운명에 놓이고 마는가? 고려의 국왕인 우왕(이민호 분)은 어떤 처지에 놓일 것이고, 다시 권좌를 되찾고자 하는 이인임(조민기 분)과 이정근(송창의 분)의 야망은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 수련개도 나이를 먹은 탓일까? 뻔한 결과조차 제대로 예상하지 못한다. 욕심이 눈을 가렸다. 이성계만 죽고 나면 우왕의 왕위도, 그리고 이인임의 권력도 다시 원래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물론 어느 누구도 이성계가 명을 물리치고 요동을 정벌하게 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요동정벌에 대한 아무런 기대 없이 단지 이성계를 제거하기 위해 무모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우왕이 이정근을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아무리 그래도 이인임은 우왕을 앞에 두고 공민왕의 죽음을 이야기하며 아예 드러내놓고 위협하고 있었다. 심지어 우왕의 신체에 직접 위해를 가하기도 했었다. 하마트면 우왕 자신이 이인임에 의해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이성계도 우왕을 구해내려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인임의 - 그것도 적극적으로 이인임의 의도와 행동을 도왔던 아들 이정근을 단지 어머니 반야(이윤지 분)의 말 몇 마디로 다시 측근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자신을 구해준 이성계는 의심하고, 자기를 죽이려 했던 이정근은 도리어 믿는다. 하기는 바보다. 그러니 고려가 위험해지는 것도 모르고 단지 이성계를 제거하고자 하는 한 가지만으로 요동정벌을 계획한 것이다.
결국 최영의 결정적인 실책마저 단지 주위의 반야와 이정근으로 인해 우왕의 잘못으로 돌려지며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어리석은 임금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고려와 고려 백성을 위해서라도 마땅히 폐위시켜야 하는, 왕위에서 내쫓기더라도 전혀 동정의 여지가 없는 왕 아닌 왕이다. 그런 왕이 왕위에 있기에 고려왕조 역시 이쯤에서 끝을 낼 때가 되었다. 이성계에게 내려진 천명을 뒷받침하려니 무리수가 연이은다. 어느 순간까지는 좋았지만 무리수가 중첩되며 그 모순을 드러내고 만다. 파탄지경이다.
이성계에게 아들 이방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장으로서 용맹과 지략이 뛰어났던 것은 둘째 방과였다. 이성계를 따라 여러 전장을 누비며 전공도 적지 않았다. 이방원은 단지 여러 아들 가운데 유일하게 문과에 급제를 함으로써 변경의 일개 무부로서 학식이 깊지 못했던 이성계의 컴플렉스를 해결해준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이방원은 일찍부터 개경에서 여러 사대부 등 핵심인사들과 교류를 할 수 있었고 그것이 이후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거치며 그가 왕위를 차지하는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차라리 개경에서의 정치적인 문제를 맡길 것이라면 이방원이었을 테지만, 전장에 나가서 직접 싸우려 할 것이면 이방과를 데려간다. 너무 결과에 끼워맞추려 한다.
물론 <대풍수>의 의도된 왜곡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이보다는 다른 것이었다. 바로 신진사대부의 부재다. 이성계를 왕으로 세운 것은 바로 고려의 신흥지식인계층인 신진사대부였을 텐게, 그 모든 역할과 공적이 목지상(지성 분) 한 사람에게로 돌아가고 만다.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신진사대부들의 열망은 단지 이성계 한 사람만을 위해 충성을 다하려는 목지상 개인의 의도로 수렴하고 만다. 드라마로서는 훌륭하다. 드라마에는 영웅이 필요하다. 주인공은 둘일 필요가 없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이제 와서 이성계가 주인공인지, 아니면 목지상이 주인공인지. 목지상이 조금 더 전면에 나설 필요가 있다.
목지상이 해인(김소연 분)에게 고백을 한다. 반야가 이정근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런 가운데서도 사람의 정은 멈출 줄 모르고 흐른다. 마지막 순간에 이인임 또한 영지옹주(이승연 분)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고, 영지옹주는 그런 이인임을 가슴깊이 동정하며 이해해준다. 남자로서 받아들였는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 지난날 자신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존재에 대한 한 가닥 연민이었을 것이다. 다만 반야와 이정근의 관계가 더 비극적이었으면. 너무 밋밋하다. 목지상과 해인의 사이에도 간절함은 부족하다. 그럼에도 이인임의 마지막 고백에서 느꼈던 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 드라마가 크다.
역사적인 순간이다. 마침내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군을 돌리기로 결심한다. 원래는 조민수가 이성계보다 상급자였다. 실력은 이성계가 더 뛰어났지만 조민수는 출신과 인맥이 좋았다. 위화도에서 회군할 때 둘은 동지였다. 그러나 이성계가 승리하며 조민수는 조역으로 밀려나고 만다. 이번에는 아예 최영에 의한 자객으로까지 추락한다. 이성계의, 이성계를 위한, 이성계에 의한. 주인공 목지상마저 때로 가려진다. 조선건국이 주인지, 아니면 목지상이 자미원국을 찾는 이야기가 주인지. 너무 멀리 왔다. 그래도 그것이 지금 가장 큰 재미가 된다.
최영과 이성계가 부딪힌다. 최영은 이성계를 아들이라 불렀다. 이성계는 최영을 아버지라 불렀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 비극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정에 이끌리고 마는 이성계의 비극이, 마지막 순간 고려와 왕실을 지켜야 하는 신하로써 선택해야 하는 최영의 냉정한 한 마디와 대비된다. 그렇게 역사는 비극으로 흐른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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