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대풍수 - 풍수가 사라진 대풍수, 후반의 함정에 빠지다!

까칠부 2013. 1. 17. 08:39

<대풍수>라고 하는 제목을 통해 주인공 목지상(지성 분)에게 기대하게 되었던 것은 지금과 같은 단순한 책사의 역할이 아니었을 것이다. 풍수가로서의 탁월한 자질을 타고났으며, 천문과 지리, 그리고 음양과 오행에 대해서도 배우고 있었다. 이성계(지진희 분)의 책사가 되어 조선의 건국을 돕게 되었다 하더라도 <대풍수>라고 하는 제목에 어울리는 목지상만의 역할이 있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최영 장군은 불입니다. 불과 불이 만나면 화려하게 타오르지만 결국 더 이상 태울 것이 없어 스스로를 태우고 꺼져버리고 맙니다. 날이 무더우면 구름이 모이고 비가 내려 그 열기를 식힙니다. 이제 곧 여름이고 장마가 시작됩니다. 용은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구름을 부르고 비를 내립니다. 장군은 바람이시니 비를 만나면 곧 용을 볼 것입니다."

 

혹은 이런 식도 괜찮을 것이다.

 

"최영 장군이 현재 진을 치고 있는 곳은 목의 기운이 승한 곳입니다. 최영 장군이 갖는 불의 기운을 북돋워주는 자리입니다. 반면 장군은 산을 따라 진을 쳤으니 바람이 눌려 제대로 불지 못합니다. 최영 장군을 현재의 진지로부터 움직이도록 유인하여 이곳에서 승부를 보아야만 장군이 최영 장군의 기세를 누를 수 있습니다."

 

실제 전해지는 이야기 가운데도 그런 것들이 적지 않다.

 

"지금 동남풍이 부는 것은 화기가 목기를 얻어 승하는 징조입니다. 그러나 바람에 물기가 묻어있는 것을 보니 목기는 승하되 화기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곧 최영 장군이 우리를 기습하겠지만 결국 그것이 최영 장군의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사실 드라마 초반에는 그런 것들이 적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우왕이 봉춘에게 납치당했을 때 목지상은 풍수학적 지식을 토대로 그들이 간 곳을 알아낸 적이 있었다. 우왕은 나무이지 물가로 갔을 것이다. 봉춘은 불이니 숲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봉춘이 우왕과 함께 숨은 곳은 포근한 어머니의 품과도 같은 완만한 인근의 산속일 것이다. 군사에서도 충분히 통용될 수 있다. 어떤 지형은 누구에게 유리하고, 어떤 지형에서는 누가 더 불리하다. 하늘의 때와 땅의 이치와 사람의 화합이 만나며 조화를 이룬다. 그 중심에 '대풍수' 목지상이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것이 사라져 버렸다. 더 이상 드라마에 풍수가로서의 목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군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책사 목지상이 있을 뿐이다. 굳이 풍수가가 아니어도 된다. 아니 중국문화권의 고전에서 천문과 지리를 안다는 것은 음양을 알고, 오행을 알고, 구궁과 팔괘의 비결을 안다는 것과 뜻을 같이한다. 점을 쳐서 미리 싸움의 승패를 알고, 작은 조짐들을 통해 어떻게 싸움이 전개될 것인가를 안다. 그래서 그것을 막는 비결도 함께 배우고 익힌다. 그런데 목지상에게는 그런 것조차 없다.

 

어쩔 수 없다. 드라마 제작일정이 무척 빡빡하다. 다음회 예고가 나오지 않은지가 꽤 되었다. 여유분이 없다. 초단위로 대본을 써야 하는데 과연 처음과 같이 자료를 모으고 자문을 구해서 풍수에 기반한 개연성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렇게 말처럼 쉬울 것인가? 처음에야 미리 여유를 두고 써놓은 분량들이 있으니 가능하겠지만 실시간으로 그런 것들을 채워나간다는 것은 단지 노재능이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할 것이다. 그래서 쉽게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책사의 책략으로 채워나가게 되는 것이다. 남다른 재능과 감각이 필요하지만 체계적인 지식과 연구까지는 필요하지 않다. 하물며 이번과 같은 이간책에 대해서는.

 

목지상만이 아니다. 명색이 서운관 교수인 이정근(송창의 분)의 입에서도, 역시나 교수로 있는 해인(김소연 분)이나 심지어 그동안 꾸준히 풍수와 관련한 장면들을 소화해 오던 영지옹주(이승연 분)조차 그래서 더 이상 풍수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왕과 고려, 혹은 권력, 그보다는 그들 개인이 소중하게 여기는 어떤 것들에만 집착하고 있다. 수련개(오현경 분)는 처음부터 신기가 없었다 묘사되고 있지만 그조차 정인인 이인임과 아들 이정근에 대한 집착을 공공연하게 영지옹주 앞에서 드러낸다. 사실 드라마를 통해 느끼면 되는 필요없는 장면이었지만, 그러나 더 이상 다른 드라마를 통해 느끼게 할 수 없기에 배우 자신의 입으로 직접 설명하듯 들려준다.

 

아쉬울 따름이다. 어느새 필자 자신도 잊고 있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이 <대풍수>라는 사실을. 풍수라고 하는 이제는 잊혀져가는 지식을 드라마를 통해 그 시대로 옮겨가 느끼고 즐긴다. 그래서 목지상의 아버지 목동륜은 신안을 가진 대풍수였다. 목지상 역시 목동륜의 신안을 물려받은 대풍수의 자질을 가진 이였다. 그러나 한국 드라마 제작의 현실은, 그리고 지지부진한 시청률은 결국 흔한 역사드라마로 드라마를 내몰고 만다. 물론 그럼에도 드라마는 탄탄하고 재미있지만 애초의 의도가 사라진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역사드라마는 많다. 그러나 풍수드라마는 아직껏 거의 없었다. 천재적인 책사는 그동안에도 넘치도록 많았다.

 

아무튼 그런 결과로 고작 수천의 병력으로 이성계와 조민수가 이끄는 수만의 요동정벌군을 막아냈던 최영의 용병술은 이정근의 얄팍한 책략에 그 공을 넘겨주게 된다. 사실상 최영이 하는 일이란 없다. 목지상이 책사가 되고 그 반대편에서 이정근 역시 책사의 역할을 하다 보니 원래는 이성계와 최영의 역할이었던 부분까지 이들에게로 돌려지게 된다. 전투는 없고 대화만 있다. 치열한 싸움이 있어야 하는데 몇몇 인물들만이 등장해 말로써 모든 걸 끝내려 한다. 역시 시간에 쫓기는 드라마 제작여건으로 인한 한계일 것이다. 수많은 병력이 등장해 싸우는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만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처음에는 <대풍수>라는 제목에 어울리게 '풍수'라고 하는 자체에 대한 흥미로, 그 다음에는 작가의 역사에 대한 탁월한 해석과 묘사에 대한 재미로, 이제는 그조차도 사라지고 단지 인간의 관계만이 남게 된다. 목지상과 이성계, 목지상과 이정근, 목지상과 해인, 목지상과 영지옹주, 이정근과 해인, 이정근과 영지옹주, 그리고 수련개와 영지옹주. 중반까지 역사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하면서 보여주던 재미까지도 이제는 지지부진한 대사의 홍수속에 주춤해 있는 중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드라마가 이렇게 시청률에 어울리는 결말로 향해가고 만다.

 

다시 말하지만 책사는 많다. 책사가 등장하는 드라마는 그동안도 넘치도록 많았다. 삼국지의 영향일 것이다. 책사의 책략에 한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굳이 <대풍수>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더구나 설사 책사의 위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병력의 차이가 열 배나 나는데 굳이 최영의 수천 병력을 그렇게 경계해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결국 목지상이 이정근의 계략에 넘어가는 것도 너무 시간을 끌었기 때문이다. 실제 역사의 이성계는 그렇게까지 어리석지 않았다. 역시 무리하게 책사의 역할을 늘리려다 보니 생겨난 부작용일 것이다.

 

힘이 떨어졌다. 다른 말로 재미가 떨어졌다 할 수 있다. 초반의 기대가 희석되어간다. 새로운 기대 역시 방향을 잃어간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납득해 버리는 자신이 있다. 많은 드라마가 그와 같은 길을 거쳐갔다. 초반의 역동성은 후반 들어 좁은 세트에 갇힌 채 몇몇 이야기의 대화로만 모든 것을 풀어가려는 힘빠진 모습을 보이고 만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아쉽다.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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