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미디어가 대중문화를 주도하고 있지만 - 아니 지배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그러나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미디어 역시 변화하는 시대에 순응하는 수용자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었다. 60년대의 포크문화나 70년대의 록, 그리고 80년대의 댄스와 발라드까지 대중문화의 흐름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다운타운에서 먼저 시작되고 있었다.
60년대까지 주로 미군무대를 중심으로 해외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였다면, 60년대 이후 그같은 역할을 담당한 것은 다름아닌 한창 성장해가던 대학가 중심의 청년문화였다. 선진문명에 대한 동경과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지적 능력 또한 갖추고 있던, 무엇보다 기존의 문화로는 만족할 수 없는 젊음을 가지고 있던 그들은 당시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첨단에 서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시봉으로 유명한 60년대의 포크문화와 70년대 말부터 일어난 캠퍼스밴드의 붐은 바로 그렇게 대학가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감각의 코미디를 선보이던 일단의 젊은 코미디언들이 스스로를 개그맨이라 부르며 또다른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기도 했었다. 당연히 디스코붐에 이은 80년대의 댄스열풍 역시 대학가를 비껴나지 않았었다. 아니 이제는 형과 언니들의 문화를 동경하던 하이틴이라 불리우던 10대들에게까지 그 영향은 확산되고 있었다.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스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젊음의 행진>이 방송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불후의 명곡2>의 무대를 보면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80년대의 젊은 가수들은 그다지 요즘 말하는 가창력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았다. 폭발적인 고음도 없었고 애절한 감정표현도 부족했다. 담담했다. 담백했다.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고 가수가 된 경우가 아니었다. 각자 나름대로 노래하는 것을 즐기고, 노래를 만드는 것을 즐기고, 춤을 추는 것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무대에까지 오르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아마 아버지 세대들은 그런 젊은 세대의 음악을 들으며 그리 말하곤 했었다.
"그런 것도 노래냐?"
어느 시대에나 빠지지 않는 식상한 단골멘트일 것이다. 요즘도 아마 어떤 어느새 나이가 쌓여가기 시작한 세대들은 지금의 음악을 들으며 그리 말할 지 모르겠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아무튼 지금에야 대중들 자신조차 그같은 노래의 기교나 표현에 익숙해 있기에 프로라면 그 이상을 보여주어야 하는 책임이 주어진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딱 그런 정도가 대중이 소화할 수 있는 눈높이였다. 듣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따라부르기에 어렵지 않다. 이를테면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 스타를 넘어선 최초의 아이돌이 이때부터 생겨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아마 그때는 그런 이들을 우상이라 불렀을 것이다. 우상이 곧 아이돌이다. <젊음의 행진>이란 바로 그같은 젊은이의 우상이 출연하던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보다 세련되고 현란한 무대와 그와 어울리는 젊은 가수들. 그들이 부르는 노래도 딱 그들 또래가 듣고 즐길 수 있는 노래들이었다. 미군무대로부터 대학가로 이어진 한국 대중문화의 중심은 다시 그렇게 10대에게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보다 젋어지고 보다 새로워진 문화가 젊은 스타들과 함께 대한민국 대중문화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들이 이후의 대한민국의 대중문화를 주도하고 있었다. <젊음의 행진>에 의해서만은 아니겠지만 그 하나의 계기는 되어주었다 할 수 있었다. 벌써 초등학생 때부터 필자의 주위에서도 <젊음의 행진>을 보지 않고서는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시대의 출현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너무나 반가웠다. 특히 송승환과 왕영은은 필자가 기억하는 유일한 <젊음의 행진>의 MC들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MC들이 거쳐갔지만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이 가장 오랫동안 MC를 보았던 이들이었다. 송승환은 이제 공연기획자로 크게 성공을 거두었고, 왕영은은 아직도 라디오를 통해 방송활동을 이어간다. 다시금 이들이 MC가 되어 그 시절을 기억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았으면. 7080과는 다른 당시의 버라이어티쇼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프로그램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정동하의 무대에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너무 섬세했다. 마치 순정만화의 한 장면과 같았다. 하지만 예전부터 남자아이들이 순정만화를 싫어하는 이유가 있다. 너무 간질거린다. 섬세하게 표현되기는 했지만 관객을 압도하는 느낌은 없었다. 그렇다고 관객을 설득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보여주고 들려준다. <젊음의 행진>이라고 하는 컨셉에는 상당히 어울리는 무대였지만 글쎄... 라이브로 현장에서 보는 관객의 느낌은 다를 수 있다. 더구나 경연이다.
박현빈의 '경아'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모든 것이 너무 지나쳤다. 고음도, 성량도, 기교도, 무엇보다 감정까지. 하기는 그는 트로트가수였다. 그리고 요즘의 가수다. 감정표현이 직설적이다. 감추거나 뒤로 물리는 법이 없다. 하지만 역시 경연이라면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한 방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트로트 가수라는 어쩌면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장르의 노래들과 선전하고 있다. 박현빈이라는 가수가 갖는 가치다.
인피니트H가 부른 ''오직 하나뿐인 그대'는 박현빈과 마찬가지로 시대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춤이라기에도 민망한 심신의 권총춤에 비해 인피니트H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현란 그 자체였다. 강렬한 사운드와 현란한 안무가 화려함으로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미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쌓아 온 그들이기에 가능한 무대였을 것이다. 원곡의 느낌마저 잊은 채 그들이 보여주는 무대에 어느새 압도당하고 만다. 하기는 이런 정도로 압도당하기에는 요즘 아이돌들이 보여주는 무대란 그들이 왜 한류의 중심인가를 깨닫게 하고 만다.
아이비는 다리가 너무 길었다. 왕영은의 말처럼 머리도 너무 작았다. 아이비의 '사랑은 유리같은 것'의 무대를 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연예인의 외모를 말하며 머리크기까지 따지는 경우란 최근에 나타난 경향이었다. 다리길이라면 몰라도 불과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연예인의 머리크기까지 비교하며 말하는 경우란 드물었다. 물론 그때는 더 다리도 짧고 얼굴도 큰 연예인들이 미남미녀로 추앙받으며 대중의 스타로 군림하고는 했었다. 그에 비하면 아이비의 미모와 몸매는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그럴 만큼 그녀의 비주얼은 압도적이었다. 복고풍의 과하지 않은 절제된 율동 수준의 안무마저 절로 손끝이 따라할 정도로. 복고를 소화하기에는 너무 탁월한 비주얼이 장애가 되지 않았을까. 가장 좋았다. 가장 만족한 무대였다. 그녀는 아름답다.
윤형렬은 원곡에 가까운 느낌이 그가 1승을 거둔 가장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워낙 노래를 잘 부른다. 노래에 감정을 싣는 것도 탁월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감정마저 죽이고 있었다. 오로지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만을 따라가며. 마치 그 시절의 그 노래를 듣는 듯. 특별하다거나 새롭다는 느낌은 없지만 익숙함과 안정감이 있었다. 추억을 기대하고 무대를 지켜본 이들이라면 저도 모르게 한 표를 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범학과도 닮았다. 그렇게 그의 노래는 시간을 거스르고 있었다.
강민경의 '널 그리며'의 탱고편곡은 신의 한수라 할 수 있었다. 탱고의 비장한 격정이 '널 그리며'의 정서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댄스음악이라기에는 약간은 뽕끼가 느껴지는 마이너 멜로디가 오히려 탱고와 최적화를 이루는 듯 싶다. 감정을 절제하며 탱고의 리듬에 실린 노래를 훌륭히 소화한 강민경의 노래 또한 칭찬할 만하다. 아니 프로에게 칭찬이란 어울리지 않는다. 맞춤옷처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녀만의 무대였다. 순서가 6번째가 아니었다면 1승에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강민경 자신의 입장과는 상관없이 순서가 뒤늦게 많이 아쉽기까지 하다.
그러고 보면 당시 부모세대와 맞서가며 자신들의 문화를 지켜내던 젊은 세대들이 벌써 자신들의 아이들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세대가 되어 버렸다. 당시에는 가장 젊은 첨단의 문화였을 테지만 이제는 추억이 되고 전설이 되어 버렸다. 고루하고 촌스러운 지난 시절의 유산이 되어 버렸다.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한다. 송승헌의 흰머리나 왕영은의 주름진 얼굴처럼. 나이가 곱게도 내려앉았다. 정한용이 <젊음의 행진>에서 구성작가를 했었구나.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갔을까? 그 시절 어색하기만 하던 유재석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그 유재석을 추앙하는 지금의 어린 세대들과 함께.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가 즐기던 문화를 들으며 체험하며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지금도 필자의 가장 큰 행운이라 여기고 있다. 나이에 비해 옛스런 것들에 많이 익숙하다. 즐거웠다. 오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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