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일 것이다. 하류(권상우 분)의 복수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류의 입장이 되어 주다해(수애 분)의 악행에 분노하고 그 죄의 댓가를 치를 수 있도록 간절히 바라며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주다해가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 의미가 있다. 그것을 심판하는 통쾌함을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자꾸 엇나가기만 한다.
홍안심(이일화 분)이 주다해에게 '자식 잡아먹은 애미'라고 저주를 퍼부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울컥 주다해의 입장이 되어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은별이 죽은 것이 주다해의 탓이었는가? 하필 그때 백도훈(유노윤호 분)이 주다해를 찾아왔고, 마지막으로 떠나는 길이기에 외면할 수 없어서 그를 만났다.
물론 홍안심은 그런 사연을 모른다. 단지 은별이 사고를 당하던 그 순간 주다해가 그 자리에 없었다. 은별의 곁에서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 그러니 은별을 지켜주지 못한 주다해의 탓이다. 그러면 미처 부모가 보살피지 못한 사이에 사고를 당한 모든 경우에 부모 또한 그 죄인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스스로 자학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가지고 비난하거나 심지어 죄를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과연 홍안심의 그러한 주다해에 대한 원망은 타당한가?
양택배(권현상 분) 역시 마찬가지다. 양택배는 아직까지 주다해가 자신이 지은 죄를 하류에게 뒤집어씌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물론 하류의 친형 차재웅이 주다해의 부탁을 받은 의붓오빠 주양현(이재윤 분)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양택배가 아는 것은 주다해가 하류를 배신했고, 은별이 사고를 당하던 순간 다른 남자를 만나느라 자리를 떠나 있었다는 사실 뿐이다. 그런데도 주다해에게 복수하려 한다. 삼류치정극도 아니고 결혼했다가도 이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고작 그런 이유로 주다해를 증오하여 하류의 복수극에 동참하려 한다. 그냥 친한 형을 배신한 여자이기에 원망한다는 정도가 족할 것이다.
하류의 주다해에 대한 원한 역시 그런 점에서 많이 어긋나 있다. 물론 주양현이 차재웅을 죽였다. 주양현은 주다해의 부탁을 받아 차재웅을 납치하여 폭행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양현을 차재웅을 죽이려 하지 않았다. 주다해 역시 차재웅 - 아니 하류를 죽이라고 사주한 적이 없다. 단지 우연이고 실수였을 뿐이었다. 분명 납치에 폭행에 협박에, 심지어 과실치사와 사체유기의 죄를 짓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류가 주다해에게 갖는 증오의 이유인 살인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죄란 결과 뿐만 아니라 행위나 동기도 무척 중요하다. 얼핏 하류의 원한과 증오에 대해 주다해가 억울하지 않은가 동정하게 되기도 한다.
백도경(김성령 분)의 주다해에 대한 증오는 어떠한가. 주다해는 백도경의 말 리사를 죽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류의 집을 직접 찾아가려는 백도경의 발걸음을 돌리려 말 리사를 이용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죽이려는 생각까지는 전혀 하고 있지 못했다. 아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잠시 말을 풀어놓았다고 도로에서 트럭에 부딪혀 바로 즉사해버릴 것이라고 누가 감히 생각이나 했겠는가. 단지 리사를 아끼는 감정이 홍안심의 그것처럼 주다해에게 모든 책임을 씌우려는 편협한 증오로 나타나게 된 것 뿐이다. 더구나 결국 사람이 아닌 말이기에 백도경의 주다해에 대한 감정은 가장 이해하기가 힘들다.
즉 정작 시청자로부터도 증오와 분노의 대상이어야 할 주다해가 오히려 연민과 동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처절해야 할 하류의 복수가 잘못된 오해와 편견 때문으로 희석되거나 우스꽝스러워질 수 있다. 하류의 복수에 동의하지 못하게 되면서 드라마의 핵심이 흐트러지게 된다. 주다해의 악행과 하류의 복수극이 드라마의 중심을 이루는데 그것에 동의하지 못하게 되니 드라마에 대한 몰입도 해치게 된다. 상당히 높을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위태위태한 이유일 것이다. 자칫 드라마의 구조가 한꺼번에 허물어지며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주다해는 더 악독해져야 하고 하류는 더 간절해져야 한다. 주다해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그를 향한 심판과 복수가 더욱 절실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하류가 차재웅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것은 흔한 클리셰적 구성일 것이다. 쌍동이라고 다 같지는 않다.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어도 성격도 다르고 성장과정을 통해 외모도 크게 달라진다. 같은 환경에서 함께 자란 것도 아닌데 과연 쌍동이라고 해서 심지어 부모조차 몰라볼 정도로 닮아 있을 가능성이란 얼마나 될까? 하물며 결혼까지 약속한 연인이 있는데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환경이 다르면 말투도 다르고, 행동도 다르고, 쓰는 단어조차 달라진다. 차재웅을 대신해 변호사로 행세하려면 법에 대한 지식도 갖추어야 하는데 사법고시는 어지간한 수재들도 한 번에 통과하기 어려운 난이도 높은 시험이었다. 이렇다 할 학력도 지식도 갖추지 못한 하류가 과연 차재웅을 대신해 변호사 일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하류가 차재웅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쌍동이에 대한 판타지일 것이다. 이란성 쌍동이일 쌍동이 남매가 서로의 성별과 역할마저 바꾸어 대신하기도 하는 경우처럼, 엄연히 별개의 인격임에도 단지 쌍동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때로 동일시되기도 한다. 하나의 수정란에서 분리되어 나온 반쪽으로 그들은 얼마든지 서로의 대신이 될 수 있다. 그런 관념에 기대어 하류는 차재웅이 될 수 있다. 관용에 의해 아버지마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연인 또한 그를 차재웅으로 대하고 만다. 유일하게 하류를 알아보는 것이 주다해라는 것은 아이러니일 것이다. 누구보다 하류를 알고 이해하고 있던 사람이 다름아닌 주다해였던 것이다. 운명의 쌍동이일까?
사실 이 부분에서도 조금만 성의를 가지고 세심하게 신경썼다면 보다 사실성과 개연성을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차재웅이 교도소에서 하류를 만났다. 엄상도(성지루 분)를 통해 하류의 존재를 알고 그가 자신의 동생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번이나 차재웅은 하류를 찾아가게 된다. 하류를 찾아가 이런저런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게 된다. 자기가 자라온 과정이라든가, 자신이 살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라든가, 주위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무엇보다 하류와 자신이 어디가 어떻게 다른가를 끊임없이 확인해주며 그것을 하류에게 각인시킨다. 엄상도조차 차재웅이 어떤 사람인가 알지 못한다. 어떤 말투를 쓰고, 어떤 버릇들을 가지고, 어떤 특징들로 특정지어질 수 있는가를. 사소하지만 바로 이런 것이 퀄리티일 것이다.
그래도 백도경을 유혹하려 어설프게 시도하다가 실패하는 장면은 좋았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다. 놓인 현실이 다르다. 아무리 미리 준비해서 외우고 익혀도 그것을 일상에서 체화한 사람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백도경에게는 그만한 식견과 경험이 있다. 백도경의 하류에 대한 호감이 잠시 그런 것들에 눈감도록 했을 뿐이다. 하지만 백도훈이 지나치게 쉽게 차재웅을 받아들이는 장면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만다. 백도훈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차재웅을 형이라고까지 부르게 되었던 것일까?
차재웅이 하류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수는 없다. 뻔히 아는 사실인데도 그것을 입증할 수 없으니 어떻게 손을 쓸 도리가 없다. 하류도 그것을 안다. 주다해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들키지 않도록 신경쓰며 주다해에게 복수하려 다가간다. 속내를 감추고 거짓과 기만으로 서로를 대하는 모습들이 살벌하면서도 애처롭다. 하류의 감정에 더욱 동의할 수 있었다면, 그리고 주다해의 악행에 더욱 분노와 증오를 키울 수 있었다면, 그런 점에서 역시 아쉬움이 남는다. 한 걸음을 남기고 물러서고 만다.
백도경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해 하류에 대해 알아내려 한다. 마침내 알아냈다. 하류와 차재웅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과연 백도경이 알아낸 진실이란 어디까지인가? 하류와 주다해의 관계에 대해서까지 알아낸 것일까? 이 또한 드라마에서 허술하게 지나가는 부분일 것이다. 백도경이든 백창학(이덕화 분)이든 주다해의 거짓말에 너무 쉽게 속아주고 있다. 알아내려 한다면 굳이 못알아낼 것도 없는 과거일 것이다.
백지미(차화연 분)가 백창학과 그의 자식들인 백도경, 백도훈에 대해 갖는 감정의 실체가 드러났다. 백지미가 굳이 주다해의 과거를 알면서도, 아니 주다해가 이미 어린 딸까지 두고 있는 아이엄마라는 사실을 알고 더욱 그녀를 백도훈에게 가까이 붙여주려 한 이유가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백창학에 의해 백지미의 남편이 죽었다. 아무 생각없이 방탕한 일상을 보내는 듯한 그녀의 이면에 이같은 비극과 원한이 자리하고 있다. 주다해는 백지미가 백창학에게 보내는 독이 든 잔이다. 백창학을 모욕하고 그를 분노케 하며 좌절케 한다. 백도경과 백도훈은 단지 그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가장 잔인하다. 잔인한 것은 슬픔을 동반한다. 다만 백지미가 자신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독백에서 너무 대사가 유치하지는 않았는가. 진부하고 지루했다. 지나치게 익숙하다는 것 또한 드라마가 쉬워지는 이유가 된다.
한 고비를 넘지 못한다. 한 걸음만 더 내딛게 되면 명작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그 한 걸음을 머뭇거리느라 애매한 지점에 머문다. 막장을 피하려다가 명작까지 스스로 비껴지나고 만다. 더 많은 깊은 주제를 담아낼 수 있었을 것임에도. 더 격정적인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었을 터임에도. 공중파의 한계인 것일까. 그래도 재미있다. 아직은 좋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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