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아이리스2 - 화려한 액션과 영상, 그러나 내용도 개연성도 없다.

까칠부 2013. 3. 16. 08:58

드라마를 보다 말고 잠시 졸았나 싶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스노우모빌들이 눈덮인 산속을 달리는 가운데 정유건(장혁 분)이 그 앞에서 쫓기고 있었다. 정유건이 기억을 찾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챈 아이리스는 리에(유미 분)에게 그를 죽이도록 명령한다. 하지만 정유건에게 남다른 감정을 가지게 된 리에는 그를 죽이지 못했고, 그 사실마저 눈치챈 아이리스는 다시 뒷처리를 위해 요원들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리에는 그들에 잡히고 정유건은 쫓긴다. 과연 이 과정 어디에 스노우모빌까지 동원된 추격전의 개연성이 들어있던가.

 

조직이 비밀리에 운용하던 안가를 급히 옮기던 도중이었다. 누구도 그들의 뒤를 쫓지 못하도록 최대한 빨리 최소한의 흔적까지 모두 지우고 사라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리에가 정유건을 살려주고, 그런 정유건을 뒤쫓게 되는 일련의 과정은 그같은 다급한 상황에 느닷없이 나타난 돌발변수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마치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스노우모빌을 동원하고, 바로 정유건의 뒤를 쫓아 그를 산채로 다시 잡아들이기에 이른다. 그러면 그 추격전은 도대체 어째서 벌어지게 된 것이었을까? 정유건이 도망치기도 쉽지 않은 눈속을 허우적거리며 헤매고 있던 이유는 또한 무엇이었을까? 배경은 아름다웠다.

 

그러고보면 헝가리에서 남북비밀회담의 남측대표인 조명호(이정길 분)를 둘러싸고 NSS와 아이리스 사이에서 벌어진 총격전도 그와 유사하다. 북측 대표를 암살할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도심의 호텔이 아닌 교외의 한적한 도로위였다. 오가는 차도 드물고 보는 이도 없는데 굳이 무리하게 소화기를 동원해 방탄처리된 차에 타고 있는 남측대표를 정면에서 노릴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드라마의 설정대로라면 아이리스에게는 그런 정도의 방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중화기도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터였다. 정유건에 의해 유인된 아이리스를 제압하는 과정에서도 NSS역시 오로지 소화기에 의한 제압작전을 펼쳐보일 뿐이었다. 말 그대로 총격전을 위한 총격전이다.

 

포르노에 시나리오는 필요없다. 어쩌면 장르의 문법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말은 없을 것이다. 액션물이라면 마땅히 액션을 보여주어야 한다. 총격전도 보여주어야 하고 격투장면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그것이 강박이 되어 버렸다. 보다 멋진 총격전을 보여주고자 그 과정에서의 개연성을 과감하게 생략해 버린다. 아이리스라고 하는 조직의 스케일상 이것은 단순한 액션물이 아니게 될 텐데도 바로 거기에서 바로 머물러 버리고 만다. 유중원(이범수 분)은 미사일까지 동원하여 남한 전체 - 아니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데 그것을 막아서는 것은 단지 손에 든 총기 하나, 그를 위협하는 것도 역시 아이리스의 손에 들린 총기들 뿐이다. 오히려 더 간단히 폭탄테러 등으로 아이리스의 스케일을, 그리고 그에 맞서는 NSS의 스케일을 더 크게 강조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기는 다시 열리게 된 남북회담에서 북측대표를 제거할 대는 아이리스 또한 무척 대담하면서도 단순한 확실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었다. 바로 이런 것이 스케일이다. 미군에만 납품되는 신경가스를 마치 의도하기라도 한 듯 아이리스가 사용하여 북측대표를 제거하고 있었다. 여러개의 함정을 판다. 남한에서 개최된 남북회담에서 북측대표가 죽고, 그에 사용된 신경가스는 미군에만 납품되는 것이고, 더구나 실제 회담장으로 침입해 들어온 암살자의 정체가 바로 전 NSS요원 정유건이었다. 차라리 북측대표의 일본밀항에도 기존의 밀항조직이 아닌 자체적인 조직을 동원하여 밀항하도록 설정했으면 어땠을까?

 

결국 단지 일개 범죄조직에 불과하다. 한 나라를 실질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어떤 힘도 아이리스에게는 없다. 그런 아이리스조차 대한민국 정부는 막아내지 못하고 NSS라는 비밀조직을 만들어 대항한다. 한 번은 통할지 몰라도 어느새 시청자 자신도 그 위화감을 깨닫게 된다. 국제적으로 음모를 꾸미는 테러조직이라기에는 그 스케일이 너무 작다. NSS가 맡은 여러 임무 가운데 하나여야지 그것이 전적이어서는 안된다. 스케일은 키워놓았는데 그 내실이 없으니 그 위협이란 공허하기까지 하다. 못잡는 것이 아니라 아예 안잡는 것이다.

 

그런데다 지수연(이다해 분)까지 울고 있었다. 서현우(윤두준 분)는 그런 지수연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정유건의 출생의 비밀도 계속해서 맴돈다. 따로따로 놓고 보면 제법 매력적인 설정들이 하나로 모아놓고 보면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놀게 된다. 일관성 없이 그럴싸한 것들로만 섞어 놓으니 하나하나는 괜찮은데 전체로 보면 어색하고 어설프다. 과연 거기에서 다시 잡혀온 정유건 앞에서 굳이 리에를 죽여야 할 필연적 이유가 있을까? 아니 정유건을 죽이라 명령하고서도 다시 그를 살려서 데려온 것은 무슨 까닭일까? 유중원의 미사일까지 동원한 협박과 그마저도 너무나 쉽게 제압되고 마는 최민의 블러핑도 그렇다. 갑작스레 스케일을 너무 키우고 다시 갑작스레 모든 것을 접어버린다.

 

즉 스릴러가 없다. 하나의 목적을 향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나가는 일관된 의지와 중심이 부족하다. 한 마디로 주연이 없다. 주인공이 너무나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누가 주인공인지도 모르겠다. 지수연에게는 힘이 없다. 어떤 어려움에도 우직하게 자신을 믿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 어떤 순간에도 지수연은 정유건만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눈물이 어울리는 것은 멜로이지 액션이 아니다. 확실한 이야기의 중심이 없으니 주변만을 훑게 되고 각각의 볼거리에만 치중하게 된다. 이야기가 유치해진다. 어째서 아이리스는 정유건을 살리면서 굳이 위험부담까지 감수해가며 그에게 임무를 맡기고, 또한 아무리 전제왕조에 가까운 독재국가에서 일개 장교가 임의로 미사일을 움직일 수 있는 있는 것인가. 그러고 나서도 최민의 블러핑에 너무 쉽게 꼬리를 내리고 만다.

 

아마 반전이 있을 것이다. 이대로라면 너무 심심하다. 문제는 이것은 영화가 아닌 드라마라는 것이다. 그것도 매주 끊어서 방송되는 미니시리즈다. 일단 극장에 들어가면 엔딩크레딧이 나오기 전까지 자리를 뜨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일주일이면 충분히 바로 전주에 방송된 내용도 잊혀지기 충분한 시간이다. 실망은 남고 기대는 잊혀진다. 한 번 기대가 사라지면 다시 찾게 되기가 무척 어렵다. 내용도 없으면서 괜히 진지한 척 심각한 척 하는 것도 마이너스다. 시청자는 전혀 진지하지도 심각하지도 않은데 드라마만 혼자 진지하고 심각하다.

 

드라마가 갖는 문제를 마치 압축해 놓은 듯 보여주고 있단 장면이었다. 왜인가? 어째서인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는가? 추격전이 한참 진행되고 난 다음이라면 또 모르겠다. 바로 시작된 추격전이라면 그저 몸으로 뛰고 달리는 것만으로도 족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라면 아이르스도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준비를 갖춰 정유건을 쫓았을 것이다. 정유건을 죽이고자 쫓고 있던 중이었다면 그를 보는 순간 레이(데이비드 맥기니스 분)는 방아쇠부터 당겼어야 했다. 이래저래 무르고 어설프다.

 

공중파 드라마의 한계일 것이다. 자본은 열악하고 그런 주제에 너무 많은 것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 회 70분씩 무려 20회에 걸쳐 1400분에 이르는 영상을 TV를 통해 내보내지 않으면 안된다. 얇아질 수밖에 없다. 한 번은 통하지만 두 번은 무리다. 그나마 시즌1에서는 확실한 이야기의 중심이 있었고, 그 중심을 책임지는 존재감있는 주연들이 있었다. 아이리스가 아닌 바로 그들이 남았어야 했다. 제목이 그래서 더 아쉬웠을 것이다. 아이리스가 아닌 NSS였어야 했다. NSS의 적이라기엔 스케일만 크다. 드라마와 같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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