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직장의 신 - 계약직이라는 이름의 프로페셔널, 웃을 수밖에 없는 현실의 역설

까칠부 2013. 4. 2. 08:43

사실 원작인 일본드라마 <파견의 품격>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굳이 파견이라 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계약직이기는 하지만 일이 없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금여수준 또한 어지간한 정규직보다 더 많이 받는다. 그 능력을 인정해서 여러 기업에서 알아서 모셔가다시피 계약을 하고,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며 재충전을 한다. 어쩌면 많은 월급쟁이들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 아니었을까?

 

말이 파견직이고 계약직이지 사실상 일인외주라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런 때 쓰는 말이 있다. 프리랜서라고. 달리 '일하는 백수'라 부르기도 한다. 말이 프리랜서지 안정된 일감을 확보하지 못하면 백수나 마찬가지로 수입없이 노는 시간이 태반을 차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력이 있고 그것을 인정받는다면 오히려 몸값을 올려가며 누구보다 높은 소득과 성취감을 기대해 볼 수 있다. KBS의 새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주인공 '미스 김(김혜수 분)'이 바로 그런 위치에 있을 것이다. 그녀와는 처지가 전혀 다른 정규직이 되지 못한 비정규직 정주리(정유미 분)가 그래서 미스 김의 모습과 대비된다.

 

그러고 보면 참 샐러리맨이란 하는 일이 많다. 어쩌면 업무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커피타기에서부터 자료정리, 각종 비품과 집기의 관리와 유지, 심지어 중요한 자료가 저장된 USB를 분실하자 그것을 찾기 위해 포크레인까지 동원해야 한다. 하기는 회사에서 업무시간이 끝나고 나서도 집으로 일을 가져가서 잠을 줄여가며 완성해 오기도 한다. 그래서일 것이다. 굳이 '파견'이니 '계약직'이니 하는 말을 쓰는 것은. 프리랜서란 전문가다. 물론 '미스 김'도 프로다. 다만 프로로서 업무외적인 일들에 대해서까지 철저히 기존의 샐러리맨들과 똑같이 - 아니 그 이상으로 철저하게 수행해낸다. 이를테면 프로샐러리면이며 프리랜서 샐러리맨일 것이다. 그곳에 샐러리맨의 애환을 담는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의 절박함과 쓸쓸함일 것이다.

 

안타깝게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계약직이기에 오히려 실력만 있다면 기업과의 계약에 있어 보다 유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주도적으로 지킬 것은 지키고 챙길 것은 챙겨가며 당당하게 일할 수 있다. 아니 지금 당장도 전문직에 종사하는 고액연봉자 가운데는 그런 식으로 주도적인 위치에서 철저히 자기에게 유리한 계약조건 아래 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러기가 결코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미스 김 역시 스스로 세 사람 분의 일을 거뜬히 해낼 수 있다고 말하며, 실제로도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잡무까지 프로수준으로 수행해낸다. 드라마니까 가능하다. 현실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의 정규직들이 미스 김을 경원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들은 하지 못하는 것이니까. 차라리 비정규직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한 정주리(정유미 분)의 경우는 얕잡아보고 무시하더라도 동정은 베풀 수 있다. 그녀야 말로 정규직인 자신들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증거일 테니까. 그러나 미스 김은 다르다. 계약직인 주제에 자신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누리고 당당하게 그것들을 지키고 있다. 자신들은 하지 못하는 것을 정규직보다 열등하다 여기는 계약직이 해낸다. 억울하고 화가 난다. 그것은 본능이 시키는 너무나 당연한 시기이고 질투다. 전혀 타인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몹시 멋지고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를 위해서 미스 김 자신이 자신에게 투자한 노력들을 생각한다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또한 현실의 여러 어려운 사정들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도대체 한 개인이 저리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분명 우선해서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을 것이다. 미스 김과 같이 높은 급여를 받고 초빙되다시피 일하는 경우라면 더 그렇다. 커피를 타고 망가진 집기들을 수리하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을 터다. 그런 것은 오히려 그런 것들만을 전문으로 해결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도 좋을 것이다. 미스 김과 같은 몸값도 비싼 고급인력에게 그런 일을 맡기는 것은 낭비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야 한다. 잔업도 하고 야근도 한다. 집에 가서도 일을 한다. 계약직은 그 가운데 정규직을 미끼로 더 싼 급여에 더 열악한 조건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도구일 것이다.

 

일을 너무 많이 한다. 그것이 프로라 불리우는 이유가 된다. 차라리 한 가지 업무에만 집중한다면. 집중할 수 있다면. 다른 업무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기존의 사원들이 일하는 것을 서포트하는 한 가지로만 특화되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다면. 하지만 그보다는 팔방미인의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며 우울한 자화상일 것이다. 어째서 실업문제가 그리도 심각한가? 아마 직원들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전문성을 살려가며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면 저 가운데 몇 명은 더 직원을 채용해도 좋을 것이다.

 

부러운 부분이다. 계약이 끝나면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 아마 그 동안 여러 취미생활도 즐길 것이고, 여행을 떠나며 재충전의 기회도 가질 것이고, 그녀가 가진 수많은 기술과 자격들이 그 기간 동안 축적된 것이기도 할 터다. 개인의 가치가 올라가고 그로 인한 업무효율 또한 상승한다. 모두가 그같은 행운을 누릴 수는 없을 테지만 그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비슷하게 배려될 수 있지 않을까. 마냥 일만 시킨다고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미스 김이 그것을 보여준다. 아니 미스김과 대립하고 있는 장규직(오지호 분) 역시 그렇게 일정기간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돌아온 경우일 것이다.

 

코미디란 어쩌면 슬픔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역설이다. 페이소스라 부른다. 비정규직의 열악함이, 아니 그 이전에 수많은 월급쟁이들이 놓인 치열한 현실들이 미스 김이라고 하는 만화적인 과장된 캐릭터를 통해 승화된다. 놀랍고 대단하다. 그런데 우스꽝스럽다. 자신에 대한 조롱이고 모독이다. 그를 통해 쾌감을 얻게 된다. 현실이 아님을 안다. 대안이 아님도 안다. 조용히 체념하고 웃어넘기고 만다. 그래서 우스우면서도 슬프다. 재미있다.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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