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에서도 우스개처럼 '케이블 스타일'이라는 말이 흔히 쓰인다. 아무래도 투입되는 자본의 양이 다르다. 대상의 범위도 다르다. 접근성이 다른 만큼 기대할 수 있는 시장의 크기부터가 시작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어쩐지 케이블이라고 하면 주류에서 벗어난 B급을 연상시키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이다. 하긴 벌써 여러해 전부터 시작된 현상이다. 그런 것들이 케이블이 갖는 한계라면 또한 그런 것들이야 말로 케이블이 갖는 강점일 것이다. 주류란 특정하지 않은 일반의 사라들을 대상으로 스스로 먼저 찾아가는 것이라면, 비주류란 특정한 한정된 개인들이 먼저 찾아가 대하는 것이다. 케이블TV는 바로 그 케이블을 통해 시청자와 직접 연결된다. 하물며 공중파TV는 채널까지 제한되어 있다. 선택할 수 있는 채널이 몇 없다.
그래서일 것이다. 공중파란 습관이다. 일상이다. 무심코 TV를 켜고 채널을 옮기다 어느 한 곳에서 멈추게 된다. 누구라고 특정할 수 없는 그같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그들로 하여금 채널을 고정하도록 해야 한다. 특별한 어떤 것보다 누구다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무언가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실제 남다른 특별함으로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가운데 시청률까지 높았던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한계를 갖게 된다. 드라마 한 편을 제작하고 방송하는데에는 막대한 시간과 자본과 인력과 노력이 들어간다.
과연 공중파에서 <뱀파이어 검사>나 <특수사건전담반 TEN>과 같은 장르적 문법에 지독할 정도로 충실한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었겠는가. 화제는 되었을 테지만 이들 드라마들 역시 사실 그렇게 높은 시청률까지는 기록하지 못했었다. 케이블TV드라마로서는 높았지만 공중파 드라마들과 비교하면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성공했다 말한다. 역시 환경의 차이일 것이다. 계량하기 어려운 불특정다수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중파 드라마들에 비해 이들 드라마들은 케이블을 통해 직접 시청자와 연결된다. 시청률이 곧 드라마에 대한 직접적인 수요로 이해된다.
환경의 차이인 것이다. 일부러 케이블을 신청하고, 그 비용을 지불하며, 굳이 번거로운 케이블 채널을 선택해 본다.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수용과 소비를 요구한다. 다시 말해 보다 손쉬운 공중파가 이미 존재하는 현실에서 케이블이란 시청자의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요구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직접 찾아본다. 비교할 수 없이 다양한 채널과 프로그램 가운데 자신이 보고자 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찾아 자신을 위해 고정한다. 하기는 공중파 드라마 가운데서도 그같은 화제성이 강한 드라마의 경우 시청률에 비해 광고주의 반응이 남다르기도 하다.
정말 놀라웠다. 특수감염병 위기대책반이라는 생소한 이름에서부터, 경찰과는 또다른 그들만의 위기를 헤쳐나가는 독특한 방식까지, 무엇보다 주인공 자신이 액션히어로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심지어 사랑조차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위기대책반에 소속된 두 여자대원 전지원(이소정 분)과 이주영(유빈 분) 모두 주인공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그는 그같은 두 여자의 감정에는 전혀 무심한 듯보인다. 이혼한 전체에게 집착하는 듯 보이기는 하지만 그 또한 멜로라기보다는 가족에 대한 남자로서의 책임감에 가깝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멜로의 사랑은 다르다. 기껏 바이러스의 보균자로써 항체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김인철(현우 분)을 막아섰다가 오히려 격투끝에 놓치는 장면에서는 얼마나 한심한 감정마저 들었는가. 교통사고를 당한 김인철을 살려보겠다 수술실에 들어가서도 도저히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낙담한 비명을 토해낸다.
여찌보면 여지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함이고 건조함일 것이다. 오로지 한 가지에 집중한다. 지금까지 나타난 어떤 조류독감에 비해서도 치명적이고 전염성도 강한 신종 바이러스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그리고 드라마처럼 메마른 인간의 욕망이 그런 대단할 것 없은 주인공 이명현(엄기준 분)을 중심으로 교차하며 얼개를 드러낸다. 이 모든 일의 배후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변호사 황선숙(조덕현 분)이 김인철과 그를 납치하려 한 사채업자 일당을 살해하는 과정이 그렇다. 필요한 말만을 내뱉고 마치 기계처럼 죽이라 지시하고는 전화를 건다. 반전따위 없이 김인철과 사채업자들은 시체로 발견되고 만다.
윤일중(송영규 분)의 집착이나 탐욕에 대해서도 드라마는 굳이 이해시키고자 하는 수고를 기꺼이 생략하고 만다. 원래 그는 그런 사람이다. 아니 설사 그럴 수밖에 없었던 피치못할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중요한 것은 그의 집착과 탐욕에 의해 자칫 막을 수도 있었던 재앙을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에 놓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권력의 사정을 내세우며 병을 은폐하고 해결을 지연시키는 대통령 비서실장 김도진(안석환 분)에게조차 드라마는 분노하지 않는다. 단지 그런 것이 있었다. 기계처럼 피라고는 흐르지 않는 듯 그렇게 드라말고 하는 구조 속에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갈 뿐이다.
그래서 사실 어떻게 보면 재미가 없다. 그래도 남녀주인공이 서로 사랑도 하고 알콩달콩 투닥거리는 재미가 있어야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지켜볼 수 있다. 덩달아 화내고 욕하며 때로는 동정하기도 하면서 직접적인 감정을 드러낼 수 있어야 보면서도 후련할 수 없다. 그런 것 없다. 해결되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무력하게 끌려다니기만 하는데다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한 냉정함이 여지조차 없는 견고한 구조를 만든다. 그래서 빨려들어가게 된다. 다른 아무런 군더더기 없이 오로지 드라마 자체에만 몰입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드라마일 것이다.
어쩌면 케이블이라는 한계가 만들어낸 장점이기도 할 것이다. 한 주에 70분짜리로 두 번 방송해야 하는 공중파에 비해 케이블 드라마는 한 주에 50분도 채 안 되는 분량을 한 번 내보낼 뿐이다. 그만큼 제작에 여유가 있다. 충분한 여유를 두고 완성도를 높여 촬영할 수 있다. 그렇다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량을 투입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밀도를 높이고 완성도를 높인다. 싸움이라고는 전혀 할 줄도 모르고, 더구나 의사로서도 완전히 실격인 주인공이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만들고 유포시킨 어둠속에 가려진 범인들을 추적하고 그들과 싸워나갈 수 있는 이유다. 그만큼 내용이 치밀하고 완성도가 높다. 오히려 공중파 드라마가 갖는 한계를 그들이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재미있다. 이제껏 드라마에서 다루어진 적 없는 특수감염병을 추적하고 예방하는 전문기관과 그에 종사하는 전문요원이라고 하는 소재의 특별함에서부터, 벌써 수백명의 사람들을 한순간에 죽음에 이르게 만든 치명적인 바이러스와의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싸움과 나아가 그보다 더 혐오스럽고 공포그러운 인간의 탐욕과 악의와의 엇갈림까지. 인간을 재앙으로부터 구해내겠다는 의지와 오로지 자신의 이기만을 위해 그 재앙과 거래하려는 인간의 추악한 내면이 아무 감정없이 담담하게 펼쳐져 보여진다. 속이 미식거릴 정도로 정교한 현실을 그려낸다.
새롭지는 않다.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 공중파의 보편과 케이블의 특별함. 공중파 드라마가 보다 다수의 보편적이고 공통된 감성에 의지한다면 케이블은 특정한 한정된 요구와 욕구를 위해 봉사한다. 대중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특정한 범위 안에서 보다 엄밀하고 철저하다. 장르는 케이블에 묻는다. 법칙이다. 공존하는 법을 찾아간다. 공중파 드라마도 물론 그래서 재미있다.
엄기준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필요한 곳에 집중할 줄 아는 놀아운 연출력이다. 어떤 액션도 멜로도 없이 치밀하게 단계를 밟아 진실에 접근해가는 대본의 완성도도 물론 말할 필요가 없다. 벌써 5회가 너무 아쉽다. 근래 최고의 드라마일 것이다. 감탄한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91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직장의 신 - 식구처럼이랬지 누가 진짜 식구랬나? (0) | 2013.04.03 |
---|---|
직장의 신 - 계약직이라는 이름의 프로페셔널, 웃을 수밖에 없는 현실의 역설 (0) | 2013.04.02 |
그 겨울, 바람이 분다 - 그가 없는 시간들을 견뎌야 한다는 것, 오영의 절망 (0) | 2013.03.29 |
그 겨울, 바람이 분다 - 오영이 진정 용서못하는 것, 바람이 불다. (0) | 2013.03.28 |
그 겨울, 바람이 분다 - 일본 원작과의 간단한 인상비교... (0) | 2013.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