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호환, 마마가, 그리고 귀신과 요괴가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숲에는 호랑이와 같은 맹수가 살았고, 원인조차 알 수 없이 병에 걸리면 손 쓸 틈조차 없이 목숨을 잃어야 했었다. 어둠속에는 귀신과 요괴가 살아 사람들을 위협했다.
하지만 숲은 개간되었고 맹수는 사냥되었다. 의학의 발달로 병의 원인과 치료법이 하나하나 밝혀지기에 이르렀다. 귀신과 요괴가 살던 어둠마저 인간이 만들어낸 빛으로 인해 저 멀리로 물러나 버렸다. 더 이상 인간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문명의 빛은 그렇게 눈부시도록 인간의 세상을 밝히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비로소 인간은 깨닫게 되었다. 무엇을 진정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하는지. 인간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란 과연 무엇이었는지. 하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많은 지혜로운 이들이 한목소리로 경고해 온 바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악마는 단지 지옥에 머물 뿐이다. 지옥에서 악마를 세상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누구인가.
원래 추리물이라는 장르부터가 도시의 공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추리는 현대에 이르러 스릴러라는 또다른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호환, 마마보다도, 귀신과 요괴보다도 더 흉폭하고 잔인한 인간의 악의가, 인간이 가진 이성의 힘으로 더욱 예리하게 벼리어진 그 탐욕과 이기가 어떻게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도시의 어느곳에서 사람들을 위협하고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가. 사람을 죽이고, 사람들을 속이고,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다. 다른 무엇에 의해서도 아닌 바로 인간에 의해서다. 인간이 자랑하는 지성과 이성에 의해서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온몸의 구멍이라는 구멍 모두에서 피를 흘리며 처참한 몰골로 죽어나가고 있었다. 두렵다. 너무 두렵다. 저 병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가. 저 끔찍한 병에 걸리면 자신은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 병을 이용해서 이익을 얻으려는 인간의 욕망이다.
의사다. 변호사다. 정치인이고 거대다국적기업의 임원이다. 하나같이 현대문명의 첨단에 서 있는 이들일 것이다. 탁월한 지성과 이성을 인정받고 그것으로 모두의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들일 것이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완벽한 정복과 지배가 이들에 의해 가능해질 것만 같다. 그러나 결국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슈퍼백신을 손에 쥐었을 때 그들의 탐욕과 이기가 세상에 돌려준 것은 바이러스보다 더 끔찍한 재앙과 공포였다. 어느새 모든 것을 발아래 두고 있는 듯한 인간의 위대함은 그렇게 인간에게 재앙과 공포로써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와 탐욕에 의해.
인플루엔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바이러스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 바이러스를 만들고 그것으로 이익을 얻고자 한 그들의 탐욕과 이기가 문제였다. 그것을 꾸미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지성과 이성이 문제였다. 모두를 속이고 기만한다. 주인공 이명헌(엄기준 분) 역시 그들의 함정에 빠져 경찰에 쫓기고 만다. 이익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가운데 겨우 확보한 혈청을 오염시키고 자신이 개발한 백신을 팔아치우려 뒷거래에 나섰던 윤일중(송영규 분)도 그러한 한 부분일 뿐이다. 국민의 안녕을 책임져야 할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입장과 이익만을 위해 국민을 위험에 방치하려 한다. 동료간호사의 죽음에 절망하고 눈물흘리면서도 끝내 김세진(이기우 분)은 진실을 밝히기를 거부한다. 외면한다.
그래서 도시는 어둠속에 잠겨 있다. 어둠속에는 귀신이 산다. 요괴가 산다. 악마와 괴물들이 산다. 무엇이 악마인가? 무엇이 괴물인가? 무엇이 사람을 죽이고 해치는가? 무엇이 인간을 파멸에 이르게 만드는가? 인간의 탐욕이다. 인간의 이기다. 인간 자신이다. 자본에 의해 모든 것이 계량되어지는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에 대한 인간의 추구는 병을 지배하고 그 병을 이용하여 인간에게서 이익을 구하려 한다. 자본의 힘으로 인간을 구하고, 그리고 자본을 위해 인간을 이용한다. 그 앞에 개인이란 작은 하나의 부분일 뿐.
황선숙(조덕현 분)의 캐릭터는 그런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 할 것이다. 처음 지나가는 단역이라 생각했다. 별 비중없는 조역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평범하다. 오히려 하찮아 보일 정도로 전혀 대단할 것이 없어 보인다. 악의조차도 내비치지 않는다. 사람을 죽이고, 심지어 당사자인 이명헌에게 죽이겠다 말하는 그 순간에마저 그는 전혀 자신의 악의를 겉으로 내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글로벌 라이프의 책임자인 존슨은 냉정함 속에 차가운 탐욕과 이기를 내보이고 있었다. 모든 가치가 자본으로 계량되듯 모든 가치는 자본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황선숙에게는 그조차도 없다. 인간의 악의란 어쩌면 이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평범함 속에 자신을 감추는가. 악마란 어쩌면 그같은 인간의 평범함 속에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어떤 한국드라마에서도 이런 악역은 없었다. 바로 드라마 <더 바이러스>의 특별함일 것이다. 차라리 악의를 드러냈다면 좋았다. 노골적으로 악의를 드러내고 살기를 내보이며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면 오히려 더 마음이 놓였을 것이다. 확신조차 아니다. 일상이다. 평범함이다. 그냥 죽이는 것이다. 그냥 이용하고 그냥 함정에 빠뜨리고 그냥 죽이는 것이다. 그의 목적이 무엇인가 모른다. 그의 동기가 무엇인지도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아무렇지 않음이 더 섬뜩하게 다가온다. 문득 스치고 지나는 바람에서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을 보는 듯한 느낌일 것이다. 도시는 어둡고 사람들은 평범하다. 사람들이 허무하게 죽고 있다.
구조 자체는 사실 특별한 것이 없다. 거대다국적자본이 음모를 꾸미고, 그 음모를 밝히려다 정의로운 사람들이 하나하나 죽어나간다. 아니다. 정의롭지 않다. 기자 정우진(오용 분)은 그저 특종을 쫓으려 했을 뿐이고, 주인공 이명헌은 헤어진 옛아내를 살리고자 동분서주하고 있을 뿐이다. 특종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일도 이제는 흔하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이야기도 그다지 드물지 않다. 조금 이쪽이다. 어느새 일깨워지는 인간으로서의 양심이 그들을 죽게 만들고 그들을 함정에 빠지게 만든다. 사실 인간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없는지 모른다. 영웅이란 어쩌면 그리 대단한 사람들이 아닌지 모른다.
많은 것들이 밝혀지고 있다. 사실 경악스러울 것도 없다.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현실과 맞서싸워야 하는 등장인물들의 처지는 절망스럽기 이를데 없다. 당장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저들은 너무 크고 너무 강하다. 항상 주인공들은 작고 약하다. 그럼에도 드라마라는 것을 믿고 그들을 지켜보게 된다. 비극으로 끝내기에는 너무 커졌다.
어쩌면 경고인지도 모르겠다. 악마를 이용하고자 지옥으로부터 불러들이지만 결국 불러낸 자신조차 악마의 제물이 되고 말 뿐이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병이지만 그것을 이용해 이익을 얻으려 한다. 병이 가까운 사람들의 목숨마저 노리고 만다. 하지만 이명헌의 전처도 그렇게 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무심하고 무정한가. 세상은 이리도 공평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암울하다. 그리고 건조하다. 오로지 한 가지의 감정과 한 가지의 욕망만이 존재할 뿐이다. 분노와 그리고 탐욕. 웃음조차 없다. 잠시 마음을 쉴 수 있는 따뜻함이나 정겨움 또한 보이지 않는다. 세상은 부조리하고 그에 분노하여 맞서 싸우려 한다. 무겁다. 빨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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