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다는 것은 두려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두려움을 아직 모르거나, 아니면 두려움을 극복했거나. 그래서 무모하다. 무모할 정도로 올곧게 솔직하다. 흰 것은 희고 검은 것은 검다. 속이거나 타협하지 않는다. 아직 세상을 모르는 아이들이 천진하고 솔직하다는 이유일 것이다.
오만하다는 것도 역시 두려운 것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두려움을 모른다기보다 두려움이라는 감정마저 오만하게 굽어보려 한다. 자신이 두려워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자기에 대한 확신인 동시에 대상에 대한 경멸이며 무시인 것이다. 그래서 당당하다. 무엇도 자신을 막아서거나 방해할 수 없다. 자신만이 옳고 자신만이 강하며 세상에서 오로지 자신만이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누구도 자신의 적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난다. 순수한 열정과 오만한 지성이 본능에 의해 서로에게 이끌리게 된다. 알면서도 끝내 자신을 속일 수 없는 순수가 알면서도 그것을 무시하고 마는 오만이 그렇게 서로 닮아 있다. 세상에 오로지 자기만이 존재하는 듯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오만이 자기에게 솔직해지려는 순수와 닮아 있다. 풀이하자면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아니 자신과 닮은 또 한 사람이 있으니 오로지 세상에 둘만 존재한다 할 것이다. 태초의 아담과 이브에게는 선택의 여지란 없었다. 본능이란 곧 숙명이고 운명이었다.
그래도 정치물 좀 먹었다. 심지어 한 당의 대표이기도 하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머리로는 안다.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분노한다. 분노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 만다. 지나고 나면 후회한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더구나 그렇게 되면 자신과 자신이 속한 당에 손해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정치인으로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많은 것들이 채 시도도 해보기 전에 좌절될 수 있다. 정치란 기술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자기편을 확보해서 그것으로 세력을 만들고 힘을 키워 자신의 의지를 현실에 관철하는 기술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옳지 않은 것을 두고 참아야 하겠는가.
역시 정치에 대해 너무나 잘 안다. 너무나 잘 알기에 그것이 우습고 한심하기만 하다. 그 안에 섞이기 싫다. 그렇다고 자기 혼자서 무언가를 바꾸기에는 너무나 무력하다는 것도 안다. 사실 김수영(신하균 분)의 냉소는 그같은 체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애써 거만한 냉소로써 자신을 가린다. 당연히 끓어오르는 것이 있다. 이대로 물러나는 것은 결국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다. 현실 앞에 굴복하고 마는 것이다. 저리도 하찮은 인간들인데 저들이 아닌 자신이 물러나야 한다. 어쩌면 무모할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부딪히려 하는 노민영(이민정 분)의 순수야 말로 김수영 자신과 닮았다.
하필 두 사람이 서로 이어지게 되는 계기가 육체라는 것은 그래서 매우 얄궂다. 육체란 본능이다. 육체야 말로 원초의 순수일 것이다. 식욕과 성욕이야 말로 인간이 갖는 모든 욕망의 원천일 것이다.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것 역시 인간의 이성이 갖는 본질일 것이다. 당연하게 먹고 당연하게 이성을 갈구하는 것처럼 인간은 당연하게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려 한다. 아이들은 그렇게 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것이 힘들다. 두려운 것이 생기고 꺼리는 것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 보이는 노민영처럼, 먹고 싶은 것은 솔직하게 먹고 싶다, 먹기 싫으면 솔직하게 먹기 싫다, 당당하게 김수영에게 말하는 그녀 자신처럼. 과연 우리 자신이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의도된 장치일 것이다. 아니 사실 두 사람의 첫만남은 보다 오래다. 지역구가 바로 이웃해 있다. 선거운동기간동안 서로에 대해 인상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 결정적으로 의미있는 관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소화기에서 비롯된 육체적 충돌이었다. 원시의 폭력과 벌거벗은 남자의 상체, 그리고 일깨워지는 본능의 충동. 그러나 그 이면에 흐르는 것은 첨예한 이성에 의한 현실에 대한 판단과 분노였을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정치인이 되고자 마음먹게 만든 그것. 그러나 이루지 못한 바로 그것일 터였다.
그래서 사랑을 한다. 본능에 이끌리고 이성에 이끌린다. 본능처럼 더욱 강렬히 그들의 이성은 - 도덕과 정의에 대한 판단은 서로에게 이끌릴 수밖에 없다. 안희선(한채아 분)이 아무리 매달려도 김수영이 그에 응해주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성이 발달한 엘리트이기에, 더구나 오만하기까지 하기에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무엇이 김수영에게는 필요했다. 노민영에게는 있고 안희선에게는 없는 것이다.
흥미롭다. 노민영으로 하여금 정치에 입문하도록 만든 계기인 유력한 대선후보이던 친언니 노민화의 죽음과 대한국당의 대표 고대룡(천호진 분)과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 죽은 노민화의 여동생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고대룡은 긴장하여 그녀를 견제하기 시작한다. 그녀를 아예 정치판에서 내몰려 하고 있다. 노민영의 적이다. 김수영의 적일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노민영이 왜 분노했는가보다 분노했다는 사실 자체에만 집중한다. 노민영이 어떤 이유로 무엇을 위해 분노했는가 하는 것보다 분노를 표출한 행위 자체에만 집중하여 비판한다. 정치를 혐오하고 멸시한다. 그래서 무엇이 남는가. 그럼에도 여전히 두려움없이 기성정치인들에 싸움을 걸고 마는 노민영의 모습은 TV를 보고 있는 많은 대중들을 도발하려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분노가 잘못인가? 이래도 분노하는 것이 잘못인 것인가?
언론과 권력이 밀착하고, 권력과 권력이 야합한다. 그것을 대중은 욕하면서도 구경한다. 방치한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고 사랑을 나눈다. 육체이 이끌리고 본능에 이끌린다. 정치란 본능일 것일까? 정의란 인간의 본능인 것일까? 묘하게 노골적이고 선정적이다. 성욕으로 만나고 식욕으로 어울리고 그리고 이성의 분노로써 서로 교감한다. 사랑하는 이유다.
드물게 정치에 대한 묘사가 선명하다. 작가 자신의 정치적 지향 또한 명쾌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디테일이 있기에 그 자체에 매몰되지 않는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어차피 드라마는 판타지다. 사실이 아니다. 꿈속에서 인간은 자유롭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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