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굿닥터 - 영악한 선택, 시청자와 눈높이를 맞추다

까칠부 2013. 8. 20. 07:49

인간이 사후세계를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죽음 그 자체를 인지하기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닐까. 조금 전까지 멀쩡히 살아 숨쉬던 사람이 한 순간 싸늘한 시체로 바뀌고 만다. 함께 울고 웃고 떠들며 어울리던 친구 혹은 친척의 누군가가 한 순간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깃덩이가 되어 버린다. 그와 함께 했던 매 순간들에 대한 기억은 생생한데 정작 그 사람은 더 이상 세상에 없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무려 6만 년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시체를 가지런히 누이고 꽃을 뿌려 마지막 가는 길을 장식한다. 현생인류와는 다른 당시의 인류는 과연 죽은 이의 시체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물론 슬펐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도 함께 어울려 사냥을 나가거나 채집에 나서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슬픔과 상실감이 죽은 이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간절함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이미 죽은 사람이지만 그같은 자신들의 행위가 죽은 사람을 위한 의미있는 행위이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을 것이다. 시신을 가지런히 하고 무덤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이 죽은 이를 마지막으로 기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기뻐해야 할 주체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물론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개념은 아주 나중에야 생겨난 것이다. 인간이 도덕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되고,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그 이상과 당위를 사후세계에까지 미루기 시작하며 죽음 이후의 세계는 선과 악으로 나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떠올리는 사후세계란 막연한 - 선도 악도 없고, 죄도 고통도 없는, 그저 떠나보낸 이들이 마음의 짐을 덜고 위로도 받을 수 있는 그런 정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죽은 이가 사는 세상이 동경의 대상이기도 한 하늘 저 위에 있으리라는 믿음은 그래서일 것이다. 그곳에서 죽은 이들은 살았을 적처럼 자신들을 지켜보며 항상 자신들을 위하고 있을 것이다.

 

확실히 작년 시청률 이상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방영되었던 같은 의학드라마인 '골든타임'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드라마일 것이다. 두 드라마 모두 한국의 의료현실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있는 응급의학과와 소아외과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명징한 현실인식과 함께 치열하면서도 첨예한 문제의식을 전면에 내세웠던 '골든타임'과는 달리 '굿닥터'는 현실은 살짝 걸쳐만 둔 채 오로지 개인의 심성과 자질에대 해서만 천착하고 있다. 어떤 제도적 구조적 대안이 필요한가에 대한 문제제기보다는 어떤 의사가 훌륭한 의사인가에 대한 개인적 물음을 담아내고 있는 셈이다.

 

드라마로서는 당연히 후자인 '굿닥터'가 더 영리했을 것이다. 제도적인 문제는 어렵다. 구조적인 대안 역시 복잡하기만 하다. 그러나 좋은 의사가 어떤 의사인가에 대한 답은 비교적 명확하다. 더구나 '굿닥터'는 시종일관 그 눈높이를 평범한 대다수 시청자들에 맞추려 노력하고 있었다. 박시온(주원 분)이 죽은 아이의 옷을 꿰매는 장면이나, 다른 급한 환자가 있는데도 혼자서 남아 죽은 아이의 곁을 지켜주는 장면 같은 것들이 그 예일 것이다. 아무리 레지던트라지만 의사로서 환자가 있는데 이미 죽은 이의 곁을 지키겠다고 환자에게 가지 않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나마 레지던트라 다행이지 부교수쯤 되었다면 문제가 나도 크게 났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인 시청자의 입장에서 그것은 꽤나 감동적인 장면일 수 있을 것이다.

 

여러 환자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병원을 찾는 수많은 환자 가운데 고작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가 전부다. 자신이 전부다. 자신의 가족이, 친구가, 혹은 동료가 전부여야 한다. 그것이 대부분의 환자들과 환자의 보호자들이 갖는 정서일 것이다. 나만 바라봐주었으면 하고, 나만 더 집중해서 보아주었으면 싶고, 내 가족이기에 더 신경써서 살펴주었으면 바라게 된다. 여럿 가운데 하나가 아닌 오직 하나이면서 전부인 자신만을 위해주는 의사와 병원을 바라는 것이다. 박시온이 그 역할을 해 준다. 맹목적이고 유아적인 행동이 마치 순수처럼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저렇게까지 해주는 의사가 있다면.

 

그러나 한 편으로 환자들이 의지하는 것은 냉정하게 자신의 상태를 살피고 그것을 치료해 줄 수 있는 김도한(주상욱 분)과 같은 의사일 것이다. 김도한이 차갑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누구보다 뜨거운 열기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장인 고충만(조희봉 분) 앞에서 그는 자신의 혐오와 경멸을 굳이 감추려 들지 않는다. 냉정해지지 못한다. 급한 환자가 있다는 연락에 직무정지중이고 연인과의 여행중이었음에도 그는 바로 차를 몰고 병원으로 달려온다. 차윤서(문채원 분)더러는 그러지 말라 야단치고서는 자신이 먼저 환자의 빈소를 찾아가 조의를 표한다. 박시온에게 매몰찬 것도 그의 의사로서의 능력과 자질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일 뿐 사적인 감정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의사다. 뼛속까지 의사다.

 

균형을 맞춘다. 박시온은 대중의 정서를 위해 봉사한다. 김도한은 대중의 이성적 판단과 추구를 만족시킨다. 그 사이에 차윤서가 있다. 박시온 만큼이나 맹목적일 정도로 열정적이고 김도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충분히 냉정하게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차윤서가 김도한의 방식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다. 그녀는 자기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박시온을 판단한다. 아무래도 박시온과 김도한이라면 무게추가 너무 한쪽으로 기울게 되기에 차윤서가 박시온의 곁에서 그의 결점을 보완하며 무게중심을 맞춰준다. 김도한의 실력과 박시온의 순수 사이에서 그녀는 자신의 실력으로써 박시온의 순수를 지키겠다 다짐한다. 어느새 박시온의 곁에는 차윤서가 있다.

 

아이는 동물과 같다. 적확한 표현이다. 차윤서는 그 순간 박시온을 보고 있었다. 이성보다는 본능이 발달했다. 외우는 머리는 있는데 결국 그를 지배하는 것은 순수라 불리우는 본능과 충동이다. 어디로 튈 지 모른다. 명확한 의지나 일관된 의식 자체가 결여되어 있다. 그런 박시온이 본능만이 남은 늑대소년과 만난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박시온에게 - 혹은 성원대학병원 소아외과 전원에게 어떤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 병원에 위기가 찾아온다. 후원해주던 대기업에서 지원을 끊었다.

 

강현태(곽도원 분)의 의도가 갈수록 오리무중이다. 박시온을 주목하고 있다.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강현태가 만나는 회장의 의도 또한 아직은 알 수 없다. 최소한 대기업이 성원대학병원에 대한 후원을 중단하기로 결심한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의 인물이었을 것이다. 선악을 판단할 수 없다. 강현태 역시 마찬가지다. 환아의 보호자들을 선동하여 재단에까지 투서를 넣은 고충만의 행동에 그는 마치 이해할 수 없는 동물을 보는 듯한 미묘한 웃음을 짓는다. 이성적이다. 냉정하다. 그는 과연 무엇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을까? 이성적인 척 냉정한 척 가면을 둘러보지만 김도한은 결코 이성적일 수도 냉정항 수도 없는 의사로서의 책임과 열정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의 가면을 부숴보고 싶다. 그의 진심이 궁금해진다.

 

주상욱의 존재감이 대단하다. 주상욱과 곽도원 두 배우가 드라마를 끌어간다. 판을 만들어준다. 주인공 박시온과 차윤서를 위한 무대를 만들어준다. 현실적이고 타산적인 경영기획실장으로서 강현태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유채경 역의 김민서 또한 확고한 자기자리를 굳히고 있다. 김도한에 맹목적이면서도 그의 진심을 의심한다. 드라마 자체에 대해서도 미묘한 긴장을 부여한다. 무언가 그녀를 중심으로 사건이 일어날 것만 같다. 병원과 소아외과라는 이원적 구조가 하나로 통합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역할이 필수적일 것이다. 유채경은 재단이사장인 이여원(나영희 분)와도 대립관계에 있다.

 

드라마가 재미있다. 조금은 무리수라는 느낌도 있었다. 뜬금없는 늑대소년이라니. 늑대소년이란 관용적 표현이다. 인간으로서 길러지지 못한 동물의 야성을 먼저 배워버린 불행한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자폐아 출신의 외과의라는 것도 지나치게 새로운 설정이기는 하다. 겨우 차윤서와 박시온이 서로를 인식하려는데 너무 크게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병원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결론을 내린다. 드라마의 미덕이다. 마음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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