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굿닥터 - 동물과 아이, 늑대소녀와 박시온이 만난 이유

까칠부 2013. 8. 21. 07:23

성공적인 광고를 위한 필수요소로써 3B라는 것이 있다. 미인(Beauty)과 아이(Baby), 그리고 동물(Beast)다. 미인은 남성에게는 이성에 대한 호감을, 여성에게는 동성에 대한 동경을 일깨운다. 아이란 보호의 대상이다. 동물 역시 어지간히 사나운 맹수조차 더 이상 인간에게는 위협이 되지 못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경계심을 풀고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게 하기 위한 요소들일 것이다.

 

어째서 늑대소녀였을까? 소년이 아니었다. 소녀였다. 늑대가 아닌 개였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생각하는 것이며 행동하는 모든 것이 개의 그것을 닮아 있다. 더구나 아이다. 얼핏 혐오스럽지만 박시온에게 마음을 열고 난 모습은 귀엽기 이를 데 없다. 어른들처럼 영악한 계산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아이처럼 되바라지거나 하지도 않다. 동물이 아닌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기에 더 편하게 마음 놓고 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박시온은 늑대소녀 은옥이처럼 누군가를 사납게 물거나 하지 않는다.

 

흔히 아이는 순수할 것이라 여긴다. 동물들은 이성이 없는 대신 계산 없는 솔직함과 진실함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순수를 잃은 어른의 모습과 비교한다. 이익을 위해 사람을 속이고 이용하려 하는 인간의 모습과 대비하기도 한다. 박시온은 아이와 같다. 그리고 동물과도 같다. 아이처럼 어리고 동물처럼 본능적이다. 그래서 순수하다. 그래서 솔직하고 진실하다. 어른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준다. 그가 있는 곳은 병원이다. 병원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준다. 의사를 비춰주고, 이 사회의 의료현실을 비춰 보여준다.

 

모든 것이 모순투성이다.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일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김도한(주상욱 분)은 자신의 주위로 벽을 쌓았다. 높고 단단한 벽으로 자신을 가리고 지키려 했다.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진실한 그의 열정은 현실이라는 벽 앞에 냉정이라는 벽을 쌓도록 강요한다. 차윤서(문채원 분)의 앞날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지금이야 부교수인 김도한이 그녀를 지켜주고 있지만 과장에게까지 서슴지 않고 대드는 팰로우를 좋게 볼 병원이나 의사는 그리 많지 않다. 누구 하나 솔직해지지도 진실해질 수도 없는 현실. 그래서 박시온의 무모해 보이는 솔직함이나 진실함이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어쩌면 어른이기에, 그리고 인간이기에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잊고 있지는 않은가.

 

김도한은 어른이다.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상처도 많고 사연도 많다. 그것을 보듬고 살아가는 방법 역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자기를 속이고 주위를 속인다. 애써 감추고 외면하며 벽을 쌓아 자신을 보호한다. 차윤서에게 들려주던 쉽게 꺾이고 좌절하는 의사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차갑게 더 야멸차게 주위를 대한다. 섣부른 낙관보다 확실한 비관을 선택한다. 다만 그가 김도한인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막다른 궁지로 몰고 채찍질한다. 다른 사람에게 더욱 엄격할 수 있는 것도 그것을 통해 더욱 자신을 궁지로 몰고 채찍질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의 높은 긍지와 자부심은 다른 이들로부터 경멸받는 것은 견뎌하지 못한다.

 

순수와 계산이 뒤섞인다. 의사로서 김도한은 순수하다. 오로지 환자를 살리겠다는 의지 하나뿐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그의 행동은 그의 경험에서 우러난 보다 손쉬운 길을 선택하려는 안이함이 있다. 어렵게 소통하며 서로를 위한 최선의 길을 찾기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이 의사로서 자신이 견지해야 할 덕목이라 여긴다. 무엇이 환자를 위해 가장 가능성 높은 효율적인 판단인가. 때로는 그 같은 판단 아래 지레 포기하는 경우마저 있다. 그러나 스스로 납득하고 만다.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현실이다.

 

물론 김도한은 옳다. 아니 유채경(김민서 분)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대기업의 후원까지 받아 병원을 경영하고 운영해나가는 입장이다. 소아외과는 서원대학병원에서도 유일하게 적자를 보는 과다. 한정된 인력과 자원을 가지고 보다 많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때로 냉정을 넘어 잔인하다 할 수 있는 판단 또한 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환자를 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최선인가고 박시온은 묻는다. 아무리 가망이 없는 환자라 할지라도 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의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고. 그것이 진정 환자를 위한 일일 것이다.

 

드라마가 시청자와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는 이유일 것이다.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여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김도한이라고 하는 냉혹한 현실에, 병원을 둘러싼 의료와는 전혀 상관없는 각자의 입장과 이해들에 대해, 그러나 아이와도 같이 순수하고 동물처럼 따지거나 헤아리는 법 없이 올곧게 말하고 행동하는 박시온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묻고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한가. 그것으로 좋은가. 환자의 입장에서. 환자 가족의 입장에서. 아이와 동물, 그리고 문채원이라는 미녀배우까지 더해졌다. 차윤서는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박시온이다. 아이인 박시온에게 어머니이고 누이이며, 동물인 박시온에게 반려다. 소시지를 애인과 나눠먹으라는 환아의 말에 그것을 차윤서에게 건네는 모습에서 자신의 사냥감을 나눠주는 동물의 그것을 떠올리고 만다. 우리집 고양이 녀석들도 바퀴벌레를 잡으면 가장 먼저 내게 가져왔었다.

 

역시나 유채경이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었을 것이다. 회장(김창완 분)이 서원대학병원의 기업후원을 끊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다름아닌 유채경이었다. ‘자존심’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한다. 자부심은 현재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때로 자존심은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다. 더 높은 곳, 더 가치있는 곳, 지금이 아닌 어딘가에 그것은 있다. 김도한을 사랑하지만 김도한을 사랑하는 그녀의 방법은 김도한이 만족해하고 있는 현재로부터 그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라면 김도한의 현재를 부수는 것도 그녀는 서슴지 않는다. 김도한으로부터 입은 상처마저 그녀는 자기만의 맹목적인 사랑으로 돌려준다.

 

그러고 보면 그녀가 입은 상처란 대부분 그녀 자신으로 인한 것들이었을 것이다. 지나치게 너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김도한이 그녀의 곁에 머물지 못하는 이유다. 정작 김도한이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은 곳은 자신을 짝사랑하는 후배 차윤서 앞에서였다. 어째서 그는 가장 괴로울 때 연인인 유채경의 곁에서 그녀에게 의지하려 하지 않았는가. 사소하게 넘어가도 되었을 장면에서, 혹은 정면으로 따져묻고 진실을 들었어야 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자기만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납득해 버리고 만다. 재단이사장인 이여원(나영희 분)에 대한 증오다. 병원장인 최우석(천호진 분)에 대한 미움이다. 세상에 자신만 불쌍하다. 그런 자신을 즐긴다. 그녀는 지금 목적을 위해 다른 누군가와 손을 잡고 아버지의 병원에 위해를 가해야 하는 자신의 비극에 도취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고충만 역시 극단의 한 조각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의사로서 그는 자신에 대해 자신이 없다. 의사로서 모두로부터 인정받겠다는 포부도 야망도 이미 오래전에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의사로서의 자부심이 사라진 그에게 남은 것은 의사라고 하는 ‘지위’ 뿐이다. 다행히 친척인 전무의 힘으로 소아외과의 과장 자리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권력이란 그에게 자신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이다. 권력만이 그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준다. 그의 사주를 받는 우일규(윤박 분) 역시 마찬가지다. 꺾이다 못해 짓이겨진 꿈의 흔적을 보게 된다.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시온의 어머니를 만난다. 그러나 박시온은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한다. 또다른 비극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기억하는데 아들은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한다. 오히려 차윤서가 사진을 보고 어머니의 존재를 눈치챈 듯하다. 어머니란 그에게 잃어버린 과거다. 그리고 그가 되찾아야 할 단절된 기억이기도 하다. 토끼와 형, 그리고 원장만이 그의 어린 시간을 증명한다. 차윤서가 보호자의 위치에서 내려오게 되는 계기다. 어머니와 사랑을 나눌 수는 없다.

 

무리수이기는 했지만 상당히 괜찮게 마무리한 느낌이었다. 특히 박시온의 존재가 두드러졌다. 박시온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역시 명확했다. 김도한이 고뇌한다. 자신의 방식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신의 방식을 고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른인 까닭이다. 그 하나하나에 상처가 있고 아픔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 역시 진심이다. 박시온의 위기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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