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굿닥터 - 웃음에 가려진 강현태의 의도, 박시온 기사회생하다

까칠부 2013. 8. 27. 07:28

한국사회에서 복지란 자력구제를 원칙으로 한다. 자기가 알아서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나머지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만 국가가 개입하여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로서가 아닌, 미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최소한의 도움을 주는 공적 자선에 가까운 개념인 셈이다.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논란이 불거진 이유다.

 

성인이야 당연히 독립된 단위이자 주체로써 자기가 누려야 하고 책임져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알아서 누리고 책임진다. 그러면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미성년자나 성인이지만 이미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쇠퇴하여 주변으로 밀려난 노인들은 어찌할 것인가? 그래서 그들은 피부양자가 된다. 재가복지라는 명분 아래 모든 책임과 권한을 부양자가 있는 가정에게로 떠넘겨버리는 것이다. 가족이 구성원을 전적으로 책임지며 역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만 국가는 보조해준다. 당장의 생계가 곤란함에도 부양하능한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복지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인들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드라마에서도 묘사되고 있는 바와 같이 법적인 보호자라는 신분을 이용해 피보호자인 아동을 학대하고, 그것을 다시 법이 용인해주는 납득할 수 없는 부조리한 일들이 현실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이유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할 수 있다. 피보호자인 아동이 성폭행을 당했다. 부모를 잃고 친척에게 맡겨졌는데 그 친척들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가해자인 친척들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피보호자인 아동이 가해자인 친척들의 보호를 필요로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는데 부양자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같은 가족이 탄원을 내고 법이 받아들인 예도 있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가.

 

그러나 만일 부양자로서의 피부양자에 대한 책임과 함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그 부분을 떠안아야 한다. 국가가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아야 할 피부양자에 대해서까지 부양자로서의 책임을 떠안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바로 무상급식 논란의 쟁점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부모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 부양자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국가나 사회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적으로 부양자가 모든 책임을 진다. 국가와 사회는 그럴 능력이 되지 못하는 부양자와 그 가족에 대해서만 도움을 준다. 만일 피부양자인 아동을 하나의 단위로써 보고, 그들에게 주어지는 급식을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써 인정한다면, 그로 인한 비용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늘어나게 된다.

 

아이는 가족에게로. 아이를 학대했다. 개우리에 가두고 개와 함께 개먹이를 먹여 길렀다. 말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사람처럼 걷지도 못한다. 병이 들었는데 제대로 치료조차 받은 적이 없다. 그런데 훈방으로 끝난다. 보호자이기 때문이다. 부양자이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아동을 하나의 독립된 단위로서 간주하고 그를 국가와 사회가 공공의 영역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희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문제가 있는 부적절한 보호자라 할지라도 보호자가 있다면 아동은 그 보호 아래 맡겨져야 한다. 차윤서(문채원 분)의 말처럼 아이가 죽거나 하기 전에는 처벌도 그리고 아이를 부적절한 보호자로부터 구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국가와 사회의 책임방기라 할 수 있다. 귀찮다. 성가시다. 손도 많이 가고 돈도 많이 든다. 어쩌면 세금도 더 내야 할 지 모른다. 그러느니 그냥 전처럼 가족에게 모든 것을 내맡긴다. 부양의 책임을 지우고 인신에 대한 권리를 부여한다. 아동은 부모의 - 혹은 기타 보호자의 부속물이 되어 버린다. 경찰을 동반하고, 그 앞을 의사가 막아선다. 법을 집행해야 할 경찰은 인정과 편의를 내세우고 의사가 의사로서의 양심으로 아이를 위해 그 앞을 막아선다. 보호자의 태도는 당당하기 이를 데 없다. 아이는 그녀의 소유다. 어떻게 하든 그녀의 마음이다.

 

사실 그것은 박시온(주원 분)에 대한 병원이나 주위의 태도와도 적잖이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귀찮다. 성가시다. 비용이 많이 든다. 박시온을 한 사람의 의사로써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여러 사람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일 것이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박시온만의 말이나 행동등을 주의깊게 살펴야 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평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던 일상적인 말이나 행동들조차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더 깊이 고민하지 않으면 곤란할 수 있는 것이다.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사람더러 평범하게 말하고 행동하고 어울리는 것이 말이 되는가. 평범하지 않은 것조차 평범하게 여기려 주위가 먼저 다가가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쉽지 않다.

 

그래서 포기한다. 김도한(주상욱 분)조차도. 아니 김도한 나름의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항상 김도한이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면 김도한 역시 그렇게까지 매몰차게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도한의 동생 역시 자신이 항상 돌봐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혼자서 행동하도록 무리하게 내몰았을 것이다. 주위에서 누군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동생을 눈여겨 봐주고 도움을 주려 했더라면 그런 끔찍한 사고는 어쩌면 없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러지 않았다. 김도한이 눈을 뗀다면, 차윤서가 곁에서 보살필 수 없다면, 박시온 역시 자신의 동생과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김도한이나 차윤서 같지는 않다.

 

그러고 보면 차윤서와 박시온의 로맨스는 필연일 것이다. 박시온에게는 차윤서가 필요하다. 다른 보통의 의사들처럼 환자는 물론 보호자나 다른 관계자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어머니도 그와 평생을 같이 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도 끝내 아직 어렸던 그를 저버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에 갇혀 있는 박시온을 일깨운다. 다시 보통사람들의 세상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끈다. 형이 그랬다. 어떻게든 동네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박시온을 배려하고 있었다. 박시온에게 필요한 것은 형이다. 어머니다.

 

의사로서의 자신을 잃어간다. 재능있는 자를 질투한다. 재능없는 자신을 혐오한다. 그리고 익숙해간다. 의사로서 자신의 실력을 연마하기보다 다른 수단에 의지하려 한다. 실력은 없고 자존심만 높다. 자긍심없는 자존심은 손에 쥐어지지 않은 것들을 탐한다. 그것이 고충만(조희봉 분)이고, 우일규(윤박 분)일 것이다. 진정으로 자신을 가치있게 여기는 이는 그토록 쉽게 자기의 양심을 팔아넘기지 않는다. 의사로서 모두가 인정하는 간담췌외과의 최고전문의임에도 동기의 꾀임에 넘어가고 마는 김재준(정만식 분)의 나약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김도한과 유채경(김민서 분)의 사이에 골이 패이기 시작한다. 김도한은 소아외과 전문의로서의 자신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유채경은 재단이사장이었던 아버지의 딸로써 그에 어울리는 자신의 자리가 - 또한 파트너로서 김도한의 자리가 있다고 여긴다. 그것이 그녀의 자존심이다. 김도한은 소아외과 전문의로서의 자신을 넘어서야 한다. 김도한에게 자신을 넘어서는 것은 소아외과 전문의로서 보다 더 완벽해지는 것이다. 유채경의 욕망을 따라갈 수 없다. 김도한의 고민을 이해할 수 없다.

 

확실히 속을 알 수 없는 남자다. 은옥이 보호병실에서 탈출한 책임을 물어 박시온을 쫓아내고 병원장인 최우석(천호진 분)마저 몰아내려 한다. 강현태(곽도원 분)의 의도 또한 겉으로는 최우석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일규가 은옥이 탈출하는 빌미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강현태는 바로 우일규를 불러 그 여부를 묻더니 병원장 최우석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고 있었다. 물론 비밀리에. 은밀히. 소아용 로봇암의 도입을 미끼로 김도한을 불러들여 역시 은밀한 자신의 의도를 전한다. 책략가다. 자기는 물론 누구도 속이지 않고 의도한 대로 움직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책략가일 것이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의미모를 웃음 뒤에는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도사리고 있을까.

 

힌트가 주어졌다. 박시온이 마치 아이와도 같은 행동을 보이는 것은 형과의 행복했던 시절에 기억을 멈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박시온은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그 시간 속에 머물고 있었다. 멈췄던 그의 시간이 다시 원래대로 흐르기 시작하면 박시온 역시 어른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누군가를 욕망하며, 그 누군가와 영원히 함께 하고자 한다. 새로운 꿈이 생긴다. 새로운 바람이 생긴다. 해피엔드일까?

 

드라마의 중심은 둘이다. 거짓없는 순수의 박시온과 그 끝을 알 수 없는 강현태의 의도. 그 사이에서 유채경과 김도한이 제각각의 춤을 춘다. 차윤서와 고충만이 나름의 꿈을 꾼다. 환자보다는 사람이고, 진료보다는 사람의 관계다. 드라마에 충실한다. 그래서 흥미진진하다. 그들은 어떻게 될까? 병이란 결국 남의 이야기다. 사랑하고 질투하고 갈등하며 어우러진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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