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나 소설에서 먼치킨적인 주인공을 흔히 보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작가의 아바타가 된다. 작가가 아는 것은 주인공도 안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것은 주인공이 할 수 있다. 그야마로 전지전능, 작가가 필요로 할 때 필요한 지식과 능력과 정보를 갖추고 작가의 의도에 충실히 봉사하게 된다. 작가가 원하는 모든 것이 주인공을 통해 작품 안에서 이루어진다.
사실은 귀찮음이다.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정교한 장치가 필요하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어색함없이 합이 맞게 된다. 하지만 외적 여건의 문제이든, 아니면 내적 역량의 문제이든, 그같은 노력 자체가 부담스럽게 여겨질 때가 있다. 그래서 쉽게 가려 한다. 더 적은 시간과 비용과 노력으로 목표한 지점에 이르고자 한다. 가장 손쉬운 선택일 것이다. 모든 지식과 능력과 정보를 가지고 있어 주인공만 따라가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고 만다.
이번주 종영한 MBC의 드라마 '투윅스'가 중반 이후 급격히 집중력을 잃어간 이유일 것이다. 아슬아슬했다. 항상 필사적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드라마가 장태산(이준기 분)의 손바닥 위에 놓이게 되었다. 모든 것을 안다. 꿰뚫어본다. 장태산이 의도한대로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검찰과 경찰마저 장기판의 말처럼 마음대로 움직이는 장태산의 계획에 교활하기 이를 데 없는 문일국(조민기 분)이나 용의주도한 조서희(김혜옥 분)와 같은 거물들마저 여지없이 농락당하고 만다. 작은 힌트라도 보면 바로 필요한 정보가 떠오르고, 그 정보에 바탕을 둔 치밀한 계획이 세워지게 된다. 실패는 없다. 그토록 집요하게 조서희와 문일국을 쫓던 검사 박재경(김소연 분)마저 오로지 장태산의 입만을 바라보고 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부모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딸을 위해서라면 아버지는 슈퍼맨도 될 수 있다. 문일국이라고 하는 암흑가의 거물을 상대로,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조서희라고 하는 거물까지 상대해가며 자신은 물론 딸의 목숨까지 구하려 한다. 경찰과 검찰의 추격을 뿌리치고 문일석이 세운 계획을 뒤집기 위해서는 그만한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초반 장태산은 영화에서 본 기억을 더듬어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아슬아슬한 장면을 곧잘 보이고 있었다. 상당히 기발한데 어딘가 허술하다. 쉽지 않은 이유였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놀라운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장태산의 어눌함과 허술함과 어우러지지 않으면 안된다. 차라리 전문가라면 쉽다. 장태산이 아닌 김선생(송재림 분)이었다면 보다 수월하게 이야기를 끌고갈 수 있었을 것이다. 외인부대 출신의 전문가다. 전문가 다운 스킬로 경찰과 검찰을 농락하고 오히려 문일석을 위협한다. 그런데 그것이 평생을 무기력하게 살아온 장태산을 통해 보여지지 않으면 안된다. 처음에는 그것도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수 있었지만 일정 시점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그것이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시간과 일정에 쫓긴다. 여건과 타협할 수밖에 없다. 보다 수월한 방향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일 것이다.
액션이 줄어든다. 정교한 설계가 사라진다. 인물들끼리 서로 마주하고 대화로써 풀어가는 장면이 더 많아진다. 시간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다. 인력과 예산도 한정되어 있다. 작가 자신도 더 이상 여유가 없다. 작가의 의도가 장태산에게로 깃든다. 작가가 원하는대로 장태산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결론에 이르는 최단거리를 찾는다. 가장 적은 노력과 비용으로 이를 수 있는 결론일 것이다. 원래의 의도는 희석되어 사라진다.
밸런스가 무너졌다. 오로지 장태산의, 장태산에 의한, 장태산을 위한 드라마였다. 장태산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단지 수단에 불과했다. 작가를 대신한 장태산의 의도를 쫓아 분주하게 뛰어다닌다. 대단한 비밀처럼 이야기되던 문일석의 경찰내 정보원 역시 쉽게 사실을 털어놓고 주인공들에 - 정확히 박재경과 수사팀에 협력하려 하고 있었다. 파멸은 결정되었다. 작가가 원하고 그래서 과정들을 설계해 놓았다. 작가의 의도가 드라마를 결정지었다. 긴장이 풀어지는 이유다. 작가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 작가가 바라는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장태산이 그것을 이룰 것이다. 기대도 아닌 확신이다. 과정은 자연스레 생략된다. 결과만 안다.
쉽지 않은 드라마였다. 문일석이 동원한 외인부대 출신의 전문가 김선생은 드라마의 의도와 관계된 설정이었다. 아마추어다. 비전문가 정도가 아닌 문일석의 말 그대로 그동안 아무것도 않던 무기력한 군상 그 자체였다. 그런 장태산이 김선생의 추격을 뿌리친다. 경찰과 검찰을 농락한다. 여전히 장태산인 채로, 시간과 비용과 노력이 무한정 주어진 것도 아니다. 그렇더라도 가장 재미있었을 요소를 스스로 포기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주어진 여건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장태산에 의해 문일석과 조서희가 당하는 장면이 자못 통쾌하기도 했다. 꿈틀하던 지렁이가 살모사를 물어버렸다.
엔딩이 인상적이었다. 결론에 이르기까지는 쉬웠지만 결론 그 자체는 결코 쉽지 않았다. 8년이라고 하는 시간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죄책감과 후회와 아쉬움과 미련의 감정들이. 잃어버린 시간들을 찾으려 한다. 그런 그들을 임승우(류수영 분)는 지켜보려 한다. 임승우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 모두는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행복해지기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들은 길을 떠난다. 여행을 떠난다. 마지막 떠나는 장태산은 조일국과 조서희를 몰락시킨 괴물이 아닌 평범한 장태산 그대로였다.
흥미로운 소재였다. 무기력한 삶을 이어가던 평범 이하의 한 남자가 어느날 아버지가 되더니 딸을 위해 모두로부터 쫓기는 절박한 처지로 내몰리고 만다. 포기조차 용납되지 않는 필사의 도주다. 진실을 밝히고 악을 응징해야 한다.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리고 딸을 살려야 한다. 딸을 위해 남자는 슈퍼맨이 된다. 영웅이 된다. 균형을 잃은 것은 안타깝다. 재미있었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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