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총리와 나 - 전형과 답습, 가볍게 즐기며 보는 로맨틱코미디

까칠부 2013. 12. 11. 05:05

박을 자르지 않고 꼭지쯤에 동그랗게 구멍을 내어 속을 파낸 것을 뒤웅박이라 부른다. 대개 벽에 걸어두고 일상의 허드렛 물건을 담아 썼는데, 쌀이나 돈을 담아도 되었고, 혹은 여물을 담아도 되었다. 필요하다면 거름을 담아 나르는데도 쓸 수 있었다. 그래서 뒤웅박팔자라 하는 것이다. 존재 자체로써 정의되지 않고, 타인의 행위에 종속되어 존재하는 타율적 대상으로써.

 

한국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행정과 외교, 국방의 모든 권한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국가의 대부분의 중요한 사안들이 바로 대통령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대통령 아래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어 대통령이 추구하는 정책을 실제 연구하고 구체화하여 실행에 옮기는 각부와 각부의 수장들이 있다. 이들은 각자의 업무에 따른 고유성과 전문성을 보장받는다. 그렇다면 과연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국무총리가 하는 일이란 무엇일까?

 

대통령을 보좌하여 행정각부를 통괄하며 대통령 유고시 대통령의 임무를 대신한다. 물론 이 밖에도 다양한 권한과 책임들이 헌법에 의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결국 국무총리의 역할이란 대통령의 보좌, 더구나 국무총리에 대한 모든 임명과 해임의 권한 역시 대통령에게 귀속되어 있기에 대통령을 거스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책임총리제를 추구하여 권한을 대폭 위임한다면 대통령의 국정파트너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대통령이 단지 자신의 방침과 지시를 대외적으로 전달하는 창구로서만 쓰려 한다면 고작 그런 정도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심지어 대통령과 정부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인사를 전면에 내세우려 국무총리를 세우는 경우마저 있었다. 드라마에서 강민호(윤시윤 분)가 말하는 '얼굴마담'이 그것이다.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으니 실권도 없을 것이고, 외부에서 영입해 왔으니 실무에 대해서도 파악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의지가 있지 않은 한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대통령에 달렸다.

 

드라마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일 것이다. 일본드라마 '체인지'가 원작이라고 한다. 이해가 되었다. 일본은 천황이라 불리우는 국왕 아래 총리대신이 있다. 다른 많은 입헌군주제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천황 역시 단지 상징적인 존재일 뿐 어떠한 실무적인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결국 국정의 전반을 총괄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각의 수장인 총리대신에게 그 역할이 주어지게 된다. 다시 말히 일본에서 총리의 자리에 오른다고 하는 것은 일본의 대내외적인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직접 판단하고 결정하여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일본사회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가 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 총리가 되는가 하는 것은 따라서 일본인들에게도 중대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국무총리의 위치도 그러한가?

 

지금 국무총리로 있는 이가 누구인지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마저 현실에서는 적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어떻게 국무총리까지 되었는지, 아니 국무총리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자리인지. 그래서 사실상 국무총리의 임명이란 현실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의 문제였다.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의 의지와 그와 경쟁하는 야당의 의도, 그리고 그 사이에서 투표권을 가지고 저울질하는 유권자의 이해가 맞물리며 국무총리의 자리가 결정된다. 그리고 가끔 대통령을 대신하거나, 혹은 의전상 대통령에 못미치는 자리에서 국무총리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얼굴을 내비친다. 그것 말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국무총리의 존재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국무총리 내정자가 말하는 국민이란 그런 점에서 얼마나 공허한 말인가. 권율(이범수 분)이 국무총리가 되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게 되든 결국 국무총리의 생사여탈은 오로지 임면권자인 대통령의 의사에 달려있는 것이다. 권율이 국무총리가 되어 하게 될 일들 역시 대통령의 의중에 달려 있다. 차라리 국무총리가 아닌 대통령이었으면 그래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런 배경에 대한 어색함이나 모순을 제한다면 드라마는 꽤나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을 밟고 있을 것이다. 정석적이다 못해 답습 수준이다. 설마 할 정도로 너무나 모범답안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니겠거니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그 길로만 충실하게 나아간다. 클리셰일 것이다. 하나의 유형을 이룬다. 안심해도 좋다. 절대 시청자를 배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남은 것은 디테일과 시청자와 만나는 캐릭터의 완성도 뿐이다. 얼마나 시청자를 매혹할 수 있을 것인가. 사소한 부분은 잊고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생각이 많으면 요소요소 작가의 의도가 드러나는 대사들이 진부할 수 있다. 너무 노골적이다. 그런 만큼 또한 익숙하다. 그것이 드라마가 갖는 허구의 허술함을 대신해준다. 원래 그런 드라마다.

 

서로 사랑해서 연인도 되고 결혼도 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에는 결혼, 혹은 연인이 먼저인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서로 부부가 되어 함께 살면서 사랑도 하게 되고, 연인이 되어 만나고 사귀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도 일깨우고. 우연이 그렇게 만든다. 상황이 그런 역설과 모순을 만들어낸다. 로맨스의 전제를 뒤집는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정상적으로는 절대 함께하는 일이 없을 것 같던 두 사람이. 부부가 되고 연인이 되어서도 그들은 여전히 서로가 멀기만 하다. 그러나 부부라는, 연인이라는 관계가 그들을 강제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서로 싸우고 헤어지면 그 뿐이건만. 그렇게 헤어지고 다시 보지 않으면 그렇게 영영 타인이 되고 만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다. 가족과 혹은 주위나 세상의 눈과, 어쩔 수 없는 입장이나 사정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권율이 아닌 남다정(윤아 분)이 결혼하자고 매달리게 된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일본드라마의 원작과는 달리 현실의 문제보다는 로맨스에 더 치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라이벌도 전형적인 악역으로 설정했다. 현실의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 단지 개인의 비열하고 유치한 악의가 국무총리가 된 권율의 앞에 놓이게 되었다. 어차피 대통령과 싸울 일이란 없다. 국무총리로써 권율이 맞서싸워야만 하는 거악이란 지금으로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소소한 평범하면서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상적인 내용들만이 사소하게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루어질 것이다. 일본의 총리와 한국의 국무총리란 그렇게 서로 다르다. 국무총리의 자리를 걸고 대한민국을 바꾸려 해봐야 허무할 뿐이다. 아니면 판타지가 되거나.

 

어색한 부분이 있다. 감각에 치중하다 보니 허술하게 지나치는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과장되지만 흥미로운 설정과 전형적이지만 그만큼 보편적인 캐릭터가 마음놓고 지켜보게 해준다. 이범수의 안정된 연기와 약간은 불안하지만 통통 튀는 윤아의 매력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가볍게 보기에 좋다. 유쾌한 코미디 드라마다. 더 많은 것을 욕심내려다가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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