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필자의 18살 무렵을 떠올려 보았다. 마치 꿈과 같다. 한바탕 꿈처럼 그냥 그렇게 스치고 지나간다. 그리 뜨겁고 그리 아프고 그리 간절하던 시절이었건만 지나고 보니 그저 짧은 꿈마냥 아련하기만 하다. 그런 시절도 있었구나. 어쩌면 남의 이야기처럼.
어쩌면 드라마는 김탄(이민호 분)과 차은상(박신혜 분) 두 주인공의 오랜 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김탄이 상상한 10년뒤 자신들의 모습이 지금을 꿈꾸고 있는 자신들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랬었노라고. 그런 일들도 있었노라고. 상처마저 어느새 새살이 돋아 그저 흐릿한 흔적만이 남아 있다. 아픔조차 먼 이야기처럼 기억을 더듬어 떠올린다. 자기의 이야기인데 어느새 전혀 다른 사람의 이야기마냥 낯설기조차 하다.
질풍노도의 시기다. 누구보다 간절하게 사랑도 하고, 그래서 상처도 받고, 아픔에 괴로워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상처주기도 한다. 어째서 그랬는가도 알지 못한다. 왜 그랬는지도 모르게 어느새 몸은 마음과 머리를 앞서고 있다. 마음이 아직 여물지 않은 머리보다 앞서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꿈처럼 여겨지는지도 모르겠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어린 자신을 가지고 그래도 필사적으로 부딪히고 있었다. 언젠가는 현실에서 살게 되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꿈을 꾸어도 좋은 시기다. 그런 시절의 이야기다.
어른은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보다 이미 지나온 시간들이 더 길다.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가기보다 지나온 시간들을 정리해야 하는 때가 온다. 지금은 내일을 살아갈 이들의 것이다. 강물이 뒷강물에 밀려 바다로 향하듯 내일을 살게 될 그들이 오늘의 주인이 될 것이다. 혼자 남아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외롭게 남아 혼자서 쓰러지고 있었다. 시간이 그러하듯 자신만 남기고 모두가 떠나가 버렸다. 뒤를 돌아보게 된다. 아들들은 어느새 부쩍 자라 어른이 되어 있었다. 자신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
어른이 되어 지켜야 할 것들이 생겼다. 어쩌면 김원(최진혁 분) 역시 그동안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싸워야 할 상대가 있었다. 딛고 올라서야 할 대상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토록 증오하고 원망하던 아버지의 그림자가 그만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막막한 세상과 마주하게 되었다.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버리고 갈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그것은 김원에게 욕망인 동시에 의무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바라던 것이었다. 자신을 대신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받아 자신이 지키던 것들을 지킨다. 그는 아들이었다. 그는 마침내 선택을 하게 된다. 자신이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그것이 그가 짊어져야 할 왕관의 무게였다. 가장 소중했던 인생의 한 부분이 그렇게 저물어간다.
김원이 마침내 김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이유였을 것이다. 장남이었다. 아버지의 대신이었다. 아버지가 가장으로 있을 때는 김탄은 단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지 모르는 경쟁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물러나고 자신이 가장이 되었을 때 아버지 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탄 역시 그가 보호해야 할 가족이 되어 버렸다. 김탄이 가장인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는 이상 김탄은 자신의 품안에 있는 단지 가족일 뿐이었다. 제국그룹을 지켜야만 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족이 될 뻔한 사랑을 떠나보낸다. 울고 있을 때만 김원은 다시 김원으로 돌아간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때로 참으로 잔인하다.
김원이 포기한 사랑을 지키는 역할은 김탄이 맡는다. 김원이 장남으로서 자신의 의무로부터 도망치려 했다면 김원의 역할을 김탄이 대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김원이 아닌 김탄 자신이 제국그룹을 지켜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을 때 김탄 역시 김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제국그룹을 지키기 위해 멀리 해외를 떠돌았고, 아직은 어색하기만 한 최영도(김우빈 분)까지 찾아가 도움을 부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 이상을 희생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한 걸음 뒤에서 보다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김원이 놓아버려야 했던 그것을 김탄은 지킬 수 있었다. 차은상과 마주한 김탄의 표정에서 피로와 긴장이 보인다. 하지만 아직은 어린 18살의 고등학생이다.
아버지가 자리를 비웠으니 이제는 최영도가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법률적인 문제는 아버지가 선임한 변호인단이 전담하게 된다. 회사의 경영은 아버지가 신임하던 부사장이 대신하게 된다. 비로소 자신이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괜히 센 척 잘난 척 어른의 흉내를 내 보지만 그래봐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에 불과하다. 어른이 되기로 한다. 다행히 최영도의 아버지 최동욱(최진호 분)은 아직 노인이 되어 뒤로 물러나기에는 한참 젊다. 최영도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설거지하다 다친 손가락의 상처처럼 그렇게 그는 어른이 되어간다. 그토록 소중하게 간직하던 차은상의 반창고로 손가락의 상처를 감싼다.
어렸을 적 집을 나간 어머니를 만난다. 그동안 등을 돌리고 지냈던 김탄에게도 사과를 한다. 자신이 따돌리고 괴롭혔던 문준영을 찾아가서도 사과를 한다. 어느새 유라헬(김지원 분) 역시 어머니 이에스더(윤손하 분)와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보살펴야만 하는 어리기만 한 딸이 아니다. 어느새 같은 아픔을 간직한 여성이 되어 있었다. 이효신(강하늘 분)은 부모로부터 떠나 군대로 향한다. 사실상의 가출이다. 찾을수는 있지만 찾아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차은상만 아직 아이인 채로 남아 있다. 역시 김탄이라고 하는 든든한 그늘이 그녀를 마음놓게 하는 것일까?
급하게 흐르던 드라마가 어느새 바다를 만난 강처럼 잔잔하게 흐르기 시작한다. 강물과 바닷물이 뒤섞인다. 기억과 현실이 서로 녹아든다. 그런 것이 청춘이라는 듯. 작가 자신의 회상인 양. 그리고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지금의 격정마저 오랜 꿈처럼 추억할 만큼 그들은 열심히 자신들의 현실을 살았다. 시간은 미래로 이어진다. 시간이 과거로 이어진다.
조금 당황스러운 엔딩이었다. 솔직히 지루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 꿈을 꾸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기라도 하듯 서툴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의도한 것이었을까? 청춘은 꿈과 같다. 그들의 기록이다. 누군가의 기억이다. 여운이 남는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613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에서 온 그대 - 외계인과 여배우, 외로운 그들을 위해 (0) | 2013.12.19 |
---|---|
상속자들 - 오래오래 행복하기 위해, 신데렐라의 이유 (0) | 2013.12.14 |
상속자들 - 오이디푸스를 위해, 소년 어른이 되다 (0) | 2013.12.12 |
총리와 나 - 전형과 답습, 가볍게 즐기며 보는 로맨틱코미디 (0) | 2013.12.11 |
상속자들 - 반역의 김탄과 차은상, 마지막 싸움을 결심하다 (0) | 2013.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