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그런 때가 있었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열리면 당연하게 공중파에서는 그것을 중계하고, 사람들은 TV앞에 모여앉아 올해의 미스코리아는 누가 될 것인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었다. 다음날이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내용과 결과가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미스코리아는 곧 연예인 데뷔를 뜻했고,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것은 대중적 인기를 얻는데 있어 하나의 브랜드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대부분 스타가 되었고 높은 인기를 누렸었다. 그야말로 미스코리아란 전국민적인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공중파에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중계가 사라져 버렸다. 사람들도 더 이상 미스코리아 선발을 두고 화제로 삼지 않게 되었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언제 열리는지, 누가 올해의 미스코리아로 선발되었는지, 그렇다면 올해의 미스코리아는 어떤 느낌인지, 연예인으로 데뷔하더라도 전처럼 대중적으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차라리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 때면 긍정적인 내용보다는 부정적인 이유에서인 경우가 더 많을 정도다. 그나마 그런 정도의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이들마저 적지 않을 정도로 이제 미스코리아란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많이 멀어져 버렸다. 아마도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저조한 반응은 그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도무지 결과에 동의할 수 없었다. 여러 이야기들이 다양한 경로로 흘러나왔다. 가장 아름다운 미인을 뽑는 대회여야 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뽑는 대회여야 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정당성을 잃어버렸다. 심사기준이나 결과에 대해 전혀 신뢰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미스코리아가 여성의 성상품화를 조장한다는 여성주의자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미스코리아 자체가 더 이상 대중들에게 매럭적인 대상이 아니게 되어 버린 것이다. 자초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미스코리아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니. 하기는 그래서 드라마의 배경도 딱 오래전 그무렵일 것이다. 그렇다고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대중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도 아니다.
드라마는 철저히 타이틀롤 이연희(오지영 역) 개인의 매력에 의지해 꾸려지고 있다. 물론 주목할만한 흥미로운 부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배경이라 할 만한 김형준(이선균 분)의 화장품 밴처기업 '비비'의 이야기가 필자의 관심을 잡아끈다. 젊은 패기만으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회사를 차렸고, 오랜 노력과 연구 끝에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독자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하고 있었다. 그러나 돈을 벌기는 커녕 빚더미에 앉은 채 투자를 받아내기 위해 오늘도 전전긍긍이다. 빚쟁이가 아예 눌러앉아 윗사람 행세를 하고 있다. 연구실에서 연구도구로 빵을 구워 아침을 준비하는 모습에서 낭만 비슷한 처절함을 느끼게 된다. 깡패 정선생(이성민 분)에게 두들겨맞고 커피자판기 앞에 모인 궁상스런 몰골이 삶의 험난함을 보여준다. 그 와중에 정선생은 '비비'의 멤버들에게 동전을 빌려 커피를 뽑아먹고 있었다.
김형준과 정선생의 갈등구도 역시 흥미를 잡아끄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김형준은 말하자면 이 사회의 엘리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당장은 빚에 쪼들리는 한심한 신세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최고라는 서울대를 나왔고 작으나마 회사까지 직접 차려 사자의 자리에 있다. 그에 비하면 정선생은 사회의 밑바닥에서도 깡패의 조직에서까지 밀려난 패배자일 뿐이다. 빚을 받아내야 하는 입장이고 물리력에 있어서도 우위에 있지만 그같은 근본의 차이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정작 빚을 갚아야 하는 입장임에도 김형준과 그의 동료들은 알게모르게 정선생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고, 정선생 역시 그런 김형준의 동료들에게 열등감어린 적의를 드러낸다. 경찰서에서 이 사회에서 그들의 입장과 위치는 더욱 단적으로 드러난다. 누구도 정선새의 말을 귀기을여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오지영 역시 인문계도 아닌 여상졸업이 최종학력으로, 성희롱이나 일삼는 백화점 엘리베이터걸의 자리마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 실직의 위기에 내몰려 있다. 대학진학만이 교육의 전부인 대한민국에서 그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실업계란 그 자체로 차별의 대상이다. 여성과 젊음, 그리고 외모만을 소모하려는 엘리베이터걸 역시 장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진급도 기대할 수 없고 언젠가는 자신의 가치가 다하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안된다. 그나마도 회사의 사정에 의해 일찌감치 회사에서 나가라 등을 떠밀린다. 그런 오지영이 서울대학력에 작지만 회사의 CEO이기도 한 김형준과 만난다. 갈등이 없을 수 없다. 그런 오지영의 편에 서게 될 것이 어쩌면 정선생일 것이다. 가난한 엘리트와 그들의 목숨줄을 쥔 소외된 이들. 미스코리아라는 화려한 제목의 이면에 세상의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결국은 패배자다. 나름대로 엘리트인 김형준도. 그의 동료들도. 깡패인 정선생도. 엘리베이터걸들 사이에서 리더역할을 하던 오지영도. 폭력에 짓눌린다. 자본에 억눌린다. 사회의 신분과 지위에 소외되고 무시된다. 엘리베이터걸들 사이에 언니라 불리며 떠받들려지는 오지영이지만 부장 앞에서 그녀는 그저그런 엘리베이터걸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오래 했어도 백화점의 사정에 의해 얼마든지 떨려나갈 수 있는 존재에 불과하다. 정선생의 폭력 앞에 감히 저항조차 못하고, 5억이라는 빚 앞에서 비굴해질 수밖에 없다. 동창이고 선후배이건만 투자를 받기 위해 얼마든지 굴종하는 모습마저 보인다.
그렇게 이리 치이고 저리 떠밀리고 그리고 마침내 막다른 골목에서 그들은 희망을 찾으려 한다. 차라리 허황되기까지 하다. 하지만 현실이 지나치면 그것은 차라리 신기루를 닮는다. 그나마라도 꿈꾸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함인 것이다. 그것을 '미스코리아'라는 제목이 모두 가려 버린다. 그만큼 '미스코리아'라는 단어가 갖는 빛이 눈부신 때문이다. 아직까지 '미스코리아'란 꿈의 다른 이름이다. 성공이란 그를 위한 나머지를 과정으로 만드는 힘을 갖는다. 그를 위한 과정이 되어 버린다. 그 모든 수모와 고난들마저도. 언젠가는 웃을 수 있으리라. 그래서 또 웃게 되기도 한다. 마치 어떤 낭만처럼. 드라마인 것일 게다.
'미스코리아'라는 제목이 함정이었다. 필요했지만 썩 설득력있는 소재는 아니었다. 이연희의 연기력에 대한 의구심도 한 몫 했다. 뜻밖에 괄목상대할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연희의 매력으로 충분했다. '미스코리아'라는 제목은 이연희를 위해 있는 것이었다. 다양한 표정을 지을 줄 알게 되었다. 표정 뒤에 다른 표정을 감출 줄 알게 되었다. 화려한 이면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이선균과 이성민의 연기력은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찌질하고 한심하다. 치졸하고 구차하다. 이미숙(마애리 분)의 존재감은 드라마의 또다른 한 축을 이룬다. 충분히 더 좋아질 수 있는 드라마다. 일단은 합격점이다. 기대하고 볼 만하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이었다. 정선생이 조직에서 쫓겨난 다음날 정선생에게 얻어맞은 '비비'의 직원들이 자판기 앞에 나란히 쪼그리고 앉는다. 궁상맞은 가운데 마지막으로 정선생이 다가와 동전을 받아 커피를 뽑더니 그 옆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동질감마저 느낀다. 분명 가해자이고 피해자인데 자판기 커피 한 잔에 쪼그리고 앉은 모습이 무척 닮아 있다. 의도한 것이었을까? 필자가 이 드라마를 봐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였다. 가치가 있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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