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감격시대 - 왕의 길과 건달의 길, 드라마가 낯설다

까칠부 2014. 3. 6. 07:14

도무지 의도를 모르겠다. 뜬금없다. 난잡하다. 도대체 신정태(김현중 분)가 황방의 방주 설두성(최일화 분)을 찾아가 부자의 연을 맺는 이유가 무엇인가? 얼핏 타당해 보인다. 먼저 설두성의 의표를 찔러 안전을 확보한 다음 서서히 힘을 길러 복수를 하겠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원래의 신정태의 캐릭터와 어울리는 행동이던가.


불의를 참지 않는다. 잘못된 것을 보면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다. 옳지 못한 것을 보면 나서서 바로잡으려 한다. 그래서 신정태는 단순한 싸움꾼에 머물지 않을 수 있었다. 짐승처럼 함부로 다루어지는 조선인들의 모습에 참지 못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순포들에게 달려들었다. 이길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서서 한 행동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겠다는 면밀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것이 잘못되었고 도저히 이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양심의 판단 아래 무작정 행동에 나선 것이었다. 조선에서도 그랬다. 김옥련(진세연 분)과 만날 약속을 하고서도 옳지 못한 모습에 그만 지나치지 못하고 말았다. 


아버지를 죽였다. 최소한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었다. 복수를 해야 한다. 그런데 복수를 하기에 앞서 아버지의 신위를 황방으로 옮기고 황방의 방주 설두성을 아버지라 부른다. 물론 다른 속내가 있을 것이다. 가야(임수향 분)가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아버지는 아들을 죽일 수 없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원수를 죽일 수 있다. 설사 그것을 설두성이 알게 되더라도 황방의 방주로서 체면때문에라도 먼저 손을 쓰지는 못할 것이다. 가야의 설명이 필요한 이유다. 그만큼 뜬금없고 당황스럽다. 언제부터 신정태는 머리를 앞세우게 된 것일까?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도꾸(엄태구 분)의 모습과 겹쳐진다. 망치(김서경 분)와의 싸움에서 밀리는 것 같자 마침 지나가던 강아지에게 주의를 도리며 망치의 방심을 노린다. 망치가 틈을 보이자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정재화(김성오 분)도 말한다. 어떤 방법을 쓰든 무조건 이기는 것, 그것이 바로 방삼통식 싸움법이다. 일개 양아치라면 가능할 것이다. 그저 싸움으로 날을 지새는 건달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정태는 방삼통의 주인 상하이매의 아들이다. 방삼통을 물려받을 새끼매다. 왕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무작정 쳐들어가 왕백산(정호빈 분)에게 얻어맞고 실려나오는 쪽이 더 나았을 뻔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노라며 일국회와 손을 잡고 황방과 대적하느니만 못하다. 아버지의 원수와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 더구나 황방은 상하이매와의 의리를 저버렸다. 아버지가 일군 방삼통까지 노리고 있다. 흔한 무협영화의 패턴이다. 섣부르게 원수를 찾아갔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은인을 만나 마침내 복수할 힘을 얻는다.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그것이 옳기 때문이다. 자신의 분노가 옳다면 비굴해서도 비열해져서도 안된다. 떳떳하고 당당해야 한다.


무엇보다 힘을 기르겠다면 얼마나 더 기르겠다는 것일까? 그래서 아직 힘이 미치지 못한다 판단하면 그때는 복수를 뒤로 미룰 것인가? 언제까지? 언제쯤 되어야 복수를 하게 될까? 지금도 황방은 강하고 앞으로도 황방은 더 강해질 것이다. 설두성을 아버지라 부를 것이면 황방과 적대관계인 일국회를 이용할 생각은 왜 못하는가? 아버지를 원수를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원수를 갚기 위한 잠깐의 굴욕을 감수하는 것이라면 일국회와 손을 잡는 것은 또 어째서 다른가? 지금의 일국회는 신정태나 방삼통 누구와도 적대하지 않고 있다.


확실히 드라마가 전혀 예정에도 없던 엉뚱한 길로 빠져드는 듯 보인다. 일국회가 잠잠하다. 그토록 극성스럽게 신정태와 다른 조선인들을 궁지로 몰아넣던 일국회의 악의가 언제부터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대신 황방이 그 역할을 맡는다. 가야가 대표하는 일국회는 방삼통에 대해서도 더이상 어떤 욕심도 내비치지 않는다. 신이치(조동혁 분)만이 신정태를 적대하고 있을 뿐, 더이상 일국회는 신정태와 방삼통 조선인들의 적이라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진짜 적은 황방이다. 황방의 방주 설두성이다.


그렇게 믿었었다. 조선을 침략하려는 청과 러시아, 열강들로부터 일본은 조선을 지켜주고 있다. 아버지가 어차피 가만히 두었어도 살 수 없었을 것이라는 가야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황방이 아버지를 죽이려 했고, 자신은 상하이매 신영출을 위해 그의 부탁대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조선도 조선인 자신의 요청에 의해 일본에 병합되었다. 조선은 어차피 망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살렸어야 했다. 살리려 노력했어야 했다. 나쁜 것은 열강이다. 나쁜 것은 조선을 속국으로 두고 욕심을 부린 중국이었다. 일본은 조선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일본인들이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고종을 황제로 올린 것은 그들이 청을 대신해 조선을 차지하려는 속셈에서였다. 신정태가 황방으로부터 독립하고, 황방의 방주 설두성에게 복수를 하고 나면 황방의 영역을 누가 차지하게 되겠는가? 어쩌면 진짜 선의에서 그리 말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황방이 상처입고 물러나면 그 자리를 일국회가 대신하게 될 것이다. 일국회에게 방삼통이란, 방삼통에게 일국회란 어떤 의미일까?


황방의 야심은 노골화되는데 일국회의 의도는 수면아래로 감춰진 채 잠잠하기만 하다. 가야와 일국회 사이의 풀지못한 과거의 관계만이 긴장을 더할 뿐이다. 가야의 적일 수 있지만 이제 신정태의 적은 아니다. 도비패는 너무 먼 이야기다. 복수가 당위성을 가지려면 과거의 악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야 한다. 복수란 악에 대한 응징이기도 한 것이다. 정재화의 캐릭터가 아니나 다를까 달라졌다. 별개의 드라마라고 봐야 한다. 아무것도 이어지지 않고 있다.


너무 성급했다. 아무말 않고 있었다면 설두성은 신정태가 자신을 적대하려 한다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신정태가 신영출의 죽음에 대해 알았고 자신에게 원수를 갚으려 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신정태의 섣부른 행동이 그가 기대려던 정재화마저 위험하게 만든다. 설두성 모르게 복수를 계획하려 했다면 혼자서만 속에 담고 그날을 기다렸어야 했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다. 치밀하지도 못하고 용감하지도 못하다. 가야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신정태란 그런 캐릭터였던가.


신정태와 정재화는 달라야 한다. 정재화는 방삼통 조선인의 현재다. 신정태는 방삼통 조선인의 꿈이며 미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이기면 좋은 것은 약자의 방식이다. 강자는 수단을 가린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방법 또한 엄격하게 고른다. 신정태의 싸움은 조선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억압되고 위축되어 있던 그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어야 한다. 왕의 아들이다. 왕이 되어야 할 이다. 신영출은 처음부터 정재화의 방식에 반대했었다. 아니 결국은 달라질까? 달라져야 한다. 그는 왕이 되어야 한다.


영상의 색감과 화질마저 달라졌다. 영화를 보는 듯하던 미려한 영상이 조악한 드라마의 그것으로 바뀌고 말았다. 한 몫 할 것이다. 장면과 장면이 이어지지 않고, 이야기와 이야기가 뚝뚝 끊긴다. 액션 역시 더욱 허술해졌다. 치밀하지도 치열하지도 그렇다고 아름답지도 않다. 제작여건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낄 있는 부분이다. 예전만큼 공을 들이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가 엉뚱한 길로 헤매려는데 완성도마저 예전에 미치지 못한다. 아쉬울 수밖에 없다.


김옥련이 가수로 데뷔하려 한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 가운데 하나다. 스타가 된 김옥련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싶다. 그저 신정태의 뒤에 머무는 작은 소녀에서 신정태마저 눈부셔할 그런 스타의 모습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김수옥은 없다. 소소(김가은 분)와 정재화가 그 역할을 나누어 맡는다.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었다. 가야와의 사이에서 김옥련은 어떤 캐릭터를 보여줄까? 진세연은 어떤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줄까?


달라진 부분들이 비로소 한 눈에 들어온다. 차근히 준비해 왔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 왔다. 초반의 기억이 아득히 멀다.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드라마가 낯설었다. 새로운 이야기와 전혀 다른 의도가 전혀 다른 드라마로 만들고 있었다. 익숙한 설정과 캐릭터가 그나마 같은 드라마구나 연속성을 부여한다. 어떤 예상못한 이야기들이 전개될지.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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