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신의 선물 - 세 죽음, 사람의 죽음이 가벼워질 때

까칠부 2014. 3. 5. 07:02

한 여자가 죽는다. 딸을 잃은 고통과 상실감을 견딜 수 없었다. 한 남자가 죽는다. 조직폭력배 두목의 아내를 잘못 건드린 댓가를 치른다. 그리고 또 한 남자가 죽는다. 법이 정한 바에 의해 사형이 집행되었다. 여자의 딸이 유괴되어 살해당한 것에 대한 분노를 달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사형수에 대한 집행을 결정한 때문이었다.


어떤 의도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작가는 철저히 사형제를 조롱하고 있다. 결국 충동이다. 아이의 죽음을 견디지 못한 애닲은 모정이든, 아내로부터 거부당한 남편의 분풀이이든, 그도 아니면 흉악한 범죄에 대한 분노와 응징이라고 하는 당위라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감정의 배설에 불과할 뿐이다. 자기를 죽이거나, 혹은 아내와 부정을 저지른 상대를 부하를 시켜 죽이거나, 흉악한 범죄자를 선별해 사형대에 세우거나.


사형제를 반대하던 한지훈(김태우 분)이 자신의 손으로 범인을 잡아 직접 죽이겠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차피 사형이란 분풀이용으로도 그다지 유용한 수단이 아닌 것이다. 자신이 볼 수 없는 곳에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 자신과 상관없는 다른 누군가의 손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그것은 과연 복수일까? 그토록 증오하던 대상이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 사형을 당해 죽고 없어진 뒤라 한다면 과연 당사자의 마음은 후련해질 수 있겠는가?


어차피 원망이란 대상이 사라진다고 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증오란 대상이 더이상 세상에 없더라도 여전히 마음에 남는 것이다. 살아서는 산 사람을 원망하고, 죽고 난 뒤에는 죽은 사랑을 증오한다. 오히려 허탈하다. 증오는 남았는데 정작 증오할 대상은 이미 세상에 없다. 원망할 대상이 이미 세사에 없는데 여전히 자신은 누군가를 원망하고 있다. 죽는 것으로 끝난다면 세상일이란 얼마나 쉽고 단순하겠는가. 하물며 그 죽음이 억울한 죽음이라면 더욱.


피해자의 절박함과는 상관없이 모두가 단지 그것을 이용하려 할 뿐이다. 누군가는 웃음거리로. 누군다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지루한 일상에 신선한 자극이 되어 줄 수도 있겠다. 방송국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경찰은 범인을 잡기 위해, 정치권은 대주의 관심과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서, 그리고 더 나아가 그것을 이용해 한 몫 잡으려는 치졸함마저 끼어들고 있다. 오로지 딸이 살아있기만을 바라는 엄마 김수현(이보영 분)의 다급한 마음에 비해 세상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여유로운가. 그런 입으로 사형제를 말하고 있다. 마치 피해자를 위하려는 듯.


물론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용서하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원망해도 좋다. 증오해도 좋다. 단지 그것을 정의로 착각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딸을 잃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어머니의 입장도 이해되고, 아내와 부정을 저지른 남자를 죽이려는 남편의 마음도 조금은 알 것 같고, 사형판결을 받았으니 사형이 집행되는 것 또한 당연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다수가 공감하는 인정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다. 정서의 영역이고 감정의 영역이다. 더구나 그 공감조차 철저히 타인의 입장에서 하는 것이다.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딸의 납치와 죽음을 둘러싸고 기막힌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었는가? 단순히 딸이 납치되어 살해당한 흉악한 범죄에서 그 이면에 숨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낱낱이 파헤쳐진다. 자신의 증언으로 인해 형이 사형대에 올랐다. 형을 사형수로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어머니를 외면하고 자신의 삶마저 함부로 내던지도록 만들었다. 자신이 보았고 증언했던 그 장면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한다. 아예 생각조차 않고 있었고, 그럴 엄두마저 내지 못하고 있었다. 신의 선물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깨닫게 할까.


거리유지가 중요할 것이다. 너무 깊이들어가서도 안되고, 너무 겉돌아서도 안된다. 감정을 외면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감정에 너무 매몰되어서도 안된다. 스스로 이성적이라 믿는 순간 그것은 자칫 신앙이 되어 버린다. 냉정한 자신에 도취되다가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말기도 한다. 감정은 이미 넘쳐난다. 적절히 다듬어내지 못한다면 신파로 흐르고 말 뿐이다. 열연중인 배우들에 무척 실례되는 상황인 것이다. 배우들이 드라마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다지 치밀하다거나 정교한 느낌은 없다. 상당히 투박하다. 거칠게 뚝뚝 끊기고 있다. 그러나 장면장면이 시청자에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의도가 너무 선명해서 때로 거슬리기조차 하다. 이제 2회인데 예고편도 없다. 무척 급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아쉬운 점일 것이다. 만듦새가 그리 좋다고 하기 힘들다. 아이디어와 의도와 배우의 연기가 살린다.


어쩌면 정답이란 때로 너무 쉽고 때로 너무 어렵다. 너무 쉬워서 답이 아닌 것 같고, 너무 어려워서 또한 답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쉬운 건 너무 당연해서이고, 어려운 것은 그만큼 고차원적인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때문일 것이다. 쉽지 않은 길을 가려 한다. 현실을 거스른다. 무엇을 보여주려 함인가. 아직은 명확한 그림이 잡히지 않는다. 기대하며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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