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상상을 해보고는 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게임에서처럼 시간을 저장하여 필요한 때 다시 과거로 돌아가 새로 시작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후회는 시간의 흔적이다. 미련은 시간이 남긴 올가미다.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지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시간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과연 다시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얼마나 대단하게 있을까? 게임에서도 다양한 변수들로 인해 오히려 처음 플레이할 때보다 더 안좋은 상황에 빠지고 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나마 게임은 플레이어 자신이 게임안에서의 다양한 요소들을 직간접적으로 개입하여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어떤가? 당장 딸아이를 어떻게든 연쇄살인범으로부터 구해야 할 텐데 주위의 누구도 김수현(이보영 분)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아마 깨닫게 될 것이다. 시간을 되돌렸으니 아무래도 미래에서 온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일상에서 개인이 인지하는 범위는 개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좁다. 더구나 대부분의 기억은 미처 기억되기도 전에 선별되어 망각으로 버려진다. 개인의 인지 밖에서 일어나는 일의 경우 시간을 거스르든 원래의 시간을 살아가든 차이가 없다고 보면 된다. 다시 시간을 되돌리더라도 결국 겪게 되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아직 낯선 미지의 영역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히려 알고 있다고 여기는 오해와 착각이 올바른 인식과 판단을 방해할 수도 있다. 알고 있지만 그러나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작년 방영한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조건이 같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에 그를 통해 남들은 알지 못하는 진실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미 지나쳐 온 과거이기에 다시 시간을 거슬렀다면 같은 시간대의 누구보다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이란 미지다. 사건이 끝나기까지 누구도 그 결말에 대해 알지 못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모두 읽었지만 그것이 진실의 전부는 아니다. 이미 겪었던 과거의 사건들이지만 정작 자신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전혀 새로운 사실과 진실들이 밝혀진다. 쉽지 않다. 유치해지거나 아니면 방향을 읽고 헤매기 쉽다.
시간을 거스른 시점의 묘사가 좋다. 답답하다. 지켜보는 시청자마저 숨이 막혀 온다. 왜 믿어주지 않는가? 왜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려 하지 않는가? 딸아이를 살려야 하는데. 이번에는 어떻게든 죽지 않도록 지켜주어야 하는데. 김수현이 아는 미래와 주위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재가 서로 엇갈린다. 당연하지 않은가. 누군가 자기가 미래에서 왔다며 주위에서 떠들고 다닌다면 그에 대해 진지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드라마에서처럼 어이없어 하거나, 비웃거나, 화를 내거나, 마찬가지로 답답해 할 것이다. 미치거나 미쳐가는 도중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오만해진다. 기동찬(조승우 분)만이 아니다. 딸 샛별(김유빈 분)을 살려야 한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샛별은 죽게 될 것이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주위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그 당연한 사실을 전혀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화가 나려 한다. 자신이 직접 나선다. 자신이 알고 있는 과거의 사실들을 근거로 범인을 잡아 미래를 바꾸려 한다. 오갈데없는 처지라 여겼던 추병우(신구 분)가 사실은 대기업 명예회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태도를 달리하는 기동찬처럼. 그래서 더 확실해진다. 어쩌면 추병우가 바라는 기동찬의 모습이란, 그리고 기동찬에게 주고자 했던 보상이란 기동찬이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범인을 찾으려는 김수현의 노력은 허무할 정도로 그 결과가 없다. 조금은 겸손해지게 될까?
이를테면 답안지를 검산하는 과정일 것이다. 아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을 했을 것이다. 이미 알고 있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다시 거꾸로 풀어가는 과정에서 그것이 너무나 터무니없었음을 깨닫게 된다. 미처 알지 못했던 수많은 오류들과, 그리고 예상할 수 없었던 그만큼의 우연들이 단지 자신이 알고 있는 답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알고 있지만 전혀 알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이미 결과를 알고 있기에 상황을 주도할 수 있다. 주연들이 좋다. 이보영과 조승우. 하나같이 그 무게와 난해함을 감당할 수 있는 베테랑들이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모르기 위한 단계다. 그래서 어수선하다.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 부딪히고 깨져나간다. 알고 있다고 여기고 있던 것들이 좌절로 바뀌고 만다.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진다. 전혀 알지 못했던 진실들이 그 실체를 드러낸다. 전혀 다른 시간이 익숙한 시간 속에 흘러간다. 물론 엄마는 강하다. 어떤 엄마도 자신의 딸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기동찬 역시 아직 놓지 못하고 있던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날 때가 되었다. 멈춰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게임을 세이브하고 다시 로드한다고 해서 게임이 더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래전 아주 단순했던 게임들은 그것으로 충분했지만 요즘 나오는 게임들은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들로 인해 그러기가 쉽지 않아졌다. 이른바 회귀물이라 불리우는 장르가 성립할 수 있는 배경일 것이다. 이미 한 번 지나온 길이지만 그 길에도 수많은 함정과 갈랫길이 숨겨져 있었다. 쉽지 않다.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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