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정도전 - 이 고려가 나에게 최고의 극락이야!

까칠부 2014. 3. 17. 07:15

참으로 신랄하다.


"이 고려가 나(임견미)에게 최고의 극락이야! 극락 중의 극락이었다는 말이지!"


백성들에게는 지옥이 따로 없었다. 잦은 외침도 외침이거니와 무엇보다 권문세족의 수탈이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놈저놈 멋대로 세금을 거둬가더니, 나중에는 땅마저 빼앗고 사람은 노비로 삼아버린다. 외적의 침입에 칼맞아 죽고,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고, 그나마 살아있으면 어느새 권문세족의 노비로 전락해 있었다. 그 중심에 있던 것이 다름아닌 이인임(박영규 분)과 임견미(정호근 분), 염흥방(김민상 분) 등이었다. 그러니 극락이었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누구의 견제도 비판도 받지 않고, 처벌조차 받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고, 그 재산을 빼앗고, 가족마저 노비로 삼아 부렸다. 나라 안의 모든 땅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 나라 안의 모든 백성들을 자신의 노비로 삼는다. 그래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나라, 그 나라가 바로 고려였다. 죽어서 가는 극락이 아무리 좋다 해도 고려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역설일 것이다. 백성들에게는 지옥인데 임견미와 같은 권력자에게는 극락보다 더 살기 좋은 나라였다. 


그나마 임견미는 죄인이 되어 목숨을 잃지만 이인임은 왕의 비호 아래 어느새 사면이 이야기되고 있다. 임견미의 처형을 주관하는 최영(서인석 분) 자신이 이인임의 사면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왕명에 의해 사면되고 다시 복권까지 된다면 이인임은 이전과 같은 권세를 여전히 누리게 될 것이다. 남에게서 빼앗은 땅과 노비로 여전히 최고의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누가 고려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차라리 이성계(유동근 분)의 순진함을 비웃으면서도 최영에게는 증오를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어째서 자신들을 죽이는가.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는다. 차라리 더 큰 죄를 짓는다면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 고작 남의 돈 백만원에도 실형을 살고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수백억 수천억이면 잘해야 집행유예이고 그조차 이내 특사로 복권까지 이루어지기 일쑤다. 우연히 시비가 붙어 싸움이 벌어져도 폭행죄로 감옥에 갈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을 고문으로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고, 심지어 수백 수천, 아니 수십만에 이르는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아도 그는 나라를 일으킨 영웅이 될 수 있다. 더 많은 것을 빼앗고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었다면 처형장에 무릎꿇고 앉은 것은 임견미와 염흥방 자신들이 아닌 최영이나 이성계가 될 수 있었다.


오히려 공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역할과 기여가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높은 지위와 그에 걸맞는 권력이 쥐어졌다. 거꾸로일수도 있다. 높은 지위와 권력이 쥐어졌기에 그는 누구보다 많은 일들을 해내야만 했다. 그것은 일신의 안위나 탐욕을 위해서가 아닌 모두를 위해 써야 할 힘이고 능력이었다. 더 엄격한 도덕적 책임이 요구된다.


개인이 동네편의점을 털어봐야 고작 몇백만원 훔치고 말 뿐이다. 대기업이 회계조작으로 세금을 탈루하려 하면 그 피해가 억단위를 넘어간다. 주가조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편의점 강도는 엄벌에 처해도 더 큰 피해를 입힌 경제사범은 대부분 국가경제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거물들이라며 한계를 둔다. 이인임이 말한 동정론에 설핏 웃음을 흘리고 마는 이유다. 휠체어와 응급실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너무 낯익다.


왕명이니까. 그동안 끊임없이 비판이 제기되어 왔을 것이다. 대통령 사면이 너무 쉽게 자주 쓰인다. 어지간한 죄는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 사면되고 심지어 복권까지 이루어진다. 부정을 저지르고, 법을 훼손하고, 심지어 국가의 기본가치를 흔든 범죄자들에게까지 대통령에 의해 사면과 복권이 이루어진다. 처벌받지 않는 것은 물론, 처벌받더라도 처벌이 미미하고, 아예 그조차도 없었던 것이 되기 일쑤다. 그런데도 과연 누가 법을 지키고 공공의 가치를 지키고 양심과 도덕을 지킬까. 그것은 과연 누구의 극락인가.


법치란 피지배자에게만 법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다. 상앙이 진나라에서 변법을 시행하며 가장 먼저 했던 것은 법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길에 장대를 놔두고 그것을 옮긴다면 금을 주겠다. 누군가 그 장대를 옮겼을 때 상앙은 약속을 지켜 그에게 금을 주었다. 나라가 지시한 것을 지킨다면 반드시 그에 따른 보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먼저 나라가 약속을 지켰을 때 국민들 또한 나라가 제시한 규준을 지킬 동기가 생긴다. 어기면 반드시 처벌받고, 지킨다면 그만한 보상이 따른다. 그것이 무너졌을 때 국민 역시 법을 믿지 않게 된다.


법을 어겨도 처벌받지 않는다. 법을 지켰는데 오히려 죄인이 된다. 법이 우스워진다. 죄를 지어 처벌받는 것은 재수가 없는 것이다.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그만한 힘을 가지지 못했기에 더 큰 죄를 짓고도 아무일없는 다른사람들과는 달리 자신만 이렇게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법을 지키다가 죄인이 되거나 혹은 불이익을 당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법을 어겨 이익을 얻는다면 기꺼이 법을 어긴다. 죄를 지어 더 큰 것을 누릴 수 있다면 기꺼이 죄를 짓는다. 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이인임과 임견미가 누린 막대한 부와 권력 가운데는 그같은 다수로부터 자발적으로 얻어낸 것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다같은 공범이다. 어쩌면 염흥방이 변절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옳은 말을 했는데 오히려 처벌받았다. 더 큰 죄를 지었는데도 더 큰 권세를 누리고 있다. 자신에게 잘못이 없으니 필경 세상이 잘못된 것이다. 잘못되었더라도 그것이 자신이 사는 세상이니 결국 자신이 잘못된 것이다. 쉽게 타협하고 타락하는 과정이다. 어차피 세상이란 그렇다. 어른들은 항상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한다. 너희들은 세상을 모른다. 어른이 되어 세상을 안다는 것은 그런 의미인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염흥방은 어른이 되었던 것이다. 고려라는 세상에 어울리는 어른이.


최영의 공으로 그 죄를 덮고자 했던 최영의 노력은 곧 고려사회가 가지고 있던 한계를 보여주고 있었을 것이다. 왕과 멀고 가까운 것으로 그 죄의 크기가 결정되었다. 권력과 얼마나 멀고 가까운가 하는 것으로 죄에 따른 처벌마저 결정되었다. 모든 전근대사회의 한계였다. 아니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그것은 풀리지 않는 숙제일 것이다. 다만 그같은 노력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회와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사회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왜 문제인지조차 최영은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왕이 명령하고 왕실이 부탁하니 그에 따를 뿐이다.


이인임의 공이란 과연 무엇인가. 물론 윤소종의 비판은 옳다. 사리사욕을 챙겼고, 내정과 외교, 국방 모든 면에서 고려의 국정은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이인임이 잘한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왕실을 지켜냈다. 사대부들의 집단행동에 당황하여 바로 이인임에로 달려오는 우왕(박진우 분)의 유약함을 폭군의 난포감으로 바꿔 놓았다. 이인임이 있을 때는 그리 기세등등하던 우왕이건만 이인임이 위태로워지니 이내 약한 모습을 보이고 만다. 나라를 지킨 공이 있다. 나라를 발전시킨 공이 있다. 왕실이 곧 나라였다.


여러가지로 현실의 우리사회를 비춰보게 만드는 드라마일 것이다. 사람 사는 것은 시대와 장소는 달라도 결국은 거기서 거기다.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현실의 여러 문제들을 드라마에 대입해 보게 된다. 법치와 사면과 권력에 대해서. 그리고 살기 좋은 나라에 대해서도. 과연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란 누구를 위한 대한민국일까? 고려가 극락이었던 것은 누구를 위한 극락이었을까? 그렇다면 최영은 누구일까? 임견미와 염흥방을 그 일가족까지 모두 죽이며 이인임은 사면하자 주장하고 있다.


어쨌거나 이인임의 계획이 정도전(조재현 분)에 의해 마침내 탄로나고 만다. 하필 성균관 대성전 앞이다. 이인임이 권력의 정점에서 정도전을 유배보낸 곳이다. 최영이 이인임 앞에 나타난다. 추악하다. 죽음 앞에서 삶을 탐하고, 죽는 마당에도 두고 떠나야 하는 재산을 떠올린다. 권력 없이 하루를 더 사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미 최영은 한계를 드러냈다. 이성계와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역사적 순간이 다가온다. 최영의 권력은 너무 짧았다.


경처 강씨(이일화 분)의 태도가 흥미롭다. 전형적인 권문세족의 사고방식일 것이다. 대의보다는 가족을. 명분보다는 이익을. 이인임의 죄보다는 이인임이 사돈인 것을 먼저 생각한다. 이인임을 처벌하기보다 딸의 시가인 것을 먼저 염두에 둔다. 이성계가 받게 될 벼슬과 누리게 될 권력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현실에 안주한다기보다는 다른 가능성을 생각지 못한다. 의도적일 것이다. 정도전 등 사대부들과 비교된다. 이성계와도 비교된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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