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계기로 갑작스럽게 신분이 바뀌는 이야기는 인간의 문명이 고도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일상의 소재 가운데 하나였다. 누구나 그런 꿈을 꿔본다. 혹시 지금의 내가 사실은 가짜가 아닐까. 진짜의 나는 더 대단하고 더 고귀하고 더 훌륭한 무언가가 아니었을까. 계기가 주어진다면 미운오리새끼도 백조가 되어 화려한 자태를 마음껏 뽐낼 수 있을 것이다.
별볼일 없는 인생이었다. 기억하기 전부터 고아였고, 의지할 곳 하나 없이 거칠게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왔었다. 현실에 치이고 꺾이며 자기의 의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왔었다. 권투선수의 꿈도 포기해야 했었고, 잠시 엇나가 뒷세계에 몸담았던 것이 지금껏 족쇄가 되어 그를 얽매고 있었다. 짓지도 않은 죄로 경찰에 수배당하고, 그때의 악연이 그를 죽음의 위기로 내몰기도 한다. 그런데 역설처럼 최악의 악연이 기회가 되어 그에게 새로운 운명을 부여한다. 자기 가게를 가지겠다는 현실적인 꿈이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소유한 재벌의 일원으로 뒤바뀌고 만다.
소미라(이다희 분)가 김지혁(강지환 분)과 닮았으면서도 다른 부분일 것이다. 재벌이란 그저 다른 세상의 이야기로만 여겨왔던 김지혁에 비해 소미라에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닿을 수 있는 곳에 존재하는 꿈이었다. 비록 액자 안의 풍경이고 무대 위의 장면들일 테지만, 그러나 꿈을 꾸는 정도는 객석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래서 꿈이었다. 언젠가 지금의 비루하고 초라하기만 한 일상이 자신의 눈에 보이는 화려함으로 바뀌는 그 순간을. 그리고 그 꿈에 거의 가까이 다가가 있기도 했었다. 마침내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재벌가의 후계자 강동석(최다니엘 분)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바로 앞에서 꿈이 산산이 깨어지려 하고 있었다.
인간이 수단이 된다. 인간의 가치가 수단으로써 계량된다. 자식을 살리고자 하는 부모의 애닲은 마음이 자식을 위해 서슴없이 다른 사람의 목숨마저 빼앗도록 만든다. 사람을 살려야 할 의사가 수술실에서 아직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를 적출하려 한다. 그나마 의사를 멈춰세울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지금껏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을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수많은 다른 사람의 눈이었다. 맡은 일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마라, 판단도 하지 마라! 인간의 장기를 기계부품에 비유하듯 도상호(한상진 분) 역시 자신을 누군가를 위한 부품으로 여기려 한다.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다. 소미라 역시 그렇게 지금의 위치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현성이라는 대기업의 가장 핵심은 오너 일가의 사생활을 관리하는 FB팀에 있다.
인간이 인간을 꿈꾼다. 스스로 사고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존엄할 수 있는 인간이다. 더 높은 곳에 그것이 있다. 더 큰 부와 명예, 더 고귀한 신분과 지위가 그것을 가능케 한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이기를 꿈꾸기에 모두는 더 높은 그곳을 꿈꾼다. 소미라의 꿈도 어떻게 보면 매우 단순하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존경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 그 기준이 하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아야 했던 현성그룹 오너 일가의 삶이다. 혹은 그것이 결국 불가능한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을 때 도상호처럼 스스로와 타협하여 안주하려 하기도 한다. 부품이더라도 고귀한 이에게 속한 부품이라면 역시 고귀해질 수 있을 것이다. 더 가치있는 누군가의 삶에 자신의 의미를 더한다.
한 인간을 살리기 위해 다른 한 인간을 죽인다. 한 인간의 삶을 위해 또다른 한 인간의 삶이 계량되고 판단되어진다. 그러한 냉혹한 현실의 판타지와 함께 그 과정에서 수단으로써 이루어진 기록의 조작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김지혁을 강지혁으로 - 현성그룹 오너의 숨겨진 아들로 만들어 놓는다. 아이러니일 것이다. 현실보다 더 지독한 현실이 꿈보다 더 꿈같은 기적을 만들어낸다. 최악의 비극 속에서 김지혁은 기대하지 않았던 꿈과 만나게 된다. 현성그룹을 노리는 검사와 특종을 노리는 기자가 김지혁의 생명을 이용하려던 악의와 만난다. 미녀가 왕자의 잠을 깨운다. 병원이라는 고난의 성에서 김지혁은 소미라와 만난다. 그러나 과연 그곳에서 김지혁이 마주하게 될 것은 과연 아름답기만 한 꿈이었을까.
차라리 기계의 차가움마저 느껴지는 재벌일가의 일상이 사람냄새 나는 시장사람들의 모습과 서로 엇갈린다. 모정조차 잔인하다. 잔인함마저 일상적이다. 탐욕하고 욕망하는 모습이 허술하고 어수룩하다. 그 경계를 넘어선 것은 가진 자의 당연한 의도다. 그 경계를 침범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이끌려온 가지지 못한 자의 발버둥이다. 경계에 소미라가 머문다. 도상호가 그 경계를 지킨다. 넘어서되 침범당하지 않는다. 그것이 가진 자의 권리다. 갑작스런 새로운 운명에 김지혁은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또다른 비밀과 반전을 기대해 보기도 한다. 그것도 더구나 심장이식수술의 성공확률이 95%를 넘어선다는 설정은 한국드라마의 흔한 클리셰에 대한 기대를 가져보게 한다. 다시 말하지만 김지혁은 고아다. 출생따위 어떻게 되어도 좋다.
빠르다. 그러면서 디테일하다. 그래서 자칫 산만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설명이 불충분하다. 대신 생체이식수술이라는 충격적인 설정이 있었다. 산 사람의 심장을 빼내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려 한다. 심지어 해외에서 불법으로 장기를 사들이려 시도하기도 한다. 정석적인 멜로가 곁들여진다. 별볼일 없는 한 남자의 인생역전기다.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흥미롭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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