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한국인이 고대에 중국인보다 더 고도의 문명을 이루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해 절대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한국어의 어휘의 양과 종류가 중국의 그것에 비해 한참 부족하다. 한때 유럽에서 라틴어가 공용어처럼 쓰인 이유이기도 하다. 유럽의 어떤 언어보다도 고도로 발달한 언어였다.
언어란 관계다. 사회가 고도화되고 복잡해질수록 언어 역시 비례해서 고도화되고 복잡해진다. 그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일수록 언어는 세분화되고 치밀해진다. 결국은 소통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우에 보다 적절하게 소통하기 위해서 언어는 분화하고 진화해간다. 만나는 사람이 많고 대화할 기회가 많을수록 언어는 발전할 수밖에 없다. 보다 긴장된 관계에서 언어는 더욱 조심스럽고 정교하게 사용된다. 문명의 결과가 언어에 고스란히 투영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언어가 졸렬하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관계가 졸렬하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굳이 계산해서 조심해가며 말할 필요가 없기에 어휘는 늘지 않고 방법도 단순해진다. 한때 회자가 되었던 '거시기'와 '머시기'가 그런 예일 것이다. '거시기'라 해도 알아듣는다. '머시기'라 해도 알아서 이해한다. 그 이상은 필요없다. 말이 막히면 '거시기', '머시기', 그래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 이상의 다른 다양하고 정교한 어휘나 어법을 배우고 개발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어느 분의 언어사용에 대해 세간에 회자되는 이야기다. 그나마 전제왕조의 왕들은 신하들과 긴장관계에 있었다. 자칫 왕의 빈틈을 파고들어 왕위를 뒤집을지도 모른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전쟁이었다. 그러나 굳이 그런 긴장관계가 필요치 않은 신분의 경우는 어떨까. 그저 받들어 모시고 그저 감싸주기만 한다. 감히 말을 마주하지도 말을 거스르지도 않는다. 알아서 그 숨은 뜻까지 이해해준다. 아름다우면 멍청하다. 고귀한 이는 어리석다.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토론하는 것을 보면서 더욱 확실하게 깨달았다. 귀하신 분이구나. 곱게 자라신 분이구나. 그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울고 불고 그런 하찮은 낮은 곳의 감정따위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해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기계와 같다. 머리로 생각하고 필요로써 행동한다. 그래도 좋다 한다.
굳이 이름을 말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 대부분 누구인가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개인적인 감정이 더해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비난한다는 것은 그만큼 큰 용기와 책임이 필요하다. 그래서 언어가 발달한다. 머리를 굴리고 의도를 거르고 다듬는다. 어려운 작업이다. 누군가에게는 쉽다.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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