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빅맨 - 무심한 평온함 아래 한 남자가 죽다!

까칠부 2014. 5. 21. 08:28

가장 잔인한 것은 절박함이다. 어린아이와 같다. 해맑은, 아무런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무엇도 거슬릴 것이 없다. 거리낄 것도 없다. 단지 필요할 뿐이다. 간절하게 원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것이 곧 전부다.


강동석(최다니엘 분)의 해맑은 악의가 안쓰럽도록 섬뜩하다. 심장이 다시 언제 멈출지 모른다고 하는 공포와 그 공포를 공유하며 마냥 보호하려고만 하는 애처로운 부모의 마음,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이 함께 주어졌다. 하루하루가 절박한 그에게 삶이란 하루를 넘기기도 버겁던 원시의 야생이나 다름없었다. 양심은 사치고 인정은 낭비다. 어찌 보면 효율적인 삶이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루고 싶은 것은 모두 이루며 살아간다.


그나마 강성욱(엄효섭 분)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최윤정(차화연 분) 역시 거짓된 자신을 향한 김지혁(강지환 분)의 진심에 인정이라는 것을 깨닫고 만다. 하지만 부모였다. 어머니였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제 살도 찢어 기꺼이 먹일 수 있다. 다른 이의 살을 찢고 뼈를 부수어 제 자식을 배불리 먹일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한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들이 악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식에 대한 사랑이 누구보다 지극했기 때문이다. 기업에 대한 사랑이 양심이나 인정보다 더 컸다. 그리고 그런 부모로부터 하염없는 배려와 보호를 받으며 강동석은 자라왔다.


기계처럼 자신의 손발이 되어 그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처리해주는 도상호(한상진 분)도 있다. 누군가 그를 말려주었으면. 그래서 소미라(이다희 분)의 작은 혼란이나 머뭇거림에도 그는 견디지 못한 것인지 모른다. 소미라의 사소한 반항에도 그는 자신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되었다. 모든 것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자신이 뜻한 대로 이루어져야 했다. 소미라 역시. 김지혁도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만이 존재한다. 자기에게 필요한 사람, 그리고 자기에게 필요없는 사람. 자기에게 필요한 사람이란 자신을 위해 무엇이든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린아이라 말한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은 세상에 그런 사람이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부터다.


강동석과 거의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강진아(정소민 분)는 그래도 순진하다. 재벌이 악한 것이 아니다. 가진 자라고 모두 악한 것은 아니다. 사실 강성욱도 최윤정도 악한 사람들은 아니다. 악한 행동을 할 뿐이다. 자식을 위해서. 혹은 회사를 위해서. 지켜야 할 것들이 그들을 악하게 만든다. 그에 비하면 강진아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란 거의 없다. 강동석과는 다른 의미로 순수하고 순진하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강성욱은 자신의 행동을 멈출 수 없고, 강동석은 아예 양심의 가책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 그 차이는 지켜야 하는 것의 무게, 강동석에게 그나마 소미라만이라도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이 다행일 것이다. 그것을 얻는 과정조차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김지혁이 받았을 상처보다 그에게 베풀었던 물질적인 것들을 먼저 이야기한다. 어쩌면 김지혁이 처음 가족을 찾았다고 했을 때 그의 행운을 지켜보는 많은 시선들 역시 비슷했을 것이다. 인간의 진심조차 물질로서 계량될 수 있다. 인간이란 단지 자신을 위한 수단이며 도구일 뿐이다. 세상이란 감정없이 돌아가는 무기질의 기계와도 같다. 자신은 단지 그 안에 존재하는 한 부속품에 불과하다. 어떤 부속품은 더 중요하고 어떤 부속품은 그보다 가치가 덜하다. 근래 보기드문 최악의 악역캐릭터일 것이다. 악조차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악 그 자체를 보여준다.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인다. 명령이 있으니 기꺼이 사람을 죽이는 일에 동참한다. 사람을 죽인다는 악의조차 없다. 강동석의 세계는 그렇게 무채색이다. 도상호의 세계도 마찬가지로 아무런 색도 온도도 없는 무기질의 세계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책임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놓인 환경에 의한다. 김지혁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조범식의 핏빛 현실은 그렇게 그들의 세계와 대비된다. 어쩌면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멈추려 하지 않는 강성욱이 더 가증스러운지도 모른다. 그가 내민 손을 잡는 검찰총장의 이 사회의 법과 정의를 상징한다.


자칫 이대로 별일없이 끝났을 드라마를 강동석의 악의가 이어준다. 그리 큰 원한도 아니다. 억울함이야 있지만 그렇게까지 절박하게 복수해야 하는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강동석이 지시한 탄원서로 인해 유죄판결은 받았지만 형집행은 5년이나 유예되었다. 그냥 그대로 살면 된다. 아무일없이 그렇게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 살아가면 그만이다. 대부분 그렇게 억울하고 원통해도 어떻게든 살아가려 한다. 그런데 목숨의 빚이 생겼다. 결국 모든 원인은 절박함이다. 그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복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김지혁을 몰아간다.


모든 것이 끝났다며 안심하는 사람들 속에, 더 이상 아무일도 없을 것이라며 마음놓는 사람들 사이에, 그러나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같은 평온함 속에 피투성이가 된 김지혁은 칼을 맞고 바다로 던져진다. 오로지 김지혁만이 홀로 고통속에 죽어간다. 의도한 것이었을까? 김지혁 하나 죽는다고 세상에 달라질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한 사람이 사라져간다. 무심함이 섬뜩하다. 강동석의 악의 만큼이나 세상은 무심하게 평화롭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이제 다음주부터 시작된다. 진실이 밝혀졌다. 모든 거짓들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남은 것은 묵은 빚. 갚아주어야 할 것들이 그들 사이에 남아 있다. 납득할 수 없는 빚이 한 남자를 괴물로 만든다. 더이상 지금처럼 밝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시작을 기다린다.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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