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데 어떻게 쿨해질 수 있어?"
필자가 해주고 싶은 말이다.
"그런다고 쿨해질 수 있으면 그게 사랑인가?"
사랑이란 상대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상대를 허락하는 것이다. 부대끼고 부딪힌다.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뭔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알고 싶고, 알게 하고 싶고, 보고 싶고, 보여주고 싶고, 듣고 싶고, 들려주고 싶고, 무엇이든 함께 하고 싶다.
그래서 싸우기도 많이 싸운다. 당연하다. 남인데. 이렇게나 다른데. 다른 시간을 살아왔다. 다른 공간에 살고 있었다. 이제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안에 함께 있다. 그 어색함이 불편해서 피해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시간이 어색함까지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꼴사납고, 한심하고, 초라한 자신의 모습이 그리 보기 싫더라도, 그래도 먼저 다가서야 한다. 곁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끊임없이 말을 걸고, 끊임없이 하는 말을 들어주고, 이해하고, 이해받고, 멋진 모습만 보이려 하다가는 멋진 추억으로만 남을 뿐이다. 결국은 그런 모습들까지 함께 가지고 가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일 테니까. 괜히 콩깍지가 아니다.
그나마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퓨전대포집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더구나 잘나가는 성형외과 의사이던 공기태(연우진 분)의 처지가 예전 같지 않다. 공기태의 위기가 주장미(한그루 분)의 열등감을 조금은 덜 수 있게 계기가 되어준다. 다가가기조차 두렵던 대단한 존재에서 걱정도 고민도 함께 해 줄 수 있는 조금은 편한 상대가 되었다. 어쩌면 공기태가 오히려 자기에게 기대는 순간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공기태가 기댈 수 있도록 자기를 열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정작 마음을 열어도 다가갈 방법을 모른다. 아니 마음을 열었는지 어떤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는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자기에 대해 어떻게 여기고 있을까? 이대로 그에게 다가가도 좋을까? 이렇게 그에게 다가기 기대도 좋은 것일까? 공기태와 주장미의 사이가 엇갈린 이유이기도 하다. 거짓으로 시작했다. 그동안의 모든 관계들을 - 그동안 그들이 나누고 확인했던 모든 말들과 행동들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사랑하고 있을까? 사랑해도 좋은 것일까? 쉽게 흔들리고 쉽게 서로를 의심한다.
솔직해지는 것이다. 유치해지는 것이다. 남현희(윤소희 분)가 이훈동(허영민 분)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이었다. 이렇게 나는 당신을 원하고 있다. 비겁해도. 교활해도. 약삭빨라도. 자기의 마음이 시키는대로 따른다. 자기의 본능이 이끄는대로 그대로 따라간다. 함께 있고 싶고,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모든 순간을 함께하고 싶다. 질투는 당연하다. 내 사람이기를 원한다. 나만의 사랑이기를 원한다. 다른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지 않다.
처음으로 진심이 되어 버린 자신의 사랑에 지레 겁먹은 모양이다. 주장미든 공기태든. 그래서 어떻게든 자신을 꾸미려. 멋진 모습을 보이려. 주위에도 멋지게 인정받으려. 그것이 그들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도망치고 숨도록 만들었다. 혹시나 들킬새라. 혹시나 누가 알새라. 그러는 사이 서로 멀어지고 서먹해지고. 말하는 것도 어색해진다. 무언가 묻는 것도 두려워진다. 그렇게 주장미의 부모는 서로에게 말하는 법을 잊고 살아왔다. 공기태의 부모 역시 항상 자신의 자리만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아직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주장미는 무작정 공기태의 집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그 어느 무엇보다 공기태가 더 중요하다.
결혼이란 현실이다.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 아니다. 개인과 개인간의 이루어짐만이 아니다. 결국 그 가족까지 관계되고 만다. 주위의 멀고 가까운 사람들이 그에 얽히고 만다. 신데렐라가 되고 싶지 않다. 어머니의 용돈 정도는 눈치보지 않고 주고 싶다. 그런 두 사람을 공기태와 이훈동 역시 곁에서 지켜봐준다. 역시 지켜보는 두 남자의 본심도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편해질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으련만. 그러지 못하는 것은 역시 서로에게 멋진 사람이고 싶은 이기적인 욕심일 것이다. 쿨해지고 싶고, 쿨하게 보이고 싶고, 그러면서 그런 서로를 서운하게 여기는 귀여운 이기. 그래도 결국은 결혼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다. 하루의 방황을 통해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공기태를 위해서가 아니라 공기태가 있기 때문이다. 주장미를 위해서도 아니고 주장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래서 결심도 굳힐 수 있었다. 공기태에게 기대 휴식을 얻고 다시 열심히 달릴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자신의 병원을 지켜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주장미는 다시 공기태의 어머니 신봉향을 만난다.
쿨해지고 싶었다. 타인이니까. 공기태의 어머니니까. 장차 시어머니가 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살아왔다. 신봉향의 감추어진 진심은 그녀의 무의식이 남긴 작은 단서들을 통해 어렴풋 미루어짐작하는 수밖에 없다. 이제는 상관없는 사이라 여기면서도 굳이 구애받고 심지어 찾아가기까지 한다. 한여름과 함께있는 모습에 불편해하기도 한다. 그녀의 남편(김갑수 분)은 지나치게 솔직하다. 공기태마저 분노하게 만든 그 아이같은 솔직함이 그런 그녀의 모습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주장미와 만나서 어떤 이야기들을 하게 될까.
쿨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랑하는 사이에 쿨해질 수 있을 리 없다. 불가능을 향한 도전이다. 삐걱거리고 비틀거리고 끝내 어이없이 허물어져 버리고 만다. 그래서 필요하다. 비로소 서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던 두 사람을 위해. 무엇보다 서로가 가장 소중함을 깨닫게 된 그들을 위해. 그래도 노력들이 의미없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격을 얻었다.
유쾌한 사랑이야기다. 결국은 해피엔드로 끝난다. 행복해지는 동화다. 그러나 그러기까지 거칠고 험한 현실을 거친다. 많이 아파하고, 많이 괴로워하며, 때로 주저앉고, 때로 아파하며 울다가, 그래도 일어서서 사랑한다 말한다. 사랑을 이루어낸다. 즐거워지는 이유다. 사랑은 행복한 것이다. 고단한 일상에 행복한 꿈을 꾸고 싶어진다. 달콤한 꿈속에 잠기고 싶어진다.
온몸을 던진 한그루의 연기가 빛났다. 열혈의 한그루에 비해 연우진은 능청스럽다.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이렇게까지 찌질해질 수 있다. 한심해질 수 있다. 임예진과 김해숙 두 어머니의 연기 역시 두 사람을 단단히 받쳐준다. 기대없이 보고 한없이 만족했다. 얼마 안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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