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 지해수가 장재열의 병을 받아들이기까지

까칠부 2014. 9. 4. 07:27

처음에는 부정한다. 설마. 내게, 혹은 내 주위에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그리고 분노한다. 왜 하필. 왜 내게! 왜 내 주위에! 세상을 욕하고, 운명을 탓하고, 그리고 사실을 전한 당사자를 비난한다. 자신과 주위에 원망을 돌린다. 어째서 그때 그렇게밖에는 못했던 것일까. 그리고 체념한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타협하고 그 결과에 순응한다.


죄책감이란 역시 자신에 대한 매우 강렬한 분노일 것이다. 어째서 그때 그랬던 것일까. 어째서 진작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일까. 조금이라도 일찍 사실을 알고 대책을 강구했더라면 지금보다는 더 나아졌을 수 있다. 아니 분명 그랬을 것이다. 마치 자기의 탓인 것 같다. 자기가 못나고 무능해서 그리 된 것만 같다. 그리고 그같은 죄책감은 다시 당사자에게로 투영된다. 그렇더라도 자기가 먼저 알아서 올바로 대처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문제해결을 위해 반성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실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히 지해수(공효진 분)는 스키조(정신분열증)가 치료될 수 있는 병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것은 단지 병이다. 불치병이 아니다. 반드시 죽는 병도 아니다. 사실확인에 따른 체념은 이내 장재열(조인성 분)의 치료를 위한 노력으로 이어진다. 정신과 의사로서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그리고 주위의 도움을 통해 반드시 장재열의 병을 치료하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지해수가 정신과 의사가 아니었으면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장재열의 병에 대해서도 전혀 아무런 지식도 없고, 따라서 치료에 대한 확신조차 없었다면. 장재열의 어머니(차화연 분)는 그래서 장재열이 단지 집필의 스트레스로 사소한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그 이상은 어쩌면 감당하기 너무 버거운 짐인지도 모른다.


장재열이 그토록 필사적으로 지키고 지탱해왔던 세계였다.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형을 죄인으로 만들었다. 자신의 거짓말로 형 장재범(양익준 분)은 짓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쓰고 무려 14년간이나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었다. 혹시라도 어머니나 주위에서 눈치챌까 자신마저 밝고 활달한 새로운 자신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14년만에 다시 만난 형이 반가움이 아닌 원망과 증오만을 내보임으로써 그같은 그의 세계에도 균열이 일어나고 만다. 그동안 애써 잊고 외면해 왔던 자신의 죄를 일깨우고 만 것이다. 한강우는 그같은 거짓된 세계의 균열을 비집고 태어난 그의 분신이었을 것이다. 형 장재범처럼 과거의 어느 지점에 놓아두고 온 진실한 자신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지켜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고, 그러면서도 한없이 증오스러운.


한강우의 상처는 곧 장재열 자신의 상처다. 한강우의 아픔은 곧 장재열 자신의 아픔이다. 한강우가 앓고 있는 병은 곧 장재열 자신을 죽게 할 병이다. 한강우를 죽이려 한다. 그때로 돌아가 장재열 자신을 죽이려 한다. 한강우 처럼 자신도 루게릭병을 앓고 있다. 언젠가 한강우처럼 자신도 루게릭병으로 인해 죽게 될 것이다. 속죄다. 응징이다. 무엇보다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자신의 죄가 그의 존재마저 고통스럽게 만든다. 장재열 자신이 행복할수록 한강우는 더욱 피투성이가 되고 죽음에 가까워진다. 그렇게라도 죄를 대신할 수 있다면.


치료 자체를 거부한다. 박수광(이광수 분)이 건넨 퍼즐의 조각을 일부러 떼어낸다. 퍼즐조각들은 어긋난 자신들이다. 그 어긋난 자신들의 일부를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그것이 치료다. 그러나 박수광이 떠나고 난 뒤 장재열은 무의식중에 완성된 퍼즐의 조각을 집어 떼어 놓는다. 치료마저 받아들일 수 없다. 장재열의 치료를 앞둔 의사들의 모습이 비장하기까지 하다. 병원에서 다시 환자와 의사로서 만날 것이면서 지해수는 마지막 인사를 하듯 장재열을 안는다.


어쩌면 상당히 위험할 수 있는 무모한 시도일 것이다. 정신과 치료라는 것이 드라마의 소재로써 썩 어울리는 흥미를 잡아끌만한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의학드라마라면 거의 외과를 배경으로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나마 외과수술이라는 액션과 긴장마저 사라질 때 남는 것은 지루하기 이를 데 없는 베드신 뿐이다. 하물며 정신과 치료라면 그다지 보고 싶지 않은 인간의 일그러진 내면까지 함께 지켜보아야 한다. 때로 흉측하고 때로 공포스럽다. 차라리 모노드라마에 가까운 정신과 환자의 모습을 연기할 배우의 연기력 부담도 크다. 어떻게 장재열은 병원 침대에 누워 정신분열증 환자의 모습을 연기해낼 것인가.


하필 장재범이 출소하기 직전이다. 과연 장재열의 입원은 장재범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까. 마침 이전 외박에서 자신을 향한 장재열의 진심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던 참이기도 하다. 장재열의 치료에 연인이 지해수가 참여하게 되는 것도 하나의 긴장요소다. 환자가 되어 누워 있는 장재열과 의사로써 그를 치료해야 하는 입장이 된 지해수 사이에 일어나게 될 격한 감정과 사건들이 벌써부터 기대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그 중심에 있어야 할 장재열의 연기에 대한 기대가 크다. 지금까지 훌륭히 자기의 역할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그저 병에 걸렸을 뿐이다. 그 사실을 그렇게 인정하기 힘들다. 보기에 이상하고 불편하게만 여겨지는 것은 그만큼 치료가 필요하다는 방증에 불과하다. 적절한 치료만 받는다면 충분히 완치될 수 있다. 일상을 어울려 누릴 수도 있다. 상당히 심각한 상태다. 모두가 긴장해 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눈물도 흘린다. 기다린다. 흥미롭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9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