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수백의 생목숨이 사라진 참사를 두고 그냥 교통사고일 뿐이라 말한다. 목숨을 걸고 단식하는 사람에게 앞에서 짜장면과 치킨을 시켜먹는다. 자식을 잃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부모의 신상을 헤집어 인격을 비하하고 조롱한다. 과연 이런 행위 어디에 싸가지라는 것이 보이는가.
싸가지라는 단어는 대개 '예의'와 함께 쓰인다. 경우에 맞는 말이나 행동을 보이지 않았을 때 싸가지가 없다는 말을 흔히 쓰게 된다. 경우란 상대와 자신의 관계와 주위의 상황을 아우르는 말이다. 무엇보다 상대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가 중요하다. 한 마디로 "어딜 감히!". 강준만이 말하는 싸가지도 그것을 말하고 있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어째서 자식잃은 부모를 조롱하는 보수는 높은 지지를 받는데, 단지 말을 싸가지없게 할 뿐인 진보는 비난을 듣는가. 자격의 문제다. 그런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자격. 권위다. 바로 자신들의 말과 행동을 비판하는 젊은 세대에게 "애비애미도 모르는 후레쌍놈!"이라며 욕하는 노인처럼. 노인이란 권위다. 사실 그것 하나에 기댄다. 그럴 자격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래도 좋다.
실제 보수정당의 지지자 가운데서도 김대중에 대한 평가만은 남다른 경우가 많다. 노무현이 후보시절 높은 지지를 받았던 것도 그와 관계가 있다. 5공 청문회에서 보여준 그의 시원스런 모습은 이후 그를 따라다니는 브랜드가 되었다. 잘나가는 변호사 출신이다. 재야민주화 인사 가운데서도 명망이 있다. 몇 번이고 지적했던 명망가 정치다. 권위가 있다. 그래서 인정한다. 그런데 권위를 부정했다. 그래서 돌아선다.
여당과 야당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러면 이쯤에서 정리해 줄까? 권위가 없다. 예전에도 새정연에 대해 쓰면서 그리 말했을 것이다. 너무 잡음이 많다. 너무 중구난방이다. 당과 대표가 하는 말에 권위를 실어주지 않는다. 자신들이 뽑아놓고 자신들의 대표, 혹은 후보자에게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신뢰감에서 차이가 난다. 여당은 중진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만한 무게를 갖는다.
그렇지 않아도 산업화라고 하는 가치를 선점한 그들이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에 자신들이 직접 관여했다. 성장에 대해서는 권위가 부여될 수밖에 없다. 성장과 안보는 바로 그들의 몫이다. 그 시대를 함께했던 세대들이게는 그들이 곧 자신들 대신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최소한 대표성을 인정할만한 말이나 행동에는 철저히 복종하는 일사불란한 모습마저 보인다. 안정감이다.
싸가지가 없는 게 문제가 아니다. 싸가지가 없어도 그럴 자격까지 없어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그만한 충분한 자격만 인정된다면 싸가지없는 것도 능력으로 비칠 수 없다. 실제 여당이 그러고 있다. 문제는 그럴만한 권위 자체가 야당, 혹은 야권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자신들이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싸가지란 단지 진보와 보수만의 문제인가. 진보진영 안에서도 싸가지 논란이 나온다. 진보의 논리 역시 일정한 권위 아래 전개되고 따라서 그 권위를 거스르는 것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단지 표현방식이 다를 뿐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싸가지'라 표현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굳이 강준만이 그와 같은 표현을 쓰게 된 이유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격의 문제다.
권위에 복종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능 가운데 하나다. 특히 자아가 취약할수록 보다 크고 힘있는 권위에 기대고 싶은 욕망을 가지게 된다. 일베가 바로 그런 경우다. 직관이란 바로 그같은 권위를 향하는 경우가 많다. 기성의 가치란 기성의 권위다. 그것을 흔히 보수라 말한다.
싸가지없는 진보? 그렇다면 단지 꼰대보수일 뿐이다. 하지만 꼰대보수가 승리한다. 당연하다. 그들에게는 권위가 있으니까. 권력이 아닌 권위다. 그러면 과연 진보가 보수를 이길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이 아젠다다. 이슈가 아닌 권위다. 전략일 터다. 알고 있을 테지만. 아마도. 그냥 생각한다.
'문화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베의 '폭식투쟁'을 관용해서는 안되는 이유! (0) | 2014.09.07 |
---|---|
'일베'와 '주사파' 그 어색한 공통점에 대해 (0) | 2014.09.07 |
군대내 인권유린과 세월호, 인간의 가치를 묻다 (0) | 2014.08.30 |
세월호 - 박영선 대표가 용퇴해야... (0) | 2014.08.29 |
새정연의 치명적 한계... (0) | 2014.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