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이젠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 듯이"
사실 두려운 것이다. 무서워진 것이다. 진실을 알아버렸다. 한여름(정유미 분)이 어떻게 자신을 떠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다시 사랑하려 해도 사랑할 자신이 없다. 벌써 새로운 행복을 찾은 한여름에게 새삼 다시 기다려달라 부탁할 염치도 없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더 사랑해서다. 더 사랑해서 자기가 사랑하는 만큼 사랑해 줄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녀를 웃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아니다. 그리움도, 가끔씩 생각나면 시린 듯 저며올 아픔까지도, 결국 그런 어리석은 자신을 위한 징벌일 것이다. 그녀를 떠나보내는 것도 너무나도 한심했던 자신이 감당해야 할 아픔이었다.
미뤄두었던 이야기들을 나눈다. 오래전 연인이었던 그들이 나누었어야 했던 이야기들을 전혀 남이 되어 버린 지금 비로소 나눌 수 있게 된다. 이별을 위한 의식이다. 이별을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이다. 아직 한여름이 아버지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충분한 과정이 결여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로부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들어야 했다. 울어야 했고, 위로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때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그때 흘리지 못했던 눈물을 한여름은 이제서야 비로소 흘리게 된다.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새 그들은 무덤덤해진다.
아직 제대로 이별하지 않은 것이다. 여전히 두 사람 사이에 두 사람이 사랑하던 기억은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벌써 오래전에 완결된 옛이야기처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 아픔과 상처마저 기억과 함께 일깨우고 만다. 다시금 기억과 함께 상처들이 욱신거리며 시간들을 되돌린다. 강태하(문정혁 분)만이 아닌 한여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껏 막혀 있던 눈물이 봇물처럼 쏟아지던 순간 강태하의 품에서 안도감을 느끼고 만다. 그때 그녀에게 가장 필요했고 절실했던 것이었다. 그녀가 가장 바랐던 순간이었다.
그나마 이미 한 번 이별했던 사이였을 것이다. 벌써 오래전에 이별한 사이였을 것이다. 그래서 힘들지만 떠나보낼 수 있었다. 떠나올 수 있었다.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많은 연인들처럼 아직도 후회와 미련이 망령처럼 그들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새삼 다시 찾아온 사랑은 그런 그들을 위한 기회였을 것이다. 한 방울 눈물과 무거운 발걸음만으로 정해진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만다. 충분한 준비와 과정을 거쳐 이별을 받아들이고 만다. 너무 깔끔해서 오히려 불안할 정도다.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닐 것이다.
하기는 아직 마음놓기는 이를 것이다. 의심은 독이 된다. 의심은 항상 믿음보다 강하다. 때로 사랑보다도 더 강하다. 더 늦기 전에 서로의 의심을 풀어줄 수 있어야 하는데, 주위의 여건들이 그것을 전혀 허락지 않는다. 어머니의 고민은 남하진에게서 한여름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 기회를 빼앗고, 한여름이 차마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남하진과의 사이에 작은 균열을 만든다. 더 늦어진다면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강태하와 그랬던 것처럼 영문조차 모르게 이별의 순간을 맞게 된다. 그들은 아직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받아들인다. 생각나는 것도 생각나는대로 그대로 인정해 버린다. 여전히 그리운 것이다. 여전히 생각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 미묘한 경계란. 그마저도 무덤덤해질 때 진정 '옛사랑'이 되는 것일 게다. 화려했던 젊은 날에 대한 향수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치장해준다. 그런 아름답던 시절들도 있었다. 아픔마저. 그 상처마저. 그 기억들조차.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한여름과 남하진 사이의 여러 불안요인들은 이것이 '드라마'임을 상기시켜준다. 아직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다.
중년의 화려한 나날들을 꿈꾸던 배민수(안석환 분)의 야망은 착각으로 허무하게 끝나고 만다. 윤솔(김슬기 분)을 중심으로 도준호(윤현민 분)와 윤정목(이승준 분)이 본격적으로 얽히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윤솔의 전성기다. 사랑에 울던 그녀가 누군가를 울릴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 오랜 친구와 새로운 만남. 그녀의 선택에 누군가는 울고 웃는다.
죽은 사람은 떠나보내야 한다. 헤어져 남이 되었다면 역시 놓아주어야 한다. 지난 일들은 기억에 간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가끔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이번에는 강태하가 떠나고 한여름이 남겨진다. 그들은 그렇게 완전하게 이별을 한다. 새로운 시작이다. 반환점에 섰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9865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언맨 - 어느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0) | 2014.09.19 |
---|---|
아이언맨 - 꿈과 초현실의 경계에서, 음울하고 음산하다 (0) | 2014.09.18 |
연애의 발견 - 후회가, 또 화가, 난 눈물이 흐르네 (0) | 2014.09.16 |
리셋 - 잊혀진 기억의 퍼즐맞추기 (0) | 2014.09.15 |
괜찮아 사랑이야 - 괜찮니, 나? (0) | 2014.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