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드라마로서 너무나 치명적이다. 음산하다. 음울하고 기괴하다. 마치 산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주홍민(이동욱 분)의 대사처럼 이미 죽은 귀신들이 산 사람과 어울려 사는 이야기처럼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마무리하며 보기에 그다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즐겁자는 드라마인데 그다지 썩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다. 어색하다.
사실 이런 연출이나 내용을 싫어한다. 단지 고용주라는 이유만으로 고용인들을 함부로 대한다. 심지어 폭력까지 휘두르고 있음에도 하다못해 도망치려는 시도조차 없이 고스란히 맞고만 있다. 어쩌면 이런 모습들이야 말로 우리 사회의 고용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을까. 실컷 때리고 나서 상여금과 함께 승진이라는 사탕을 입에 물린다. 그러면 다시 웃는 얼굴로 그같은 부당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만다. 인간이란 이처럼 비루한 존재이까.
하지만 한 편으로 게임회사였다는 사실에 저절로 납득하고 마는 자신이 있다. 겉보기만 그럴 듯할 뿐 IT야 말로 가장 대표적인 저임금 산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게임업계는 열정페이까지 더해지며 그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오로지 열정만으로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세상 돌아가는 사정과 전혀 담쌓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책상 앞에 앉아서 컴퓨터 모니터만 보고 있는데 계절 바뀌는 것은 알기나 할까. 월급 밀리지 않고 제때제때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더구나 천만원이라는 큰 돈까지 한 번에 안겨준다.
사실 주홍빈과 같은 경영자가 필요하기도 하다. 경영자까지 열정에 도취되면 같이 불타죽는 수밖에 없다. 최소한 폭언에 폴력까지 휘두르면서도 게임을 상업적으로 성공시키고 그 댓가를 개발자들에게 돌려주고 있지 않은가. 개발자로서의 순수한 열정이란 때로 무모한 외고집으로 흐르기 쉽다. 바로 손세동(신세경 분)을 따라다니는 젊다기보다는 어린 일당들처럼. 도저히 방법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에도 끝까지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하기는 그런 개발자들이기에 주홍빈의 폭언과 폭력은 그들을 세상의 첨예한 이해와 논리로부터 보호하는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할 것이다. 그냥 자신들은 게임개발만 하면 된다.
로망일 것이다. 젊음과 열정만으로, 오로지 자신들의 아이디어와 실력만으로, 자신들만의 무언가를 창조해내고 그로써 사회경제적인 성공까지 일구어낸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는 그들의 신이다. 혼자만의 힘으로 '울티마'라고 하는 위대한 게임시리즈를 세상에 내놓았던 리차드 게리엇과 의기투합한 몇 사람의 개발자에 의해 시작된 최초의 3D온라인게임 '뮤'는 그들의 신앙이었을 것이다. 당장은 사무실 하나 없이 단칸자취방에 숨어 게임개발의 꿈을 부여잡고 있을 뿐이지만 언젠가는 내가 만든 게임으로 보란 듯이 성공을 거두는 날이 있을 것이다. 말도 안되는 임금에 휴일마저 없는 가혹한 현실에도 그들이 웃으며 견딜 수 있는 이유다.
두 배의 임금보다 게임개발의 꿈을 선택한다. 사장이 멋대로 팔아버린 회사에서 손세동이 찾고 싶었던 것은 오로지 자신들이 만들고 있던 게임 하나였다. 월급도 받지 않겠다. 게임개발만 자신들의 힘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달라. 모두 함께 가겠다. 처음 게임개발을 시작했던 모두가 끝까지 함께 하겠다. 과연 그같은 순수한 열정과 주홍빈이 속한 냉혹한 현실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 아마도 주홍빈과 손세동의 뻔한 로맨스 가운데 게임개발이라고 하는 꿈과 같은 현실은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다루어질 것인가. 그래서 대비되듯 주홍빈의 현실은 비현실적으로 음울하고 스산한 것일지도 모른다. 총천연색의 열정과 무채색의 절망이 그렇게 서로 교차하고 있다. 분명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정말 뻔하다. 오로지 순수와 열정 뿐인 여자주인공은 대책없이 부와 권력을 가진 남자주인공에 들이대고, 모든 것을 가진 대신 아픈 상처가 있는 남자주인공은 아무것도 없는 여자주인공에게 이끌린다. 우연한 사건이 그들을 서로 이어준다. 그것이 전혀 개연성을 무시한 초자연적인 설정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면 특이한 점이다. 비정상적으로 예민해진 후각에 낯선 여자로부터 잃어버린 여자의 냄새를 맡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아이가 남자와 여자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아이로 인해 두 사람은 서로 만나고 얽히게 된다. 괴팍하기까지 한 남자의 상처를 여자는 모성으로써 어루만지게 될까. 결국은 주홍빈의 기분에 따라 날씨마저 바뀌는 초현실적인 설정과 게임회사라고 하는 흔치 않은 배경의 조화에 그 성패가 달려있을 것이다. 초반 저조한 시청률은 과감하지만 무모한 시도에 따른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사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이동욱은 과연 잘생겼다. 어쩌면 이동욱처럼 잘생기고 제대로 또라이 연기를 소화해낼 수 있는 더구나 젊은 배우가 몇이나 될까. 신세경의 찢어지는 울음소리에 매료되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진짜 서럽게 소리지르고 있었다. 뒤를 생각지 않은 비명과도 같은 울음이고 비명이었다. 어쩐지 서러운 것이 많은 얼굴이고 눈빛이다. 귀한 집 딸네미로는 어울리지 않는 외모다. 작고 여리지만 오히려 다 큰 사내녀석들을 끌고다니는 당찬 모습이 어울린다. 그런데 그다지 사랑을 연기하기에는 달콤해 보이지 않는다. 역시 드라마의 불안요인이다. 이동욱도 그렇게 달콤한 로맨스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작가와 감독의 역량이 중요해진다.
참 우울한 현실이다. 하루아침에 회사가 사라진다. 어제 면접을 보고 합력통보를 받았는데 오늘 출근해 보니 회사가 문을 닫았다. 흔하지는 않지만 드물지 않은 이야기다. 그만큼 쉽게 망한다. 대부분 저자본이다. 그런데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기본으로 몇 년을 아무런 수입 없이 오로지 버티지 않으면 안된다.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모든 게임이 성공을 자신하고 시장에 나오지만 그 가운데 성공하는 것은 극히 일부다. 승자독식이 강해서 성공한 몇몇에 속하지 못하면 사실상 실패다. 그러고 보니 회사 사장이 회사와 게임만 팔아치우고 정작 개발자들은 나몰라라 한 실제의 사례가 떠오른다. 그래도 주홍빈의 제법 규모가 있는 회사와 연관되었으니 더 이상 우울할 일은 없을 것이다. 역시 어떻게 그로부터 성공의 신화를 그려내는가.
분노조절장애다. 어려서 부모의 억압이 원인이 되었다. 그렇게밖에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른다. 인내를 가지고 차근히 상대와 공감하며 설득하는 것은 주홍빈이 배우지 못한 것이다. 손세동은 체념에 익숙하다. 되지 않는 일에 매달리지 않는다. 오로지 게임이라는 꿈 하나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하기는 그러니 쉽게 체념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그녀에게 게임은 유일하게 살아갈 힘과 의미가 되어준다. 누군가를 지키고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은 아무도 없는 그녀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여러가지로 불안하다. 시청률은 단지 그 결과에 불과하다. 주연들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는 하나같이 드라마처럼 기괴하기만 하다.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든다. 과감하게 현실을 일그러뜨려 보여준다. 그래서 이끌리기는 한다. 독특한 재미는 있다. 그러나 대중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후의 전개에 달려 있다. 흥미롭다. 미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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