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적인 사회일수록 일차적 관계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아니 집착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말고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 다른 방법으로 타인을 인지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고. 그러니 그 사람은 내게 좋은 사람이다.
어쩌면 한국사회가 타인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인정이라 한다. 인정이라고 하는 자체가 일차적 관계를 전제한 개념이다. 내가 베푼 만큼 돌려받는다. 내가 받은 만큼 상대에게 돌려준다. 시야를 벗어나면 그만큼 타인에 대해 무심해진다. 관계를 벗어난 타인에 대해서는 잔인해지기도 한다. 과연 그 사람이 내가 인정을 베풀만한 자격과 가치를 가진 사람인가.
보이지 않는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만질 수도 없는 그들이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굳이 알려 하지 않는다. 내 일이 아니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정의란 보편적인 세계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가치일 것이다. 나와 전혀 상관없어도 같은 인간이기에, 나와 같은 세계에 속한 존재이기에 마땅히 그를 위해 나설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내게 좋은 사람이어서도 아니다. 어차피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고, 내가 사는 세계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만이 오로지 중요하다. 그들에게 억울하거나 부당한 일이 있다면 그에 마땅히 분노한다. 그들에게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마땅히 그것을 흐뭇하게 여긴다. 지구 반대편에 전혀 생김새도 다른 평생 얼굴 한 번 볼 일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아프리카에서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알아서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듯.
진정 무엇이 본질이고 핵심인가? 그들이 착하지 못한 것? 그들의 행실이 바르지 못한 것? 연쇄살인범의 자식이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도 괜찮은 것일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흉악한 범죄자의 가족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부당하게 고통받고 있다면 마땅히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아니 범죄자 자신에게조차 정도를 벗어난 억압이나 폭력이 가해진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 것인가?
벌써부터 반응들이 재미있다. 이제 세월호특별법은 끝났다. 어째서? 유가족들이 전혀 상관없는 타인에게 폭력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국회의원과 유가족이 타인을 폭행하는 가해자의 입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묻는다. 그러면 피해자들이, 그 유가족들이 오로지 선한, 아무런 흠결도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특별법을 지지했던 것이었던가? 그들이 좋은 사람이어서 세월호참사의 진상을 밝혀져야만 하는 것이었는가?
그건 그것, 이건 이것, 전혀 별개다. 세월호 참사는 참사대로, 그리고 유가족 대표들이 저지른 폭력은 폭력대로. 그건 그것대로 처벌하면 된다. 다만 그렇더라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유가족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단지 피해자들만을 위해서도 아니다. 우리들 자신의 양심과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정의를 위해서다. 나와 전혀 상관없어도 그것이 옳기 때문에 주장하고 지지한다.
그래도 대중이 그렇게 여기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기고 있을 것이니. 언론이 어떻고, 현실이 어떻고, 그러니 여론은 어떻게 흘러갈 것이고. 하지만 나는 싸가지없는 보수라. 진보는 아니다. 옳지 않은 건 옳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옳지 않은 것은 어르고 달래기보다 가차없이 비판한다.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다. 그게 한심한 것이다. 그런 불합리한 사고야 말로 지금의 부당한 현실들을 만들었다. 메신저를 공격하여 본질을 흐린다. 아무것도 바뀌는 것 없이 그렇게 개인만을 소모하고 만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대중이 그렇게 여긴다고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니다. 그에 굴복할 필요도 없다. 정의란 객관적인 것이다. 객관이란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비극인 것은 피해자 때문도, 그 유가족 때문도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세계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중보다 위에 존재하는 절대의 가치다.
참 어이없다. 이야말로 개인의 일탈이다. 그토록 개인의 일탈을 좋아하던 사람들이다. 개인의 일탈이 전체의 가치를 정의하지는 않는다. 우발적인 실수다. 어쩌면 개인의 인격이나 인성과도 관계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억지로 연관지으려 한다. 대중의 어리석음에 기대려 한다.
물론 그렇다고 그런 것들이 비단 한국사회만의 문제인가. 그래서 지식인이 필요한 것이다. 지성과 양심을 일깨울 수 있는 존재들이 필요한 것이다. 진짜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같은 비루한 선동에 앞장서고, 묵인하고, 심지어 동조하는 자들이 지성과 양심의 탈을 쓰고 있다. 소름끼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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