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연애의 발견 - 사랑한 후에, 그리고 그들은 사랑을 한다!

까칠부 2014. 10. 8. 07:17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서 그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 대충 얼마나 걸릴까? 문득문득 생각난다. 비슷한 것만 봐도. 우연히 연상되는 무언가를 만나게 되도. 길가다 무심코 스쳐지나간 사람이 혹시 그 사람은 아닐까. 싫어하는 것도 늘어난다. 그 사람과 갔던 곳, 먹었던 음식, 혹은 함께 들었던 음악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추억이라 이름할 수 있을 때까지.

 

한여름(정유미 분)을 잊기 위해 멀리 여행을 떠난다. 한여름을 아직 사랑해서가 아니다. 한여름과 사랑했던 기억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들이 이미 헤어졌다는 사실을 자꾸 잊도록 만든다. 따뜻하고 달콤했던 만큼 그 빈 자리가 시리고 쓰리다. 상처는 이미 딱지가 앉고 아물었는데 아팠던 기억 때문에 계속 아프다. 그래서 한여름과 강태하(문정혁 분)는 그렇게 자주 마주쳤던 것일까?

 

비로소 남하진(성준 분)은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떠올리고 만다.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열정이 끝나고 냉정한 계산만 남는다. 그토록 행복했던 이유들이 이제는 헤어져야만 했던 이유가 된다. 설레임과 두근거림이 불안이 되고 두려움이 된다. 사랑하기에 붙잡고 싶었던 당연한 욕망이 집착이 되고 구속이 된다. 그러니 불행했다. 그래서 사랑했던 것일 터임에도. 머리로 납득하기 위한 과정이다. 감정이 앞서면 이성은 항상 그 뒷처리를 한다. 사랑따위 별 것 아니라면서도 어느새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많은 사람들처럼.

 

지난 사랑은 지난 사랑이다. 이미 끝난 사랑은 끝난 사랑이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지금 하는 사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로지 지금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한다. 어차피 언젠가는 끝날 사람이다. 어떤 사랑도 결코 영원할 수 없다. 사랑이 영원하더라도 사람이 영원하지 않다. 그렇다고 항상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제 다시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것이라는 기약조차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도 자신을 사랑한다. 아니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그 자체로 하나의 기적인 것이다. 사랑하는 그 순간에만 충실해야 한다. 어머니 신윤희(김혜옥 분)의 여자로서 마지막 조언이다. 너 자신의 사랑에 충실하라.

 

구애되고 있었다. 하필 남하진과 사랑하고 있을 때 강태하를 만나 새롭게 사랑을 시작했다. 6년 전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도 여전히 강태하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강태하와의 사랑은 그때 이미 한 번 끝났고 그때는 남하진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을 때였다. 사랑이 식고 나서도 여전히 남하진을 놓으려 하지 않았을 만큼. 붙잡고 싶었고, 지키고 싶었다. 그런데 강태하를 다시 사랑하게 되면서 남하진의 사랑과 믿음을 배신한 것이 되고 말았다. 더구나 강태하와 6년 전까지 5년이나 사귀었던 사실까지 더해지며 마치 남하진을 처음부터 일방적으로 속이고 농락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강태하를 사랑하게 되는 동안 남하진은 그들이 한때 사귀었던 사이라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자기가 원인이 되어 남하진이랑 헤어지게 되었는데 강태하와 다시 시작하기에는 염치가 허락지 않는다.

 

하기는 그래서 돌아봐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자기가 돌아설 용기는 없었다. 강태하가 붙잡으면 그때 못이긴 척 다시 강태하에게로 갔을 것이다. 강태하는 한 번 한여름을 울렸던 경험이 있다. 한여름이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할 때 무심하게 외면하고 있었다. 비로소 5년이 지나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한여름에게 주었던 상처를. 한여름이 겪어야 했을 아픔의 크기와 깊이를. 새삼 한여름을 붙잡을 용기가 없다. 서로에게 책임을 미룬다. 역시 서로는 물론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고 싶은 강박이었을 것이다.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 그때도 그들은 알지 못했다. 결국은 후회하게 될 것이면서. 아니 그렇게 후회하고 죽을 듯이 아파하다가도 언젠가는 많은 사람이 그렇듯이 그조차 추억으로 여기는 날이 언젠가 왔을 것이다. 아릿한 상처의 흔적과도 같이.

 

그래도 이번에는 늦지 않았다. 한참 늦었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그냥 나쁜 놈, 나쁜 년 하기로 한다. 주위의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앟고 자기들끼리만 좋으려 한다. 도준호(윤현민 분)와 윤솔(김슬기 분)도 그러고 있지 않은가. 이미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 한여름이 있을 곳이란 없다. 그토록 가까운 친구사이였건만 한여름의 사정따위 아랑곳 않고 자기들끼리만 좋아한다. 누가 뭐라든 자기들끼리 행복하면 된다. 그래서 언젠가는 끝나고 말 사랑일지라도. 그로 인해 다시 불행해질지라도. 사랑이란 다시 말하지만 가장 지독한 이기다. 과거 그들의 사랑이 자기마저 잊은 사랑이었다면 이제 그들의 사랑은 자기를 지키는 사랑이다. 이번에는 오래 갈 것을 믿는다. 누구보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다시 붙잡은 사랑이다.

 

남하진과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차분하면서 절절하다. 과장되게 울고 소리지르지 않으면서도 그 시린 처연함이나 애절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절제된 감정 속에 사랑을 떠나보내는 아픔과 상실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좋은 드라마는 배우의 연기력도 몇 단계 위로 끌어올린다. 좋은 배우의 연기력이 드라마의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리듯 그렇게. 굳이 말로 전하지 않아도 충분할 수많은 감정들이 배우의 표정위로 떠오르고 다시 사라진다. 불과 수십 분의 시간이 몇 년의 시간이 지난 것처럼 순식간에 다채로운 표정으로 지나간다. 마치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남겨진 이야기처럼 강태하와의 만남 역시 그렇게 담담하게 스쳐지나간다. 이미 장기은(정수영 분)이 쓴 작중 소설 '연애의 발견'에서는 세 사람의 이야기가 모두 끝나 있었다.

 

그 담담함이 사랑스럽다. 마치 수채화처럼. 한 편의 수묵화처럼. 진하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너무 깊지 않으면서도, 그러나 일상의 감정들이 묻어난다. 아니 동화다. 판타지다. 현실의 사랑은 더 처절하고 더 질척이며 더 흉하고 지저분하다. 다듬고 걷어낸다. 깎고 덜어낸다. 그래서 연애의 발견이다. 그런 사랑을 했었다. 그런 사랑을 했어야 했다. 역시 사랑을 하기보다 이별이 더 어렵다. 사랑을 잘하기도 어렵다. 모든 사랑을 하고, 사랑을 할, 혹은 사랑을 했을 사람들을 위해서. 모두는 사랑을 한다.

 

배우의 연기도 훌륭하고 영상미도 빼어나다. 음악 역시 철저히 드라마와 하나가 되어 흘러나온다. 더욱 고조된 감정과 함께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리고 그 모든 중심에 작가의 대본이 있었다. 사랑이야기는 많다. 더욱 이런 뻔한 사랑이야기는 너무나 흔하다. 그것을 이토록 사랑스럽게 완성시킨다. 떠난 빈자리가 벌써부터 서운하고 아쉽다. 끝났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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